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 섬나라 키프로스가 11일(현지시간) 통일협상을 재개했다고 연합뉴스가 보도했다. 분단 이후 꼭 40년 만이다.

지정학적 중요성으로 여러 국가의 각축장이었던 키프로스의 남쪽에는 그리스계가, 북쪽에는 터키계가 살고 있다.

그리스와 터키는 역사적으로 앙숙 관계이며 정교회와 이슬람교로 종교도 달라 키프로스는 오랜 식민 지배에서 벗어나자마자 분단의 역사로 접어들었다.

16세기부터 오스만제국이 점령하면서 그리스 민족이 다수인 키프로스에 터키 민족이 이주하기 시작했다.

1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지배국이 영국으로 바뀌었고 1960년 8월 영국과 그리스,터키 등 3개국 합의로 독립을 이뤘다.

독립된 키프로스의 헌법은 인구의 80% 정도를 차지한 그리스계에 유리하게 제정됐다. 대통령은 그리스계의 몫이었고 부통령은 터키계가 맡도록 했으며 정부 구성 비율은 그리스와 터키계가 7대 3의 비율로 나누기로 했다.

다수인 그리스계는 독립 직후 종교와 언어가 같은 그리스와 통합해야 한다는 운동을 벌였고 터키계 주민을 차별하는 정책을 강화했다.

1963년 마카리오스 대통령이 터키계 부통령의 거부권을 삭제하려 하자 터키계가반발해 유혈사태가 발생했다. 이에 유엔은 1964년 4월 평화유지군을 파견해 두 민족을 분리해서 관리하게 했다.

그러나 차별 대우가 계속되자 터키계는 1967년 12월 시한부로 임시정부를 수립했고 이를 계기로 그리스계의 탄압은 더욱 가중됐다.

키프로스를 지리적으로 완전히 가르게 된 계기는 1974년 7월 그리스계 장교들의쿠데타였다.

그리스 군사정권의 조종 아래 반터키 성향의 극단주의자 니코스 삼손을 대통령으로 추대하자 터키는 터키계 주민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침공해 섬 북부 지역(전체의 37%)을 점령했다.

터키는 1974년 12월 그리스의 군사독재 종식 등에 따라 키프로스가 쿠데타 이전상태로 돌아갔지만 군대를 철수하지 않았고 사실상 영토 분할과 두 개의 독립정부가출현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터키가 침공한 이듬해 키프로스는 1975년 주민교환을 추진해 다른 민족의 다른 국가의 길로 들어섰다.

북쪽의 그리스계 주민 20만여명은 남쪽으로 이주했고 남쪽의 터키계 주민 2만여명도 북부로 옮겨 완전한 분단이 이뤄졌다.

이를 계기로 북키프로스는 키프로스 연방공화국의 한 지방국가로서 키프로스 터키연방을 선포했으나 국제사회는 인정하지 않았다.

유엔은 1983년 터키군의 철수를 요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으며 이에 반발한 터키계는 ‘북키프로스 터키공화국’의 독립을 선포했다.

그러나 역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북키프로스 터키공화국의 독립은 법적으로 효력이 없다고 밝혀 터키로부터만 독립국으로 인정받고 있다.

현재 키프로스에는 남과 북을 가르는 184㎞의 분단선이 그어져 있다. ‘녹색 선’(Green Line)으로 불리는 폭 3m~7.5㎞의 완충지대는 유엔 평화유지군이 담당하고 있다.

2003년부터는 양측이 국경을 개방해 비교적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게 됐다.

현재 국경 검문소는 7개로 늘었고 상대 지역에 90일까지 체류할 수 있어 개방 10년 동안 주민 1천만여명이 왕래한 것으로 집계됐다.

키프로스의 통일협상은 1970년대부터 유엔의 중재로 끊임없이 열렸으며 특히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의 노력으로 마련된 연방국가 제안은 2004년에 주민투표를 하자는 데 합의하기에 이르렀다.

이 투표에서 북키프로스는 압도적인 찬성으로 가결했으나 남키프로스가 반대해 부결됐으며 2004년 남키프로스만 유럽연합(EU)의 회원국으로 가입하자 통일협상은 한동안 동력을 잃었다.

2010년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키프로스를 방문해 양측을 중재하면서 다시 통일협상이 재개됐으나 2012년 남키프로스가 EU 순회의장국을 맡은 것을 계기로 또 협상이 중단됐다.

헤럴드생생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