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갈수록 우경화하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사죄와 보상을 부인하고 있는 일본 우익세력들에 맞서 한ㆍ중ㆍ일 학자들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국제 연대 강화에 나섰다.
학자들은 일본군이 2차 세계 대전 당시 위안부를 강제동원하는 일에 직접 관여했다는 증거를 대는 등 위안부 문제 해결의 새로운 전기를 찾아나갈 예정이다.
한ㆍ중ㆍ일 학자들은 8~9일 중국 상하이(上海)사범대학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한ㆍ중ㆍ일 학술회의’에서 일본군 위안부 연구 성과 발표와 문제 해결 방안에 대한 의견을 모았다.
이신철 성균관대 동아시아역사연구소 연구교수, 부핑(步平) 전 중국사회과학원 근대사연구소장, 후지나가 다케시(藤永壯) 일본 오사카산업대 교수 등 이번 학술회의에 참석한 30여명의 한ㆍ중ㆍ일 학자는 삼국 간 협력은 물론 다른 피해지역인 인도네시아, 필리핀, 대만, 네덜란드 등과 군(軍) 위안부 문제에 대한 관심을 가진 세계 각국의 연구자들과 국제적인 연대 강화를 모색해 나가기로 했다.
특히 이번 회의에 참석한 연구자를 중심으로 일본군 위안부 관련 기록을 유엔 교육ㆍ과학ㆍ문화기구(유네스코) 세계 기록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한 노력을 적극 전개하기로 했다.
학자들은 또 한국과 중국, 일본에 흩어져 있는 사료들을 발굴하기 위해 공동 자료 조사를 폭넓게 진행하며, 해마다 정기적인 학술회의를 통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실상을 전 세계에 알려 나가기로 했다.
한편 이번 학술회의에서는 위안부 문제를 부인하는 일본 우익인사들의 주장에 반박하는 증거자료들도 제시됐다.
한혜인 성균관대 동아시아역사연구소 연구원은 중국 상하이 당안관(국가기록보관소) 소장 자료 분석을 통해 1937년 상하이에 진주한 일본군이 위안부 동원과 위안소 개설에 직접 관여한 공문서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그는 대표적인 문서로 상하이당안관에 소장돼 있는 ‘시민(중국인) 양수이창(楊水長)이 푸상(浦上)로 6번지에 개설한 위안소 상황에 대한 안건’(R-3-134)을 들었다.
1939년 2월 25일 상하이경찰국장이 상하이시장에 보고한 이 공문서는 중국인 양수이창이 위안소 개설을 위해 당시 상하이를 점령한 일본군 헌병대와 육군경비대에 행정 허가를 받았다는 사실을 확인해 주는 것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양 씨가 개설한 이 위안소는 중국인이 드나들지 못하는 ‘일본군 전용’이었으며 통역과 15세 여성을 포함한 7명의 위안부를 고용해 운영됐다.
한 연구원은 “이런 문서는 일본군이 중국 괴뢰정부를 이용해 군 위안소를 개설하고 관리하는 제도를 만들어갔다는 것을 확인해준 것”이라며 “일본군이 직접 부녀자를 강제 연행하고 친일 중국인 업자를 이용해 위안소를 개설한 공문서도 있다”고 말했다.
또 샤베이 난징(南京)당안관 책임자도 최근 확인된 1938년 일본강점기 괴뢰정부의 위안부 관련 공문서를 통해 일본군이 위안소 운영에 직접 나선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그는 “일본 괴리정부 위생국이 작성한 것으로 일본군 위안부 정기 신체검사 내용이 상세하게 기재돼 있는 자료를 확인했다”면서 “일본군이 중국인 기업 사무실이나, 3층짜리 주택도 마구잡이로 빼앗아 위안소로 활용했다는 시민들의 피해 사례를 기술한 자료들도 있다”고 말했다.
특히 이들 사례 가운데는 갑자기 재산을 빼앗긴 중국인이 일본군에 생활비를 달라고 요청하자 극히 적은 생활비를 주기도 했다는 자료도 있으며 당시 한국인과 중국인의 일본군 위안부와 관련한 적나라한 피해상을 보여주는 자료들도 있다고 전했다.
이지웅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