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서지혜 기자] 이모(57ㆍ여) 씨는 최근 자신의 카드를 이용해 400만 원이 누군가에 의해 인출됐다는 사실을 알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최근 이렇게 큰 돈을 쓴 적이 없는만큼 기억을 더듬어보니, 얼마 전 낯선 사람과의 통화에서 비밀번호를 알려준 사실이 떠올랐다. 전화를 건 여성은 자신을 보건소 직원이라 소개하며 “보건증이 만료돼 연장해야 하니 비밀번호를 설정하라”고 지시했다. 이씨는 이 여성이 지난 해 12월 한 음식점의 종업원 탈의실에 “화장실을 쓰겠다”며 들어와 자신의 신분증과 신용카드를 훔쳐 개인정보를 알아낸 후 이같은 보이스피싱을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서울 서초경찰서는 지난 해 5월부터 올해 3월까지 서울ㆍ경기 일대의 식당 등을 돌아다니며 신분증과 신용카드를 훔쳐 개인정보를 알아낸 후 보이스피싱을 통해 현금을 편취한 혐의(상습절도 및 여신전문금융업법 위반)로 방모(60ㆍ여) 씨를 구속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피의자는 보안이 허술해지는 점심시간대에 사무실과 식당, 미용실 등에 들어가 신분증과 신용카드를 훔쳐 나온 후 피해자 유형에 따라 “보건증을 갱신해야 한다” “사원증을 재발급 받아야 한다”는 등의 핑계를 대며 비밀번호를 재설정하도록 해 알아낸 비밀번호로 현금을 인출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같은 수법으로 방씨는 지난 해 5월부터 올해 3월 사이 서울과 경기 지역에서 7회에 걸쳐 약 2000만 원 가량을 편취했다.

피해자들은 자신의 카드 등이 도난당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상태에서 전화를 받고 자주 사용하는 비밀번호를 불러주다가 이같은 낭패를 당한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보건증 연장을 위한 비밀번호는 없지만, 이씨는 이런 사실을 알지 못하고 번호를 불러줬다”며 “실패한 경우도 있지만 상당수는 평소 자주 쓰는 비밀번호를 불러줬다가 피해를 봤다”고 말했다.

한편 최근 보이스피싱 발생건수가 늘어나면서 수법도 다양해지고 있다. 방씨와 같은 고전적 수법이 여전히 횡행하는 가운데, 스마트폰을 이용해 연예인부터 종교인까지 대상을 가리지 않고 피해가 확산되고 있다다. 범죄자들은 초기와 달리 우리말을 능숙하게 구사하면서 경찰, 금감원, 국세청 등 사칭이 가능한 모든 공공기관을 동원해 정교하게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 하지만 지난 해 보이스피싱 검거율은 54%로 2010년 81%에 비해서 오히려 낮아지고 있어 경각심이 요구된다.

치안당국은 “아직까지는 보이스피싱을 위해서는 개인이 주의를 하는 게 최선”이라며 “필요한 곳마다 비밀번호를 다르게 설정하고 공공기관이라며 비밀번호를 알려달라는 전화는 100% 보이스피싱이니 의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