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신고접수만 3만명 육박…아빠·엄마역할 분담 생존위해 생계형 범죄 빈발…무조건 가족품 복귀보다 청소녀쉼터 등 제3의 길 열어줘야

서울 은평구의 한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이민석(18ㆍ가명) 군. 이 군은 지난해 10월, 3개월간의 가출생활 끝에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 이전에도 몇 번의 가출경험이 있었지만 대개 일주일을 넘기지 못했던 이 군이 석 달이라는 긴 시간 동안 집 밖에서 버틸 수 있었던 것은 팸(패밀리) 덕분이었다. 이 군은 같은 처지의 집을 나온 청소년들끼리 만든 ‘팸’에 가입했고, 남자 4명, 여자 2명으로 이뤄진 이 군의 ‘팸’은 관악구 봉천동의 반지하 방에서 숙식을 해결했다. 보증금 100만원은 각자 집에서 가져나온 돈으로 충당했고 월세 45만원은 각자 PC방, 당구장, 주유소 등에서 일한 돈을 모아 해결했다. 월급날이면 6명의 팸은 돈을 모아 고깃집을 가거나, 영화관을 갔다. 이 군은 헤럴드경제와의 통화에서 “나와 같은 처지, 같은 생각을 하는 친구들과 함께 있다는 생각에 외롭지 않았다”며 “누구의 간섭도 없이 자유로운 생활을 즐겼다”고 말했다. 3개월의 긴 일탈은 자취방에 들이닥친 이 군의 부모님에 의해 마무리됐다. 하지만 이 군은 “아직도 ‘팸’들과 연락을 꾸준히 하고 있다”며 “얼마 전에는 남은 친구들이 다른 가출청소년을 팸에 끼웠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섭섭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청소년들이 가출이 증가하면서 가출청소년끼리 조직화되는 이른바 ‘가출팸’이 새로운 세태로 등장하고 있다.

경찰청의 가출청소년 신고접수 현황에 따르면 2007년 1만8636명이던 가출청소년은 2011년 2만9281명으로 1만명 넘게 증가했고, 지난해에는 2만8996명으로 3만명에 육박한 것으로 조사됐다.

한편 경기도 가족여성연구원이 지난 1월 발표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가출 청소년 5명 중 1명은 ‘가출팸’을 경험했으며 남녀 혼숙이 대부분인 것으로 나타났다. 가출청소년 252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53명(21%)이 가출팸 경험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가족으로 돌아온 이 군처럼 가출팸 경험이 방황했던 사춘기의 잔잔한 추억으로만 남는 것은 아니다. 판단력이 흐린 일부 청소년은 가출팸에서 생계형 범죄를 저지르거나 흡연ㆍ음주 등 비행에 빠져 씻지 못할 전과를 기록하기도 한다.

▶탈선과 범죄 유혹에 빠질 우려 높다= ‘가출팸’이란 가출 패밀리의 약자로 청소년이 가출한 뒤 여러 명의 일행을 구해 가족을 이뤄 원룸, 고시원, 모텔 등에서 생활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들은 인터넷 카페나 스마트폰 채팅 앱을 통해 가출팸을 구성한 후 아빠ㆍ엄마ㆍ오빠ㆍ동생 등을 뽑아 역할을 분담한다. 혈연을 통한 가족이 아닌 또래집단과 함께 새로운 가족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하지만 생존을 위해 생계형 범죄를 일으키거나 흡연ㆍ음주 등 비행유혹에 빠질 위험이 높다. 4월 19일 서울 노원경찰서는 수도권 일대 휴대전화 매장을 턴 혐의(특수절도)로 A(18) 군 등 2명을 구속하고 공범 B(16) 양 등 2명을 같은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이들은 인터넷 카페에서 만난 가출청소년들로 팸을 결성하고, 스마트폰 등을 장물업자에 팔아서 번 돈으로 여관비, PC방비 등으로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학생들에게 성매매를 강요하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 9월에는 가출팸을 만들어 C(17) 양에게 채팅을 통해 남자를 골라 성매매를 강요한 D(18) 군 등 3명이 경찰에 검거되기도 했다. 이들은 C 양이 도망치면 다시 붙잡아 집단폭행을 한 뒤 성매매를 강요한 것으로 드러났다.

▶자신을 이해 못 하는 부모보다, ‘팸’에게 정신적 위로받는‘유사가족’=전문가들은 이런 가출팸에 대해 “가정불화 등으로 인한 소통의 부재를 겪는 청소년들이 함께 위로하고 행동할 수 있는 또래집단을 갈구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이 집단가출을 하는 것은 과거부터 존재했지만, 최근의 가출팸은 전혀 면식이 없는 아이들이 온라인을 통해 쉽게 결성되는 것이 특징”이라고 말했다. 설 교수는 이들 청소년이 “자신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사회나 가정보다, 서로에게 일종의 정신적 위로를 받으며 형성한 ‘유사가족’이 가출팸”이라고 분석했다.

류기옥 여성가족부 청소년자립지원과장도 “가정이 온전하지 못한 아이들이 가족과 유사한 공동체를 만들어 빈 마음을 채우고 싶어 하는 욕구”라고 가출팸을 정의했다. 한국청소년쉼터협의회 관계자는 “단순가출보다 가출팸들은 이해와 공유라는 동지애로 뭉치지만, 쉽게 만나고 헤어지는 성향을 보인다”며 “이는 인터넷이라는 공간을 통해 쉽게 형성되고 없어지는 관계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무조건적인 처벌보다는 이해와 존중을 통한 새로운 공동체 필요=이러한 가출팸 현상의 대책으로 전문가들은 그들의 공허한 처지와 관계를 채워줄 수 있는 따뜻함이 우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설 교수는 “가출팸 청소년들을 무조건 가족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며 “가정에서 학대나 핍박을 받는 경우도 있어 오히려 자신의 처지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청소년 쉼터 등으로 안내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재 쉼터 이용절차가 매우 복잡한 점을 설 교수는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그는 “현재 쉼터 입소를 위해서는 가출 청소년들이 범법행위를 하는 등 소위 사고를 쳐야 한다”며 “범법행위를 저지르기 전 방치된 아이들을 위해 입소절차를 간소화하고 그룹홈이나 대안가족에 편입시키는 적극적인 사회적 개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류 과장도 가출팸에 대해 “살아보고자 하는 더 나은 삶을 향한 마지막 몸부림이라는 시선도 있다”며 “더 나쁜 길로 발을 들이기 전에 사회울타리 안에서 품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류 과장은 여가부가 시행 중인 ‘아웃리치’제도의 확대 필요성을 주장했다. 전문가들이 거리를 배회하는 청소년 집단을 찾아가 천천히 대화를 나누며 관계를 맺고 쉼터 입소까지 권유하는 아웃리치제도가 있지만 인력과 비용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업무특성상 청소년들과 관계형성에 긴 시간이 필요한데, 현재 확보한 전문요원이 30명에 불과해 제대로 된 상담업무가 불가능하다는 것. 류 과장은 “아웃리치제도는 길거리에 방치된 아이들을 쉼터나 공동체로 자연스럽게 연착륙시키는 역할을 한다”며 제도 확대를 주문했다.

서상범ㆍ이슬기ㆍ석지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