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슈퍼리치섹션 홍승완ㆍ문재연 기자]일본인하면 떠오르는 덕목 중의 하나가 ‘수집욕’이다. ‘남의 것’, ‘오래된 것’을 가리지 않고 가치가 있다면 망설임없이 모으고, 꼼꼼하게 기록하고, 보관하는 일본인들의 모습을 심심찮게 본다.

일본의 거부들 역시 마찬가지다. 백제와 신라 문화재에까지 손을 댄 것으로 유명한 오구라 다케노스케(小倉武之助·1870~1964)와 일본 신석기인 조몬시대의 유물을 수집한 이노우에 코우이치(井上恒一·1906~1965년), 피카소의 ‘가셰박사의 초상’을 무덤에 가져가겠다며 엄청난 집착을 보인 사이토 료에이(齊藤了英ㆍ1916~1996년) 모두 미술품 수집을 향한 일본 슈퍼리치의 광적인 집착을 보여준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이러한 일본 슈퍼리치들의 DNA는 21세기 들어서도 이어진다. 예술품, 슈퍼카를 넘어 곤충, 피규어에 이르기까지 2010년대 일본 슈퍼리치들의 집착의 대상은 좀 더 기상천외해졌다.

▶아름다움에의 집착…예술품 탐미하는 日 슈퍼리치들=포브스 기준 현재 일본 최고의 부호(자산 211억 달러)인 야나이 다다시 유니클로 회장은 일본 재계의 대표적인 예술품 수집가다. 그는 일본의 화가 우타가와 히로시게를 비롯해 애드워드 호퍼, 노먼 로크웰의 작품을 중심으로 적극적인 수집활동을 펼쳐 왔다. ‘세계 미술시장을 선도하는 200대 미술수집가 명단’에도 이름을 올리고 있다.

그는 첫 수집품으로 우타가와 히로시게의 에도 그림을 산 것에 대해 회상하며 “너무나도 섬세해 집에 장식하기 어려워 회사 미술관에 내놓게 됐다”고 말했다. 현재 그의 집을 장식하고 있는 미술품으로는 덴마크 미술가의 작품이 가장 많다고 한다. 야나이는 상징성이 높은 초현실주의 작품을 좋아한다고 밝혔다. 야나이 사장은 현대미술을 좋아해 뉴욕현대미술관(MOMA)을 적극 후원하기도 했다.

후쿠다케 소이치로 베네세 그룹 회장(왼쪽)과 나오시마 현대미술관(오른쪽 위), 베네세 아트하우스
후쿠다케 소이치로 베네세 그룹 회장(왼쪽)과 나오시마 현대미술관(오른쪽 위), 베네세 아트하우스

일본을 대표하는 예술품 수집가하면 후쿠다케 소이치로(福武總一郎) 베네세(BENESSE)그룹 회장도 빠질 수 없다. 자산 11억 달러(포브스 기준)를 자랑하는 그는 미술품 수집의 끝판왕이다. 버려진 섬 ‘나오시마(直島)’를 예술의 섬으로 탈바꿈시켜 세계적인 관광지로 키워낸 그의 행적은 세계 예술계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는다. 구리 제련소의 폐기물 처리장으로 가득했던 버려진 섬 나오시마는 1988년 그의 ‘나오시마 문화촌 프로젝트’ 발표와 함께 일본 현대미술의 근거지로 변신했다. 1997년부터는 ‘아트하우스프로젝트’라는 이름 아래 작가에게 섬 거주 지역에 위치한 집과 건물에 작품을 영구 전시하는 기획을 벌이고 있다. 2010년부터는 ‘세토우치 국제 아트 페스티벌’을 통해 나오시마 인근 섬들과 공동프로젝트를 추진, 일대의 섬들을 예술섬으로 바꿔나갔다. 후쿠다케 회장은 최근 개인 거래를 통해 클로드 모네의 ‘수련’을 샀는데 그 금액은 20억~25억엔이었다고 전해진다.

아버지가 창업한 학습지 출판사 후쿠다케(福武)서점을 물려받았던 그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높은 자살률의 일본 사회를 보며 ‘경제가 문화에 종속돼야 윤택한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고 한다. 그리고 소외된 지역사회의 문화발전을 위해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安藤忠雄)와 손잡고 나오시마 프로젝트에 나서게 됐다.

▶곤충수집에 400억, 피규어 보관에 160억 빌딩!!=제약회사 반쿄(万協製薬)의 마츠우라 노부오(松浦信男·55) 대표가 ‘별관’이라고 부르는 16억엔짜리 건물은 전세계 애니메이션 팬들에게는 ‘성지’ 같은 곳이다. 문을 여는 순간, 한 가지에 광적으로 몰입해버리는 일명 ‘오타쿠(お宅)’의 냄새가 물씬 풍겨온다.

