[헤럴드경제=정진영 기자] “유교는 내세를 강조하는 다른 종교와는 달리 살아서 현세에 행복을 누리는 것을 이상으로 합니다. 앞으로 유림은 더 많은 국민의 생활 속으로 파고드는 ‘민중유교’를 지향하며 낡은 관행을 개선하는 데 힘쓸 것입니다.

서정기(76) 신임 성균관장은 국민과 함께 호흡하는 유교를 강조하며 유림의 내부 개혁을 약속했다. 26일 서울 인사동의 한 식당에서 기자와 만난 서 관장은 “재야에서 학문을 닦는 일에만 몰두해 온 내가 관장으로 당선된 것 자체고 개혁이자 정화”라며 “1000만 유림의 본산인 성균관이 재건 운동과 대오각성을 거쳐 국민 앞에 다시 서게 돼 다행이며, 앞으로 전통문화 창달과 성학(聖學)의 도통을 정립하는 데 노력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성균관은 지난해 최근덕 전임 관장이 국고보조금 횡령 혐의로 구속 기소된 이후 위기를 맞았다. 이에 성균관은 지난 13일 제30대 성균관장 선거를 치렀고, 결선투표까지 거치는 치열한 경쟁 끝에 서 관장이 당선됐다.

서 관장은 “재적 대의원 879명 가운데 무려 85.6%가 선거에 참여해 개혁의지를 보여줬다”며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고령의 유림들이 대거 선거에 참여한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매우 의미 있는 선거였다”고 평가했다.

유교에 대한 국민 대다수의 인상은 고리타분하다는 것이다. 이는 지나치게 폐쇄적이고 보수적인 태도를 보였던 그간의 유림의 모습에 기인한다. 서 관장은 “전통혼례 때 신랑은 두 번 절하고 신부는 네 번 절하는 것은 근거 없는 예법일 뿐만 아니라 오륜(五倫)의 부부유별(夫婦有別)은 차별이 아닌 각별을 의미하는 것”이라며 “부자유친(父子有親), 장유유서(長幼有序)는 각자의 영역에서 서로 주인이라는 양주쌍전주의(兩主雙全主義)를 말하는 것이지 결코 차별적 인간관계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사농공상이 없어진 요즘 세상에는 조상의 은공에 감사하며 제사를 지내고 정결한 부부생활을 하고 성실하게 살면 모두가 유림”이라며 “유림 행사 때도 전통 복장을 고집하지 않고 두루마기, 양복 등 융통성 있는 옷차림을 하도록 권장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서 관장은 생활 속의 유교를 강조하며 유교의 사상적인 우수성을 강조했다. 그는 “프랑스 혁명의 사상적 토대인 계몽주의ㆍ합리주의와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도 유학의 영향을 받았다”며 “미국 독립선언서에도 ‘대학(大學)’을 참고문헌으로 삼았다는 증거가 남아있는 등 유교는 세계의 철학에 영향을 줬는데 이 같은 사실을 모르는 이들이 많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서 관장은 성균관과 성균관대학교의 관계를 복원하고, 사단법인유도회와 성균관유도회의 통합을 성사시켜 오랜 세월 묵은 분규를 해결할 뜻을 밝히기도 했다.

한편, 서 관장의 취임식은 오는 28일 오후 12시 서울 성균관 명륜당에서 열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