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신수정 기자]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소장 심영섭)는 18일 오전 신라시대 수도의 궁성(宮城)이었던 월성 중앙지역 5만7000㎡의 시굴조사 성과를 공개한다. 앞서 지난해 12일 고유제를 시작으로 사적 제16호 경주 월성의 시굴조사가 시작됐다.
이번 시굴조사는 지하 매장구조의 전반적인 양상을 파악하기 위해 실시했다. 현재까지 확인된 건물지와 담장의 흔적들은 유적 내 최상층에 위치하고 있다. 삼국 시대에서 통일신라 시대 전반에 걸친 토기와 기와들이 출토되는 것으로 볼 때 통일신라 시대 월성의 마지막 단계의 모습일 가능성이 높다고 문화재청은 전했다.
조사지역에서는 기단, 초석, 적심 등 건물지 6동과 담장 12기 등이 확인됐다. 이 중 정면 12칸, 측면 2칸의 3호 건물지(28m×7.1m)는 적심 위에 초석을 올렸고 담장과 배수로가 딸려있다.
유물은 고배, 병, 등잔, 벼루, 막새기와, 귀면기와, 치미 등 통일신라 시대 전반에 걸쳐 나타나고 있다. 토기에는 ‘정(井)’, ‘구(口)’자 형태의 음각기호가 새겨진 것도 있고, 월성의 해자와 안압지에서 이미 발견된 적이 있는 ‘의봉4년 개토(儀鳳四年 皆土)’, ‘습부(習部)’, ‘한(漢)’과 같은 글자를 새긴 평기와도 있다.
경주 월성은 1914년 일제가 남벽 부근을 처음 파헤친 지 100년만에 실시한 최초의 내부조사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월성은 서기 101년 파사왕이 처음 쌓았다고 전해지고 있다. 특히 삼국유사에 신라의 국보였던 전설의 피리 ‘만파식적(萬波息笛)’이 보관돼있다고 기록돼있다. 만파식적은 나라의 근심이 생길 때 불면 평온해진다는 전설의 대나무 피리다. 만파식적은 경주 월성 안의 천존고(天尊庫)에 보관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이번 성과를 토대로 오는 20일 개최될 문화재위원회에 월성 정밀발굴조사의 전환을 부의할 예정이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서울 풍납토성과 경복궁, 익산 왕궁리유적, 강릉 굴산사지 등 주요 국가사적을 조사한 인력을 대거 투입해 발굴조사를 적극 지원한다.
발굴조사와 함께 최신 정보통신(ICT) 기술을 활용한 디지털기록화연구, 성벽 축조공법연구, 고대 지역생태환경연구 등이 실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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