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서지혜 기자] 오전 6시, 알람 소리에 맞춰 칼같이 눈을 뜬 ‘나혼자(20)’양. 세수를 하고 부엌에서 엄마가 해 준 아침을 먹는다. 나혼자양은 한 끼를 많이 먹지 않는다. 배가 부르면 공부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엄마는 영양소별로 균형있게 소량의 식사를 준비한다. 밥은 30분 이내에 먹어야 하지만 서두르지 않는다. 혹시 배탈이라도 나면 그게 오롯이 ‘시간 낭비’가 된다. 아침을 먹은 후 7시, 트레이닝복을 입고 독서실로 향한다.
나양은 ‘독재(독학으로 재수하는 사람)생’이다. 고3이었던 지난 2012년 수능에서 간발의 차로 숙원이었던 서울대를 가지 못했다. 고려대에 합격했지만, 등록금을 내기 전 날 재수를 결심했다. 친구들과 함께 꿈에 그리던 대학생활을 하고 싶었지만 수능 점수가 아쉬웠다. 한 번만 더 보면, 그토록 원하던 대학에 합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친구들은 모두 말렸지만 부모님께서는 “인생에서 1년은 별거 아니니, 후회하지 말고 한 번 더 도전해보자”고 격려하셨다.
나양은 동네 독서실 대신 대학생 고시공부를 하는 언니오빠들이 다니는 독서실에 다닌다. 동네 고등학생들이 다니는 독서실은 시끄럽기도 하고, 집중이 잘 되지 않기 때문이다. 대학생들을 보면서 공부하면, “나도 저들처럼 대학생이 돼서 내 꿈을 위해 정진할 수 있겠지”하는 생각에 흐뭇해진다.
7시 20분이 되자 초시계를 누르고 인증샷을 찍는다. 사진은 휴대폰 커뮤니티인 ‘밴드(네이버 폐쇄형 SNS)’에 올린다. 재수를 한다고 휴대폰을 모두 없애버리고 오롯이 혼자만 공부하는 건 모두 옛말이다. 재수 종합학원도 다니지 않고 혼자 공부하는 재수생에게 서로를 채찍질해줄 수 있는 ‘생활스터디’는 필수다. 나양 역시 인터넷 수능 관련 카페에서 스터디 멤버들을 찾았다. 5명의 멤버들은 매일 7시 20분에 밴드를 통해 공부 시작을 알리는 출석체크를 해야 한다. 재수생들과 고시생들 사이에서 유행한다는 ‘초시계 스터디’다. 초단위로 시간을 보여주는 초시계를 켜고 하루동안 몇 시간을 공부했는지를 공유하는 것. 매일 인증을 하지 않으면 벌점이 부과된다. 벌점 3점은 경고, 5점은 ‘강퇴(강제퇴장)’다. 강퇴가 되면 또 새로운 스터디 멤버를 찾아야 한다. 느슨해지지 않기 위해 하는 생활스터디기 때문에, 아무리 쉬고 싶은 날에도 무조건 독서실에 와서 출석체크를 한다.
사진을 올리고 재빨리 스마트폰에 저장된 영어듣기 파일을 클릭한다. 오늘도 2문제를 틀렸다. 지난 수능에서도 영어듣기에서 비슷한 유형을 틀리는 바람에 1등급을 받지 못했다. 올해는 어렵더라도 영어 B형을 선택할 계획이다. B형에서 고득점하면 서울대에 가는 데 더 유리하다.
영어듣기가 끝난 후 컴퓨터를 켜고 한국사 인강(인터넷 강의)을 듣기 시작한다. 서울대는 한국사가 필수다. 내신도, 모의고사 점수도 빠지지 않았던 나양은 지난 해 한국사를 소홀히 했다. 올해는 단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각오다.
강의가 끝나니 12시. 점심을 먹기 위해 집으로 향한다. 집에는 나양의 절친, 엄마가 기다리고 있다. 나양이 점심을 먹기 시작하자 엄마는 어느새 옷을 갈아입고 나갈 채비를 한다. 오늘은 일주일에 두 번, 수학 공부방을 가는 날이다. 나양이 고3때 만난 학원 수학선생님은 학원을 그만두고 몇몇 우수한 학생들을 데리고 대치동에서 그룹과외를 지도하는 공부방을 운영한다. 나양 역시 이곳에서 몇몇 친구들과 함께 수학 그룹 과외를 받는다. 엄마는 수업을 듣는 동안 인근 카페에서 함께 수업을 듣는 다른 친구들의 엄마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눈다. 엄마는 이곳에서 다양한 입시 관련 정보를 얻어 나양에게 알려준다.
집에 돌아오니 어느새 4시. 방에 들어가 미리 다운받아놓은 미드(미국드라마) 한 편을 본다. 하루에 한 시간 정도는 쉬어줘야 한다는 게 나양의 원칙이다. 30분 정도 드라마를 보고 간단하게 저녁을 챙긴 후 다시 독서실로 향한다.
독서실에서는 학원에서 들은 내용을 복습하고, 사회 등 암기과목을 점검한다. 암기한 내용은 매주 일요일 스터디 멤버들과 모여 보는 ‘쪽지시험’으로 확인한다. 쪽지시험 문제는 공부한 범위 중 그간 기출된 수능 문제로 ‘당번’이 준비한다. 쪽지시험 성적이 나쁘다고 특별히 제재하는 건 없지만, 수능이 얼마 남지 않은만큼 자신을 채찍질 하는 계기가 된다.
오늘따라 머리가 복잡하다. 학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슬쩍 접속해 본 페이스북에 고등학교 때 친했던 친구가 올려놓은 신입생 환영회 사진을 봐 버렸다. 페이스북 때문에 휴대폰을 없앨까 생각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인터넷 카페 등에서 바뀌는 수능 제도에 대해서 빨리 정보를 얻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끔 스마트폰 SNS로 ‘대학생이 된’ 친구들 소식을 듣는 것은 고역이다.
빨리 이 지긋지긋한 독서실을 벗어나 화창한 캠퍼스 생활을 하고 싶다. 대학에 들어간 친구들은 “대학에 오면 또 학점관리, 토익공부하느라 힘들다”며 투정이지만, 그런 투정마저도 부럽다. 혹시 남들보다 1년 늦게 가다가 어른이 되어서도 계속 더디게 가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도 생긴다. 그럴 때마다 독서실 책상에 붙여 놓은 서울대 사진을 바라보고 다시 ‘열공모드(열심히 공부하는 상태)’로 돌아간다.
시계를 보니 어느덧 11시. 밴드에 퇴근 체크를 해야 한다. 매일 집에 가는 시간에 초시계를 찍어 올리고 오늘 하루 몇 시간 공부했는지를 공유한다. 매주 일요일 만났을 때 한 주의 목표 공부시간을 정하는데, 초시계로 인증한 시간이 목표량보다 부족하면 벌금을 내야 한다. 오늘은 학원에 왔다갔다하느라 실제 공부한 시간이 길지 않다. 나양은 내일 해야 할 일을 포스트잇에 써서 책상에 붙여놓고 독서실을 나선다.
아직도 봄바람이 차갑다. 하지만 곧 따뜻한 봄이 올 것이라 믿는다.
서지혜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