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가구 급증 등 이유 ‘집으로’ 점심 아닌 저녁이 골든타임 청승맞게 식당서 혼자먹느니 퇴근길 편의점서 사와 간단해결

소시지와 김치 거기에 계란후라이까지 얹혀졌다면 ‘왕후의 밥상’도 부럽지 않았다. 어머니가 싸주신 도시락이라면 말이다. 1990년대 중반, 도시락은 편의점과 전문점을 통해 지갑 사정 빠듯한 고학생의 한끼를 책임지는, 그럭저럭 배를 채울만한 존재로 돌아왔다.

그 도시락은 2008년 들어 화려하게 부활했다. 고물가ㆍ고유가에 이은 금융위기 불황 여파로 소비심리는 꽁꽁얼어 붙었고 구조조정, 감원설 등으로 인해 고용불안까지 겹치면서 외식은 커녕 점심값 마저 줄이려는 직장인까지 가세하면서 폭발적으로 도시락 수요는 늘어났다. ‘점심시간=도시락’은 서민의 공식이었다.

하지만 이같은 도시락이 ‘외출’을 접고 집으로 돌아왔다. 도시락은 어디까지나 밖에서 먹는 것이었으나, 요즘엔 집에서 먹는 것이 됐다. 돈이 없는 청년들, 주머니사정이 녹록치 않은 직장인들도 도시락을 사와 집에서 먹는 게 요즘 트렌드다. 경기 불황이 주원인이지만, 1인가구 급증이 이런 트렌드를 견인하고 있다. 저녁 해먹기 보다 간편하게 한끼를 때울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저녁 도시락은 한 문화가 됐다. ▶관련기사 5면

이제 도시락의 ‘골드타임’은 점심이 아니라 저녁이다. 지난해 저녁시간대 도시락 판매비중은 26.3%로 전년보다 1.4%포인트 증가하며 점심시간대 매출을 처음으로 추월했다. 올해는 그 격차가 더욱 벌어질게 분명하다.

직장인 김정훈(35)) 씨는 “하루종일 업무에 시달려 녹초가 된 몸으로는 집에서 뭔가를 해먹을 여력이 없다”며 “집 주위 식당의 영업시간도 끝나기 일쑤여서 편의점 도시락을 사간다”고 했다.

또 “예전에는 늦게 퇴근하고 돌아오면 라면을 끓여먹거나 그냥 허기를 달래며 잠을 청했지만, 요즘에는 도시락이라는 선택지가 새로 생겨 꼭 (편의점에) 들른다”고 했다.

저녁 도시락족(族)이 급증한 것은 저렴한 가격과 풍족한 양에만 집중됐던 실속형 도시락에서 건강과 웰빙을 중심으로 다양한 식재료를 활용한 프리미엄 제품들로 진화하면서 ‘편도족’(편의점 도시락을 먹는 사람들), ‘혼밥족’(혼자 밥을 먹는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것도 한 원인이다.

직장인 이대건(37) 씨는 갑자기 지방으로 장기 출장을 가게 돼 가족들과 뜻하지 않게 생이별 중이다. 그는 “궁색하게 저녁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느니, 영양도 좋고 맛도 좋은 도시락에 푹 빠지게 됐다”고 했다.

이같은 저녁 도시락 문화에 좋은 시선만 있는 것은 아니다. 시간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우리 삶에 여유가 부족하다보니 이같은 ‘컴백 홈 도시락’ 문화가 형성된 것이며 씁쓸한 일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이정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