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함영훈ㆍ김진원 기자] 대법원은 유죄로 확정한 한명숙 의원의 불법 정치자금 9억원 수수사건 심리 과정에서 ‘법정 진술의 신빙성을 최우선시 한다’는 공판중심주의 정신을 지키기 보다는 법정 진술과는 정반대인 검찰 수사기록 상의 공여자 진술을 선택했다.

공여자인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가 검찰 조사에서는 “돈을 줬다”고 했다가 공판정에서는 이를 전면 부인하는 진술을 했지만, 사법부가 최근 10년간 공을 들여 정착시키려고 했던 공판중심주의는 이번 만큼은 배척됐다.

이는 ‘공판중심주의’가 가장 이상적인 절차적 사법정의라는 데엔 이의가 없지만, 이를 악용하려는 일부 사건 관계인들의 꼼수가 공판중심주의의 틈새를 파고들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풀이된다. 징역 2년과 추징금 8억8000만원이 선고된 한 의원의 혐의는 새정치민주연합의 전신인 열린우리당의 대통령 후보경선을 앞둔 2007년 3∼8월, 한 전 대표로부터 세 차례에 걸쳐 불법정치자금 9억여원을 받았다는 것이다. 검찰은 “돈을 줬다”는 한씨의 진술서와 회사 비자금 장부, 사용내역 자료 등을 근거로 재판에 넘겼다.

그러나 한씨가 법정에서 검찰수사 내용을 전면 부인했다. 1심 재판부는 “한씨가 ‘검찰 진술은 압박에 못이겨 꾸며낸 허위 사실’이라고 전면 번복한 점과 검찰 진술 자체 및 이를 뒷받침하는 다른 증거들에 내재된 여러 가지 의문점이 있어 검찰 진술의 신빙성이 없다”며 한 의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공판중심주의에 입각한 판단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소수의견을 낸 대법관 5명도 “공판중심주의 직접심리주의 원칙의 취지에 비춰 동일인의 수사기관 진술과 법정 진술의 내용이 정반대일 경우, 법정 진술의 신빙성을 부정하고 수사기관 진술을 증거로 삼으려면 이를 뒷받침하는 객관적인 자료가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서울고법과 대법원 전원합의체 다수 의견은 다른 증거가 있는데도 법정에서 수사내용과 다른 진술을 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2심 재판부는 “한씨의 검찰 진술은 ▷자금 조성에 관여한 관련자들의 진술 ▷비자금 장부 ▷계좌추적 결과 ▷환전기록 등 객관적인 서류 ▷한 의원의 동생이 1억원짜리 수표를 사용하고 나중에 한씨가 한 의원의 비서를 통해 2억원을 돌려받은 사실 등 여러 정황에 의해 입증 가능하다”며 실형을 선고했다.

대법원 역시 ‘2심 판단이 정당하다’고 밝히면서 “한씨가 금품 제공 진술을 한 이후 ▷자금조성 내역과 일치하는 금융자료가 확보된 점 ▷정치자금을 담아 운반했다는 여행용 가방의 구입 영수증이 나온 점 ▷한씨 지시를 받아 자금 조성에 관여한 한신건영 경리부장 정모씨의 진술이 있었던 점 ▷정씨가 작성한 비자금 장부가 한 전 대표의 검찰 진술과 부합하는 점 등을 법정 증언보다 검찰 진술에 신빙성을 둔 이유로 들었다.

결정적으로 한 의원의 발목을 잡은 것은 한씨 사업이 위기를 맞았을 때 한의원이 2억원을 반환한 사실과 한의원 동생이 전세금으로 1억원짜리 한신건영 발행 수표를 사용한 사실 등이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을 통해 ‘뻔히 증거가 있는데도 사법부가 법정 진술을 우선시하는 공판중심주의 원칙을 지켜나갈 것이라는 점을 악용해 증거와 부합되는 진술을 공판정에서 전면 부인하는 행위’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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