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설 극장가에도 각양각색의 영화가 관객들을 맞는다. 줄잡아 20편이 넘는다. 영화팬들은 어떤 작품을 볼까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다. 티켓 부스 앞에서 망설이는 이들을 위해 설 연휴 동안의 상영작 중 10편을 골랐다. 그중에서도 영화를 함축하는 ‘결정적 장면’ 10개를 골랐다. 영화는 놓칠 수 있어도, 잊을 수 없는 장면들이다.

▶‘수상한 그녀’… 심은경은 ‘빗물’을 부르고, 성동일은 그녀를 ‘엄마’라고 불렀다 아들을 위해 평생을 헌신하고도 씁쓸한 말년을 보내야 했던 할머니가 어느 날 20대의 몸으로 회춘한다. 젊은 시절 한때 가수 못지않은 노래 실력을 뽐냈던 주인공은 되돌려받은 젊은 시절, 마이크 앞에 선다. 심은경이 채은옥의 ‘빗물’을 부르는 장면에선 괜히 눈물이 고인다. 그리고 영화 후반부 아들 역의 성동일이 스무 살 어머니를 보면서 ‘엄마!’라고 부를 때는 고인 눈물을 쏟지 않고 배길 수 없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남자와 소년이 아빠와 아들로 다시 만났다

작은 영화로는 천만급의 흥행이라 할 수 있는 관객 10만명을 넘긴 일본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설에도 상영된다. 애지중지 키워온 여섯 살 아들이 사실은 출생 직후 산부인과 병동에서 바뀐 남의 자식이라는 사실을 아빠가 알게 된다. 영화 후반부, 나란히 뻗어 있지만 서로 갈래가 난 길을 아빠와 ‘남의 자식’이 걸어간다. 그리고 마지막에 모이는 길을 따라 다시 만난다. 멋지고 아름다운 장면이다.

▶‘인사이드 르윈’… 그가 노래한다. 가슴을 후빈다

게임 같은 사기극이나 범죄영화를 통해 희비극이 동반된 삶의 아이러니와 페이소스를 빛나는 유머감각과 탁월한 스토리텔링으로 그려온 코엔 형제 감독이 연출한 음악영화다. 1960년대를 살았던 가난한 낙오자이자 포크뮤지션인 한 남자의 이야기를 통해 다시 한 번 삶의 비경을 탐색한다. 데이브 반 롱크와 밥 딜런, 피터 폴 앤 메리 등 1960년대를 수놓았던 전설적인 가수들의 노래가 등장하지만 그중에서도 영화의 오프닝과 엔딩에 나오는 ‘행 미, 오 행 미’는 압권이다.

▶‘조선미녀삼총사’… 하지원이 날아오르고, 가인이 활을 쏘았다 ‘조선미녀삼총사’는 미국 TV 시리즈와 할리우드 영화로 잘 알려진 ‘미녀삼총사’의 조선판이라 할 만하다. 빼어난 미모와 검술 실력을 갖춘 3명의 여검객의 활약상을 그렸다. 하지원, 강예원, 손가인이 연기하는 여검객 3명의 개성과 액션이 영화의 승부수다. ‘다모’와 ‘형사-듀얼리스트’에서 액션 본능을 보여줬던 하지원이 날아오르고, 무표정한 얼굴로 ‘시크’한 여궁사로 분한 가인이 활을 쏘는 장면이 볼만하다.

▶‘위험한 패밀리’… 로버트 드니로가 싸운다 먼저 이름 면면이 호화롭다. ‘좋은 친구들’의 마틴 스코시즈가 제작하고 ‘레옹’의 뤽 베송이 연출했다. 로버트 드니로와 미셸 파이퍼, 토미 리 존스 등이 출연한다. 이만하면 ‘레전드’급이다. 영화가 이름만큼의 최고는 아니지만 B급 범죄물과 블록버스터 액션영화의 분위기를 담뿍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막판 절정에 이른 액션 대결이 즐길 만하다.

▶‘폴리스스토리 2014’… 60대 청룽이 20대 격투기 선수와 싸운다 영화 ‘폴리스스토리’는 정교한 액션과 코믹한 내용으로 청룽을 아시아 최고의 액션 스타로 올려놓은 홍콩 경찰영화 시리즈로, 지난 1985년 첫선을 보였다. 이번 영화는 무려 29년 만에 내놓은 6번째 작품이다. 청룽표 고난도 액션만큼은 여전하다. 벽을 타 넘고 고층에서 떨어지는 장면은 ‘역시!’라는 감탄사를 자아낸다. 특히 링 위에서 젊은 격투기 선수와 벌이는 싸움은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

▶‘남자가 사랑할 때’… 황정민이 말한다, ‘이게 사랑 아닌가?’ 여자와 할 것 다해봤지만 정작 사랑만은 해보지 못한 밑바닥 인생. 상대가 누구고 상태가 어떻든 주먹과 협박을 동원해 빚진 돈은 반드시 받아내고야 마는 독한 ‘건달’. 마흔이 넘도록 형 가족에게 얹혀사는 한심하기 짝이 없는 남자. 그런데 그가 빚을 받아내야 하는 한 여자에게 빠진다. 닳고 닳은 건달의 사랑 이야기도 황정민이 하면 특별하다. 그가 말한다. “눈앞에 아른거리고 자꾸 생각나면 그게 사랑 아니냐?”

▶‘피끓는 청춘’ 교복 입은 이종석과 박보영은 매일 기차 타고 학교 간다

짜장면 값이 400원이었던 시절, 교복과 교련복, 나팔바지의 청춘시대. ‘80년대 마지막 교복 세대에 바치는 농촌 하이틴로맨스’를 표방한 ‘피끓는 청춘’의 남녀 고교생들은 모두 기차 타고 통학한다. 이종석, 박보영, 김영광이 주연을 맡은 이 영화는 이성을 잘 꾀거나 싸움을 잘하는 남녀 고교생 3명의 향수 어린 연애담을 그렸다. 그 기차 안에선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베일을 쓴 소녀’… 수녀원에 간 그녀가 신 앞에서 ‘아니요’라고 말했다 18세기 프랑스. 유복했던 집안이 몰락하면서 가족들의 강요로 수녀원에 들어가게 된 소녀의 잔혹사. 프랑스 계몽주의 사상가 드니 디드로의 금서가 됐던 18세기 소설 ‘수녀’를 원작으로 한 영화로, 특히 시대를 재현한 회화적인 영상이 아름답다. 수녀 서원을 받던 소녀가 신 앞에서의 맹세를 거부하는 장면으로부터 영화는 긴장을 더해간다.

▶‘만찬’… 엄마의 김치찌개를 먹었다 추운 겨울 저녁, 한 사내가 언 입김을 녹이며 어두운 골목길을 돌아 작고 허름하지만 가족 소리 도란도란 나는 집으로 들어선다. 벌써 다른 가족은 다 모여서 한 숟가락 먼저 뜬 참이다. 앞에는 돼지고기 숭숭 썰어 넣고 끓인 김치찌개가 김을 모락모락 내고 있다. 장성한 3남매가 연로한 부모와 함께 있는 풍경이 훈훈하기만 하다. 하지만 가난해도 행복했던 시간은 짧았다. 장남은 권고사직당하고, 여동생은 이혼하며, 학자금 빚 갚느라 대리운전 뛰던 막내는 사고를 낸다. 불행이 잠식했지만 그래도 유일한 위안으로서 가족의 의미를 파고든 한국 영화.

이형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