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이혜미 기자] 북미 영화시장은 침체기에 접어든 지 오래다. 2011년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한 데 이어, 2014년 성장률이 또 다시 5.5% 떨어졌다. 전 세계 영화 업계는 북미 시장이 향후 미미한 성장률을 기록하거나, 내리막 길을 걸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속편이나 스핀오프(본편을 토대로 새로 만들어내는 번외편) 등 반복되는 시리즈물에 따른 피로감 누적, 홈 엔터테인먼트(인터넷TV 등) 수익이 늘고 있는 점 등이 이유로 꼽힌다.

반면, 중국 영화 산업은 가파른 상승세를 그리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의 ‘2015년 중국 영화 상반기 결산’ 자료에 따르면, 2014년 중국 영화시장은 296.39억 위안을 벌어들여 전 세계 극장 매출의 12.53%를 차지했다.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올해 1월부터 6월까지 중국 전역에서 거둬들인 극장 매출만 203.63억 위안에 달한다. 이는 2014년 상반기 극장 매출 137.43억 위안 대비 48.17% 증가한 수치. 몇 년 내, 중국이 북미를 뛰어넘어 세계 최대의 영화시장이 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에 알리바바를 시작으로 텐센트, 바이두 등 중국 IT 기업들이 줄줄이 영화 제작 및 투자, 배급 등에 뛰어들고 있다. 하루에만 160여 개의 극장이 생겨나고 있는 데다, 외화 수입에 상한선을 두는 쿼터제까지 유지되고 있으니 이들 입장에서 지갑을 열 만 하다. 내친 김에 할리우드 영화에도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 가능성을 최근 몇 편의 블록버스터들이 보여줬다.

中 블록버스터가 달라졌다, 할리우드 대작과 순위 다툼=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중국 블록버스터는 중화사상이 투영된 전쟁 대작, 혹은 진부한 역사극이나 무협물에 치중했다. 컴퓨터그래픽(CG) 기술도 조악한 수준이었다. 그렇다보니 중국 정부가 외화 수입을 연간 34편으로 제한한 상황에서도, 관객들은 할리우드 대작에 더 열광했다.

최근 중국 블록버스터의 진일보를 확인할 수 있는 대작들이 극장가에서 파란을 일으켰다.

지난해 초 개봉한 판타지액션영화 ‘몽키킹: 손오공의 탄생’은 10억4500여만 위안(1840여 억 원)의 매출을 올려 박스오피스 3위에 올랐다. 흥행 성공에 힘입어 후속편도 제작 중이다. 서극 감독이 지난 해 내놓은 ‘지취위호산’은 그해 박스오피스 4위에 이름을 올렸다. ‘동방불패’, ‘황비홍’ 등의 대표작을 제치고 서극 감독의 최고 흥행작이 됐다.

지난 7월 개봉한 액션모험영화 ‘몬스터 헌트’는 중국 영화 역사를 새로 썼다. 현지 박스오피스에서 역대 최다 관객인 약 6500만 명을 모아, 역대 최고 흥행 수익(약 4300억 원)을 거둬들였다. 역대 박스오피스 1위작 ‘트랜스포머4’와 올 상반기 정상을 꿰찬 ‘분노의 질주: 더 세븐’을 끌어내렸다. 오는 12일, 국내 개봉도 앞두고 있다.

박영규 CGV 중국 전략기획팀 팀장은 “‘몬스터 헌트’의 경우 중국 현지 CGV에서도 높은 인기를 누렸다. 드림웍스 출신의 감독과 할리우드 제작진이 참여해 시각적인 완성도가 높았고, 인기 있는 젊은 중국 배우들이 출연해 20~30대 관객들의 취향을 저격한 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현지화 된 스토리+기술 진일보, 관객 홀렸다=중국 관객들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사랑은 유명하다. 2014년 기준, 역대 박스오피스 상위 10편에는 할리우드 영화가 5편(‘트랜스포머4’, ‘인터스텔라’, ‘엑스맨’, ‘캡틴 아메리카2’, ‘혹성탈출2’)이나 포함됐다. 올 상반기엔 극장 매출 10억 위안을 넘긴 외화가 3편(‘분노의 질주7’, ‘어벤져스2’, 쥬라기 월드)이나 나왔다. 전통적으로 영화 관람을 ‘오락’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보니, 영화의 특수효과나 3D 상영과 같은 체험적 요소를 선호하는 것이다.

