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 경제=서지혜 기자] 의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한 김현수(34ㆍ가명) 씨는 지방의 작은 병원에서 페이닥터로 일하고 있다. 김씨는 졸업할 때부터 개업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 서울에 중소병원이 늘어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개업해도 도산하는 동료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병원 임대료 뿐 아니라 고가의 장비를 들여놓고 장사가 되지 않으면 그야말로 본전도 뽑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해 ‘월급쟁이’의 삶을 택했다. 김씨는 “일을 하면서 경영학을 배워볼까 생각 중”이라며 “의사라고 가만히 앉아있어도 억대연봉을 버는 시대는 지난 것 같다”고 말했다.
의사, 약사, 변호사 등 고소득 전문직들 사이에서 ‘개업만 하면 대박’을 터뜨리던 과거의 성공방정식이 급속히 무너지고 있다. 선발인원이 늘면서 경쟁이 치열해져 개업전문직이 과거처럼 큰 수익을 올리기 힘들어지면서다. 때문에 최근 막 자격증을 딴 젊은 전문직들은 아예 개업을 포기하고 ‘전문분야를 가진 회사원’의 소박한 삶을 택하는 이른바 ‘사’자(전문직종사자)들이 늘고 있다.
변호사, 회계사, 세무사 등은 법인에 소속돼 일할 경우 열정페이에 가까운 업무 강도를 견뎌야 한다.
로스쿨을 졸업한 후 3년째 서울 서초동의 한 변호사사무소에서 일하는 김연희(30ㆍ가명) 씨는 “하루 12시간에 가까운 일을 하면서 300만 원 가량의 월급을 받는다”고 하소연했다.
김씨는 “개업 변호사가 너무 많고, 로스쿨 출신에게는 사건을 수임하는 비율이 아직 많지 않아 초임 로변이 개업하는 건 큰 도박”이라며 “왜 수천만 원을 들여 로스쿨을 다녔는지 회의감이 든다”고 자조했다.
실제로 최근 전문직 개인사업자의 소득은 날이 갈수록 줄어드는 상황이다.
국세청 자료에 따르면, 변호사ㆍ회계사ㆍ세무사ㆍ관세사ㆍ건축사ㆍ변리사ㆍ법무사ㆍ평가사 등 전문직 사업자 중 연매출액을 2400만 원 미만으로 신고한 건수는 2010년 4307건에서 2014년 5142건으로 835건 증가했다.
특히 변호사의 경우 전체 사업자 신고수가 2010년 3492건에서 2014년 4257건으로 22% 늘어난데 비해, 같은기간 연매출 2400만원 미만의 신고건수는 542건에서 790건으로 46%나 급증했다.
개업 변호사가 늘어나면서 소득 격차도 그만큼 커진 셈이다. 빈익빈부익부 구조가 심화되면서 휴업하거나 폐업한 사업자도 상당수다.
의사들의 한숨은 더욱 크다. 의료장비 때문에 초기비용이 많이 들어 은행에서 대출을 받았다 갚지 못해 폐업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대한병원협회에 따르면 개인병원폐업률은 2013년 12.18%로 해마다 늘고 있다. 특히 동네병원의 개업대비 폐업률은 83.9%에 이른다.
하지만 의사나 변호사의 경우 평균소득 자체가 다른 직군에 비해 월등이 높아 주변에 경제적 어려움도 호소하지 못하고 가슴앓이만 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자 젊은 전문직들은 애초에 개업을 포기하고 기업에서 전문분야를 인정받는 것을 목표로 하기도 한다.
대기업 회계팀에서 일하고 있는 회계사 안현진(34ㆍ가명) 씨는 “개업한 후 도산해 다시 일반 기업에 들어가 대리 등 낮은 직급으로 시작하거나 공무원 시험을 보는 동료들이 많다”며 “최근 젊은 전문직들은 부나 명예보다는 합격 후에도 대학원을 다니는 등 자신의 능력을 키우며 치열한 생존경쟁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