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이지웅 기자] 메르스의 병원 내 감염 이유 중 하나가 의료진이 사용하는 장갑에 묻어있는 분말(파우더)이 바이러스를 싣고 공기 중으로 퍼날랐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병원 감염 경로가 불명확한 환자가 발생하는 가운데 나온 새 주장이어서 주목된다.
25일 보건의료계 관계자 A씨는 “병원 의료진이 진료나 수술 시 사용하는 일회용 라텍스 장갑에 분말이 묻어있는데, 이 분말이 떨어져 나와 공기 중에 떠다니면서 마치 버스(bus)처럼 바이러스를 운송하는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종합병원 등 병원 의료진이 사용하는 수술용, 일반용 장갑 등은 크게 두 가지 나뉜다. 분말이 묻어 있는 것(powdered)과 분말이 없는 것(powder free)이다.
분말은 주로 장갑 안에 코팅되어 있다. 마찰력을 줄여 장갑 착용이 쉽도록 한 것이다. 분말의 성분은 주로 옥수수 녹말이다.
A 씨는 이 분말이 병원 내에 세균 등 오염물질을 퍼뜨리는 부작용이 있다는 내용을 담은 연구보고서 등을 주장의 근거로 들었다.
실제 수술간호사회의 한 논문은 ‘매개체로서 장갑의 파우더’라는 항목에서 ‘(장갑의) 파우더는 기구, 장비, 의복, 환자의 조직 등에 떨어지면서 감염의 매개체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본지가 입수한 한 다국적 의료기구 업체의 설명 자료를 보면, 분말의 크기는 약 5∼20 마이크로미터다. 공기 중 전파되는데 10마이크로미터 이하의 분말은 사람의 폐포로 직접 들어갈 수 있다.
이 설명 자료에는 “분말이 공기 중으로 퍼져 수술기구 등을 오염시키고, 접촉하지 않아도 공기로 항원이 전파된다”는 대목도 있다.
1994년 ‘Archives of Surgery’에 실린 외국 논문 ‘분말의 수술 상처 오염(Starch powder contamination of surgical wounds)’은 의료진이 분말 장갑을 씻고 닦아도 분말이 수술 상처에서 발견되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논문은 분말 없는 장갑을 사용하지 않는 것만이 분말을 제거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결론내리고 있다.
다른 업체 설명 자료도 외국 연구를 인용해 “수술실에서 분말 장갑을 사용하면 수술실 공간에 연간 2㎏의 분말 침전물이 형성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러다 보니 선진국의 의료진 분말 장갑 사용률은 매우 낮거나 아예 금지되어 있다.
수술간호사회 논문에 따르면 독일은 이미 2000년대 초반 분말 장갑의 사용을 완전 금지시켰다.
한 다국적 의료기기 업체 관계자는 “미국의 분말 장갑 사용률은 20% 정도에 그친다”며 “그런데 우리나라 병원은 가격이 싸다는 이유로 분말장갑을 사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업계에 따르면 분말 장갑이 400∼700원, 분말 없는 장갑이 700∼1000원 정도로 크게는 2배 이상 차이가 난다.
현재 국내 종합병원 등에 장갑을 납품하는 업체와 보건의료노조 소속 현직 간호사들의 말을 종합하면, 우리나라 병원들의 분말 장갑 사용률은 70∼80%에 이른다.
국내 전문가들은 분말이 실제 우리나라 메르스의 병원 감염 과정에 큰 역할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대체로 회의적이다.
이재갑 한림대 감염내과 교수는 “병원 감염은 사태 초기 의료진의 부주의, 병원의 특수한 환경 등이 주 원인”이라며 “장갑 분말에 의한 전파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말했다.
송대섭 고려대 약대 교수도 “장갑 분말에 대한 여러 사실관계를 따져봐야겠지만 현재로선 분말의 매개 가능성은 무리로 보인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