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결국 손을 들었다. 다른 쪽으로 해석하면 ‘선의(善意)’가 먹혀들지 않았다는 평가도 나온다.
삼성이 추진한 새 채용방식인 대학총장 추천제가 유보된 것은 대학 서열화라는 일부 대학권의 반발과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역여론 악화에 민감해진 정치권의 압력도 어느 정도 작용한 결과로 분석된다. 서류전형 부활을 통해 삼성직무능력시험(SSAT) 응시 과열을 진정시키려는 삼성의 채용혁신은 상당 부분 연기될 전망이다.
삼성이 대학총장 추천제를 추진했던 가장 큰 배경은 불필요한 스펙(spec) 쌓기 대신 전문성과 함께 종합적인 소양을 갖춘 인재를 선발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이 같은 인재를 가릴 1차 선택권을 대학총장에 넘겨 대학에 인재육성의 자율성을 부여하려 했다.
문제는 대학총장의 선택권을 숫자로 제한한 데서 비롯됐다. 당장 상대적으로 추천 인원이 적은 것으로 알려진 호남 및 여대에서 반발이 거셌다. 전남대는 28일 보도자료를 통해 “삼성의 신입사원 총장 추천 인원 배정은 균형감과 형평성을 상실한 행위”라며 “명백한 지역차별”이라고 강조해 불씨를 댕겼다. 6월 지방선거 재출마가 유력한 강운태 광주시장까지 확대간부회의에서 “배려와 균형, 특히 사회 약자에 대한 공생정신이 많이 부족하다”며 “삼성에 지역대학을 좀 더 고려해 달라고 건의하겠다”고 말해 이를 거들었다. 우원식 민주당 의원은 27일 삼성의 대학총장 추천제를 비판하는 보도자료를 배포하기도 했다.
‘결정타’는 4년제 대학 협의체인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 측의 움직임이었다. 삼성 측 방안에 반발한 대학 총장들이 집단행동 조짐을 구체적으로 보이면서 삼성 측을 난감하게 만들었다. 삼성이 추천권을 주더라도 대학총장들이 이를 거부하면 새 제도 자체를 실시하는 의미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삼성은 이날 구체적인 개선 방안은 내놓지 않았다. 연구ㆍ검토를 하겠다며 신중한 입장을 취했다. 하지만 대학총장에게 서류전형권을 넘기면서 숫자를 제한하지 않기는 쉽지 않다. 물론 대학총장에게 제한없는 추천권을 부여한 후 SSAT 등 삼성이 실시하는 전형 통과율에 따라 다음 해 추천자 숫자를 부여하는 방안도 가능하지만, 매년 대학별 삼성합격률이 사실상 공개되는 부담이 있다. 이 역시 삼성합격률에 따른 대학별 서열화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렇다고 SSAT 응시제한을 위한 서류전형 부활도 쉽지 않아 보인다. 삼성은 서류전형 부활에 따른 부작용인 스펙 쌓기를 막기 위해 대학총장 추천제를 도입했다. 그런데 총장추천제를 없앤 채 서류전형만 부활시키면 서류전형 통과를 위한 또다른 스펙 쌓기를 조장한 셈이 된다.
일각에선 삼성이 결과적으로는 허점을 보여 불발됐지만, 좋은 뜻을 갖고 추진했던 대학총장 추천제에 여러 가지 곱잖은 시각을 보내는 사회 일부 계층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제도상 미흡한 게 있다면 보완을 하면 되는데, 일부 계층의 반대논리가 거세 좌초됐다는 것이다.
교육계 관계자는 “삼성이 고시 열풍처럼 번진 SSAT제도를 개선키 위해 하나의 대책을 내놓은 것인데, 이것이 사회적으로 다양한 해석을 낳은 채 좌초된 것 같다”며 “견제가 난무하는 우리 사회의 자화상을 노출한 측면도 있다고 본다”고 했다.
홍길용ㆍ박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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