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이형석 기자]관객의 지지에 더해 ‘극장의 선택’이 흥행을 갈랐다. 경쟁자가 축소된 레이스에서 두 강자가 무주공산의 트랙을 마음껏 내달린 형세다.
‘수상한 그녀’와 ‘겨울왕국’이 겨울 극장가를 휩쓸며 기세 등등한 흥행행진을 펄쳤지만, 그 이면엔 한국영화계의 ‘불편한 진실’이 숨어있다. 영화 자체의 힘과 관객의 취향만큼이나 ‘극장의 지배력’이 흥행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수상한 그녀’는 지난 1월 22일 개봉해 13일까지 총 628만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수상한 그녀’보다 한 주 앞서 개봉한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은 박스오피스 1, 2위를 다투는 흥행레이스를 펼치며 13일까지 누적관객 820만명을 돌파했다. 일찌감치 국내 개봉 외화 역대 3위에 올랐다.
두 작품은 개봉 이후 서로 이외에는 위협적인 ‘경쟁작’을 만나지 않았다. 대적이 될만한 작품으로 꼽혔던 한국영화 ‘또 하나의 약속’과 또 다른 할리우드 애니메이션 ‘레고 무비’가 각각 다른 이유로 극장에 많이 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에 따르면 ‘또 하나의 약속’은 개봉일인 지난 6일 하루 동안 159개 스크린에서 653회가 상영됐고, ‘레고 무비’는 265개관에서 565회 관객을 만났다. 같은날 ‘수상한 그녀’는 704개관 3398회, ‘겨울왕국’은 694개관 3001회 상영을 기록했다.
‘레고무비’의 상영관수와 회차가 적었던 것은 할리우드의 한국 직배사인 워너브러더스코리아와 국내 1, 2위의 멀티플렉스(복합상영관) 체인인 CJ CGV, 롯데 시네마와 부율(배급사와 극장간 흥행수익 배분율)이 합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내 최대인 두 멀티플렉스 체인에 들어가지 못한 ‘반쪽 개봉’이었던 셈이다.
‘또 하나의 약속’과 ‘레고무비’, 두 편 모두 상영되는 극장의 지역과 상영 시간 및 회차까지 고려하면 앞선 두 흥행작과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의 숫자 차이 이상으로 관객을 만날 기회가 크게 적었다.
작품의 힘이나 대중적 재미 자체가 관객수 차이만큼 우열이 갈리는지에 대해선 시각이 다를 수 있으나 여러 객관적 사실을 종합해볼때는 그렇지 않아 보인다. 일례로 ‘레고무비’는 미국에서는 개봉 첫 주말 흥행수입에서 ‘겨울왕국’을 앞설 정도로 대중적 인기를 누리고 있는 작품이다. ‘겨울왕국’은 ‘와이드 릴리즈’(대규모 개봉) 첫 주말이었던 지난해 11월 29일~12월 1일 박스오피스에서 6739만1326달러의 수입을 올리며 2위에 올랐지만, ‘레고무비’는 지난 7~9일 6905만279달러의 입장료 매출을 기록하며 1위로 데뷔했다. 미국 내 언론ㆍ평단의 반응과 관객의 평점을 모아 놓은 대표적인 웹사이트 로튼토마토의 경우 선호도를 표기하는 ‘신선도’ 지수가 ‘레고무비’는 96%(전문가)-93%(일반관객)이었고, ‘겨울왕국’은 89%-89%였다. 국내 한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관객 평점은 ‘레고무비’와 ‘겨울왕국’이 각각 9.25와 8.46이었다.
‘극장의 지배력’이 영화산업과 흥행판도를 좌지우지하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는 아니며, 배급(상영) 규모가 매출을 결정하는 것도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같다. 하지만, 배급 규모 자체가 관객의 선호도와 취향을 반영하기 보다는 작품 외적인 이유로 결정된다면 영화와 극장 시장은 왜곡될 수 밖에 없다. 대형 할인마트가 제품의 질이나 소비자의 선호도는 외면한 채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상품만을 판매하는 셈인 것이다.
‘수상한 그녀’와 ‘겨울왕국’은 분명 좋은 평가를 받을만한 작품이지만, 기록적인 흥행행진에 과연 극장이 조성해준 ‘독점적인 지위’로 인한 반사이익은 없었을까? 극장시장의 ‘대형 마트’가 된 멀티플렉스가 과연 소비자인 관객의 선택권을 기본적인 수준에서나마 지킨 상황에서 두 편의 영화가 기록적인 흥행성적을 낸 것일까? ‘수상한 그녀’와 ‘겨울왕국’이 경신해가는 숫자를 보면서 꼬리를 드는 물음, 그래서 마냥 반길 수만은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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