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남자의 눈물은 여자의 눈물에 비해 금기시됐다. 남자는 평생 세 번 운다는 옛말부터 그렇다. 옛 어른들은 출생을 알릴 때, 부모를 잃었을 때, 나라를 빼앗겼을 때가 남자가 울 수 있는 세 번의 기회라고 하며 어린아이 때부터 남자아이들의 ‘울 수 있는 권리’를 제한해 왔다
그런데, 남자라고 ‘딱’ 세 번 울고 말기엔 인생은 너무 길다. 대한민국에서 남자로 태어났기에, 사회를 등지며 입영열차를 타는 날은 솔직히 예외조항으로 남겨두고 싶다. 필자가 군입대를 하던 1970년대엔 시대의 암울한 그림자가 깊었던 만큼 더욱 그랬다. 대학 캠퍼스와 소위 지식인들로 분류된 대학생들은 무력감에 시달려야 했고, 당시 군입대는 현실로부터의 도피 아닌 도피였다. ‘어색해진 짧은 머리’를 민망한 듯 손바닥으로 자꾸만 비비며 훈련소에 입소하던 날, 빨개지는 눈을 감추려 어지간히도 애를 썼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런데 근자에 아들의 입대 날, 격세지감을 느꼈다. 현역 입대 경쟁률이 7.5:1에 육박한다는 요즘, (모병제 국가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다) 군입대를 하는 아들의 모습은 과거의 필자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국방의 의무를 마쳐야 할 멀쩡한 청춘들이 줄줄이 적재돼 있으니, 군입대로 몇 달을 기다리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입대를 하는 청년들의 얼굴이 담담하다. 취업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휴학까지 했는데, 입대라도 제 때 하는 것이 불행 중 다행이라서 일까. 눈시울 붉어지는 아련한 이별장면은 사라진 지 오래다.
휴학은 아니지만, 중간에 전공을 바꾸느라 입대가 늦어진 장남을 걱정하는 아버지를 아들은 되레 안심시켰다. 군생활에 대한 팁(tip)은 이미 친구들에게 얻었으니 걱정할 것이 없고, 나이 많은 신병이니 더 솔선수범하면 무슨 문제가 있겠냐는 것이다. “남자라면 현역은 다녀와야지”했던 아비였지만, 빡빡머리로 연병장을 향하는 아들의 뒷모습은 어찌할 수 없이 짠했다.
수백 명의 ‘빡빡머리’가 서 있는 연병장을 바라보자니 빛 바랜 앨범 속 초기 컬러사진처럼 가끔 한 번씩 꺼내보는 ‘전우애’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지난 8월 북한의 지뢰, 포격 도발 당시 전역을 연기했던 장병들도 자연스레 떠올랐다.
‘전우애’라는 것도 시대를 타는 법. 과거의 전우애가 강압적인 군기에 의해 형성된 것이었다면, 요즘은 SNS를 통한 정보 공유와 열린 소통이 전우애 형성에도 힘을 발휘한다. 북한 도발 당시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해 예비역을 포함한 수많은 장병들이 생각을 나누는 적극적인 소통으로 조국애와 전우애를 공유하는 모습이 필자에게는 낯설기는 했지만, 훨씬 자율적이고 강력한 전우애로 비쳐졌다. 또한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삼포세대’로 전락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청춘들이 그래도 살아있음을, 행동하는 지성임을 확인할 수 있어 뿌듯했다.
대졸 실업자 50만 명, 청년 취업 준비생 60만 명. 결코 쉽지는 않았으나 자격증 하나 취득하면 그래도 ‘먹고 살만 했던’ 시대를 구가했던 기성세대로, 또한 아버지로 착잡한 심정을 금할 수 없는 요즘이다. 급기야는 대통령이 청년 일자리 해소를 돕겠다며 ‘청년희망펀드’ 1호 기부자로 팔을 걷어 부쳤다. 이제 더 이상 우리가 우리의 미래를 버려둘 수는 없다.
어떻게 해서든 대한민국의 미래를 껴안으려는 사회 각계의 노력에는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대국민 모금’으로 확산되어 가는 양상을 보며 기우가 한 켠에서 스멀스멀 올라온다. 청년희망펀드는 장학금이나 실업급여는 아닐진대, 명분과 목적에 부합한 사용처에 대한 정부의 혜안을 기대해본다.
담담한 표정으로 연병장을 들어가던 빡빡머리 아들들도 전역 후엔 절벽 같이 아찔한 현실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결코 두려워하거나 포기하지 말라. 대한민국은 그대들을 버리지 않을 것이다. 건군 이래 최초의 1박2일의 전군 특별휴가와 특별간식이 그대들을 충분히 위로하진 못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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