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도 휴일도 없이 불 밝힌 도서관…

취업 줄줄이 낙방에 결국 대학원행 어설픈 석사는 학부생만도 못해 “스트레스에 여드름·원형탈모증까지…”

서울대생도 취업전쟁 내몰려 너나 할것없이 고시에만 올인 “학력으로만 취업되는 시대 끝났다”

설연휴를 앞둔 지난 7일 밤, 서울 마포구 신수동 서강대학교 캠퍼스에는 사람을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영하 13도의 한파가 불어닥친 가운데 어둠으로 뒤덮인 교정은 적막했다. 하지만 도서관만은 학생들의 열기로 뜨거웠다. 도서관엔 명절을 앞둔 들뜬 분위기 대신 비장함마저 감돌았다. 일부 학생들은 취업 준비 탓에 귀향도 포기한 상태였다. 대신 다음 명절에는 취업이라는 선물을 들고 고향을 찾기 위해 공부에 매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대학 경영학과 4학년인 김재인(가명ㆍ28) 씨는 “지난해 하반기 공채부터 취업을 준비하고 있지만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다”고 말했다. 고향이 광주인 김 씨는 “크리스마스고 연말이고 쉰 적이 없다”며 “이번 명절 연휴도 고향에 내려갈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다만 “올해 상반기 꼭 원하는 회사에 취직해 내년 설엔 상여금을 모두 부모님께 드리고 싶다”고 희망을 말했다.

서울 성북구 안암동 고려대학교 캠퍼스도 취업 열기만은 뜨거웠다. 방학 중인 데다 연휴를 앞둔 만큼 많은 학생들이 교정에 남아 있진 않았지만 이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진지했다. 늦은 밤, 추운 날씨로 잠을 깨우려는 듯 잠시 건물 앞에 나와 발을 동동거리다가 들어가는 학생들도 있었다.

경영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인 이희민(가명ㆍ24ㆍ여) 씨의 하루 일과는 마치 고3 때 같다. 새벽 6시 반 기상, 아침 7시에 학원에 가서 10시까지 영어수업,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도서관에서 취업공부, 5시부터 7시 반까지는 운동 및 저녁 식사, 7시 반부터 10시까지는 또 공부, 10시부터 11시까지 예습, 11시부터 12시까지는 내일의 계획표를 짜고 책을 읽다 잠자리에 든다. 이 씨는 “영어부터 자격증 공부, 취업정보 수집 심지어 인ㆍ적성검사 준비까지 방학 중에도 취업을 위해 준비할 게 너무 많다”고 말했다.

또 동국대학교 영문학과 4학년 전형만(가명ㆍ24) 씨는 “그나마 상경계열 학생들이 인문계열보다는 형편이 낫다”고 말했다. 인문계열 학생들에게 이제 상경계열 부전공이나 복수전공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는 것. 좁은 취업문을 뚫기 위해 조금이나마 취업에 유리한 과목을 공부할 수밖에 없단 것이다. 대학생활 내내 열정을 쏟았던 음악 동아리 활동도 접고, 영어 번역 아르바이트와 자격증 공부로 하루를 보내는 전 씨에겐 24시간이 짧을 지경이다.

취업난 탓에 학생들이 받는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았다. 한국어국어대학교 경영학과 4학년인 김재민(가명ㆍ26) 씨는 스트레스 탓에 여드름이 나기 시작해 병원에 다니는 중이다. 김 씨는 “면접에서 좋은 인상을 심어줘야 하는데 여드름 탓에 고민이 늘었다”며 “심지어 취직에 연달아 실패하고 원형탈모증이 생긴 선배도 있다”고도 했다. 김 씨는 “요즘은 학생들이 1학년 때부터 전공보다 토익에 매달리고 듣고 싶은 수업보단 학점을 잘 주는 수업을 듣는다”며 취업학원이 된 대학의 분위기를 전했다.

학교 주변 거리도 한산했다. 대표적 대학가인 신촌 명물거리 역시 일명 ‘부어라 마셔라’ 문화가 많이 사라졌다는 게 이 지역 상인들의 이야기다. 이 지역에서 10년 넘게 치킨집을 운영한 한 상인은 “취업난 탓인지 예전처럼 단골 학생들도 많지 않고 이젠 신촌도 대학생 상권이라고 보기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이곳에 소재한 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는 강은영(가명ㆍ30ㆍ여) 씨는 졸업 논문 작성을 앞두고 고민이 많다. 2008년 졸업 후 취업 준비를 1년 정도 했지만 줄줄이 낙방한 강 씨는 결국 대학원을 선택했다. 하지만 석사를 마친 강 씨는 취업을 생각하면 마음이 편치 않다. 강 씨는 “어설프게 석사를 마친 경우는 학부 졸업생보다 취업시장에서 나을 게 하나도 없더라. 게다가 전공이 사회학이고, 나이도 많아 취업이 쉽지 않을 것 같다”고 고민을 토로했다.

한편, 취업에 대한 고민은 서울대학교 학생들도 비껴갈 수 없었다. 공인회계사 시험을 준비 중이라는 경영학과 4학년 백성훈 (가명ㆍ26) 씨는 “솔직히 1학년 때 이 학교 들어왔을 때 삼성 등 대기업은 쳐다도 안 봤다”고 털어 놓았다. 하지만 막상 4학년이 되자 취업난은 현실이 됐다. 백 씨는 “입사원서를 20~30개 쓰면 그중에 서류 1~2개 붙고 최종면접 한 번 다녀온 게 전부인 친구들이 많다. 적성ㆍ직무 가리지 않고 웬만한 기업에는 다 원서를 뿌리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백 씨는 이어 “서울대도 이공계의 경우 엑소더스 현상이 심하다”며 “이과의 경우 의학전문대학원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대학가 분위기를 전했다. 또 “너나 할 것 없이 고시에 매달리는 것도 취업은 막막하고 적성도 찾지 못해서 그러지 않겠냐”고 반문했다.

자신을 사회대 학생이라고 밝힌 손은영(가명ㆍ25ㆍ여) 씨도 2년간 사법고시를 준비하다 취업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취업이 사법고시보단 쉬울 것이란 생각은 착각”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아울러 “서울대생이라고 취업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며 “학력으로만 취업이 되는 시대는 지났다”고 말했다. “요즘 학생들은 이력서에 한 줄이라도 쓸거리를 찾기 위해 뭐든지 한다”는 손 씨의 말에선 경쟁을 넘어 취업전쟁에 내몰린 대학생들의 절박한 현실이 절실히 묻어났다.

사건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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