할리우드 영화들의 성적표를 보면, 중국 영화에선 찾아보기 힘든 SF 장르에 대한 갈증도 엿보인다. 이 점은 중국 영화계가 블록버스터 제작에 눈을 돌리게 한 자극제가 됐다. 다만, 풍성한 볼거리 등 장르의 미덕을 갖추면서도 중국 관객들이 현지화 된 콘텐츠에 대한 충성도가 높은 점을 의식했다.

‘몽키킹’의 경우, 중국인이 사랑하는 고전 소설 ‘서유기’가 모티브인 점이 주효했다. 중화권 톱스타들이 뭉친 화려한 캐스팅, 우수한 시각 특수효과(VFX) 등도 흥행을 견인했다. ‘지취위호산’은 중국 관객들에게 친숙한 전형적인 전쟁 활극임에도, 극 중 호랑이가 실제냐 CG냐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질 만큼 사실적인 비주얼로 화제를 모았다. (두 작품 모두 아시아 최고 수준의 한국 VFX 스튜디오의 기술력을 빌려 실감나는 장면들을 완성했다.)

‘몬스터 헌트’ 역시 중국인들에게 친숙한 요괴 소재의 신화에서 출발한 작품이다. 더 나아가 친근한 인물들과 사랑스러운 요괴 캐릭터, 유쾌한 모험담으로 국경을 넘어선 보편성으로 무장했다. 이는 ‘슈렉3’ 등을 연출한 경험이 있는 감독(라맨 허)의 역량에 기댄 면이 크다. 동시에 할리우드 스튜디오가 시각효과에 참여하면서, 기존 중국 대작들의 비주얼을 뛰어넘는 기술적 진일보를 이룰 수 있었다.

中 시장ㆍ블록버스터의 성장, 위기이자 기회=한국영화는 할리우드 뿐 아니라 대륙의 블록버스터와도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물론 중국발 대작들이 아직까진 국내 박스오피스에서 이렇다 할 성적을 거두지는 못했다. 여전히 중국 관객들의 입맛에 맞는 콘텐츠가 주류를 이루는 데다, 전형적인 인물 구도와 전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탓이다.

다만 중국 영화시장의 규모가 점점 커지고 중국발 블록버스터가 진일보하는 상황은 예의주시할 만 하다.

이에 발맞춰 우리의 기획력이 중국의 스타 및 자본과 만난 한·중 합작 영화의 제작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CJ E&M의 ‘20세여 다시 한 번’은 올해 상반기 중국 박스오피스 9위에 올랐다. 현지에서 취약한 로맨틱 코미디 장르로는 이례적인 기록이다. 쇼박스는 지난 3월, 중국 최대의 미디어그룹인 화이브라더스와 3년 간 6편 이상의 한·중 합작영화를 제작하는 내용의 독점 파트너십을 맺었다.

국내 VFX 업체들은 일찌감치 중국 시장의 부상을 예견하고, 이를 기회로 활용했다. 중국 제작사들은 할리우드보다 상대적으로 비용이 저렴하면서도 수준급 기술을 보유한 한국 VFX 업체를 선호한다. 업체들 입장에서도 자사의 기술력을 활용할 만한 프로젝트의 범주를 넓힌다는 의미에서 고무적인 일이다. 덱스터, 디지털아이디어, 모팩앤알프레드, 넥스트비주얼스튜디오, 매크로그래프 등 중국 시장에 진출한 업체들은 꾸준히 프로젝트 수주 건 수를 늘려가고 있다. 덱스터 관계자는 “2013년 ‘적인걸’을 시작으로 그 해 2편, 2014년 3편, 2015년 7편으로 매년 중국 프로젝트 수주 건 수가 늘고 있다”며 “올해 참여한 작품들은 지난 9월 개봉한 ‘고스트 블로우’를 시작으로 내년까지 순차적으로 개봉할 예정”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