(왼쪽부터 시계방향) 마츠우라 노부오 반교 회장, 가면라이더, 울트라맨과 베르세르크 피규어 컬렉션, 건담 피규어 컬렉션
(왼쪽부터 시계방향) 마츠우라 노부오 반교 회장, 가면라이더, 울트라맨과 베르세르크 피규어 컬렉션, 건담 피규어 컬렉션

그는 건담에서 원피스까지 각종 피규어(인간ㆍ동물 형상의 모형 장난감)를 모은다. 그간 최소 1억엔(한화 약 10억원) 이상을 쏟아부은 유명한 수집광이다. 미소녀 피규어에서부터 울트라맨까지 약 1만8000점의 피규어가 장식돼 있다. 전부 자신 돈으로 구입한 것이다.

마츠우라 사장의 피규어 수집은 대학생 시절부터다. 울트라맨과 가면 라이더에 빠져있던 1980년대 캐릭터의 디테일을 살린 피규어가 출시되면서 모형을 모으기 시작했다고 한다. 피규어를 모은다고 하면 여자들이 꺼려하기 때문에 여자 친구가 생길 때마다 눈물을 머금고 수집활동을 중단하기도 했다. 하지만 피규어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지 못해 나중에는 데이트 비용을 아껴가며 몰래 수집했다고 한다.

‘피규어를 모으는 이상한 아저씨’로 보일 법하지만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에는 ‘존경심’이 가득 차있다. ‘사람이 우선이다’는 그의 경영철학 때문이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반쿄사를 물려받았으나 1995년 한신·이와지 대지진으로 본사와 공장 건물을 잃는 아픔을 겪었다. 수백억원이 한순간에 잿더미가 됐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당시 수중에 남아있던 돈 3200만엔으로 바닥에서 다시 시작해 10여년 만에 회사를 살려냈다. 대지진 당시 어쩔수 없이 직원을 전원 해고시켜야 했던 그는 그 이후 단 한 명의 사원도 내보내지 않겠다는 일념 하나로 일에 매진했다. 그는 “경영자는 불경기를 탓해서는 안 된다”며 “성장을 이끌어내는 것은 경영인의 당연한 임무이자 업무이다”고 말했다.

특허부자 츠카다 씨(왼쪽)와 희귀 나비 컬렉션
특허부자 츠카다 씨(왼쪽)와 희귀 나비 컬렉션

소문난 ‘특허부자’ 츠카다(74) 역시 별난 수집광이라면 빠지지 않고 거론해야 할 인물이다. 그가 모으는 것은 다름 아닌 ‘곤충’이다. 그는 30여년 동안 곤충을 수집하고 관리하는 데 무려 40억엔, 우리돈 400억원을 쏟아부었다. 전세계에서 3500여종의 곤충 수만마리를 수집했다. 본인이 직접 희귀 나비들의 명명 작업을 벌이기도 했다. 수집한 곤충이 너무 많아지자 아예 본인이 ‘고부치자와 곤충 박물관’을 설립했다. 여기에 큰돈이 들었다. 현재 박물관 관장으로 있는 그는 “자연의 신비는 사람들과 함께 나눠야 가치가 있는 것”이라며 박물관 설립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젊은 시절부터 그는 천재로 유명했다. 하루 19시간씩 수학에만 몰두하면서 각종 산업에 쓰이는 여러가지 특허권을 따냈다. 덕분에 항상 부유했다. 대신 깊이 몰두하는 성격 탓에 친구가 없었다. “친구는 일에 방해만 된다. 거슬린다”고 해 유명세를 타기도 했을 정도다. 그런 그가 친구 대신 택한 것이 곤충이다.

서양에서 간간이 찾아볼 수 있는 ‘슈퍼카 컬렉터’도 있다. 오리엔털빌딩 주식회사의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히라 준이치로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예민한’ 일본인 수집가답게 그냥 막연히 모으지는 않는다. 그는 희귀 페라리만을 모은다. 그가 보유하고 있는 페라리는 10대에 불과하지만 275GTB4와 250 투르 드 프랑스 등 1950~60년대의 클래식 모델 등을 비롯해 페라리 각 모델들의 한정 모델만을 수집한다. 덕분에 그의 컬렉션은 세계 자동차 마니아들 사이에서도 평가가 높다. 그의 사무실 역시 페라리로 가득차 있다. 마치 페라리 본사에 온 것처럼 페라리 설명서와 카탈로그, 포스터, 기념품과 미니어처 등이 가득하다. 역시 모두 한정판들이다. 히라는 할아버지 때부터 부동산 및 임대사업을 물려받아 현재도 매년 수십억엔의 수익을 거두고 있다. 그는 “수집활동을 하려면 돈, 여유, 열정 세 박자가 잘 맞아떨어져야 한다”며 “나는 운이 좋아 그렇게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