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미제라블’ 장발장 쫓는 자베르 흔들린 신념 때문에 결국 자결
‘라이프 오브 파이’의 주인공 소년 신에 대한 믿음으로 극한상황 탈출
자신이 누구인지 깨닫지 못할때 인간은 주저 앉는다 죽음의 문턱서
‘레미제라블’에서 모든 등장인물들은 ‘도덕적 딜레마’에 빠진다. 장발장은 가난에 못 이겨 자신이 돌보던 누나와 조카들을 위해 빵 한 조각을 훔친 죄로 무려 19년을 감옥에서 살았다. 가석방이 돼도 죄수라는 낙인이 찍힌 그를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사회에 대한 분노와 세상에 대한 적의에 휩싸인 그는 은식기를 훔침으로써 자비를 베푼 신부에게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 하지만 신부는 장발장을 용서한다. 장발장을 불행하게 만든 사회와 그를 구원해준 신부. 그 사이에서 장발장은 타락한 자신을 보며 울부짖는다. 판틴 역시 저주받은 운명의 인물이다. 아빠 없는 아이를 낳고, 같은 공장 동료들의 질시와 모함으로 해고되고, 결국은 몸까지 팔아야 하는 처지가 됐다. 빵 한 조각 훔친 죄로 19년을 복역한 장발장의 인생과 다르지 않다.
자베르는 어떤가? 소설에서 그는 교도소에서 죄수의 아들로 태어난 인물로 범죄에 대해 극도의 혐오와 편집증적인 거부감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장발장을 집요하게 뒤쫓는 이유다. 그는 아마도 모든 인간은 근원적으로 악하게 태어났다고 믿었을 것이다. 감시와 처벌만이 악한 인간들의 사회를 지키는 힘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장발장 때문에 그의 신념은 흔들린다. 이들의 앞에는 두 개의 길이 있다. 세상에 대한 분노에 자신을 맡기고 약육강식의 원리대로 살아갈 것인가, 선과 정의를 믿고 신의 율법을 따를 것인가. 결국 ‘믿음’의 문제다. 그리고 ‘믿음’은 곧 정체성이며 ‘생명’이다. 믿음이 무너지고, 자신이 누구인지 깨닫지 못할 때 사람은 갈림길에서 주저앉게 돼 있다. 그것은 죽음이다. 믿음이 무너진 자베르는 결국 자결했다.
리안 감독의 ‘라이프 오브 파이’의 주인공 소년 역시 끊임없는 선택과 딜레마에 마주한다. 인도에서 동물원을 운영하며 행복하게 살던 파이의 가족은 사회의 정치적 불안과 정부의 지원 중단으로 캐나다 이민을 결정한다. 그러나 동물들과 함께 탑승한 배가 침몰해 파이만 구명정인 조각배에 올라 간신히 살아난다. 파이는 서구의 합리적 이성을 믿는 아버지와 신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던 어머니 사이에서 자라났다. 그는 굳이 말하자면 어머니 편이었고, 신에 대한 신실한 믿음을 가진 청년이 됐다. 고기를 즐기는 아버지 대신 채식만 고집하는 어머니의 식성도 소년에게 그대로 대물림됐다. 어머니의 무릎 위에서 힌두의 신화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신에 대한 이야기에 넋을 잃던 소년은 우연치 않게 이슬람과 가톨릭을 접한 후 알라와 여호와까지 마음 속 신전에 받아들였다. 하지만 파이가 믿는 ‘신’은 가족들을 모두 거센 폭풍우 속으로 집어삼켜버렸다.
운명의 시험은 계속됐다. 간신이 오른 구명정에는 얼룩말과 오랑우탄, 하이에나 그리고 ‘리처드 파커’라는 이름의 호랑이가 동승했다. 태평양 한가운데 뜬 조각배, 파이가 부여잡은 ‘작은 세상’은 처참했다. 굶주림에 못 이겨 동물들은 서로의 살과 피를 탐했다. 결국은 파이와 호랑이만 남게 됐다. 호랑이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으며 구명정에 있던 물과 비상식량으로 간신히 연명하던 파이. 그러나 바다는 마지막 남은 물과 통조림까지 모두 앗아가고, 채식주의자였던 파이는 물고기를 잡아 먹는다. 이제 호랑이는 피에 굶주린 눈빛으로 파이를 바라본다.
인도의 동물원에 있던 시기, 어린 파이는 홀로 호랑이에 접근하다 아버지로부터 혼난 적이 있다. ‘이성주의자’인 아버지는 파이에게 “호랑이는 짐승이라는 것을 명심하라”며 살아있는 어린 염소를 호랑이 앞으로 던져줘 잡아 먹히는 끔찍한 모습을 보게 한다. 이 ‘원초적 기억’은 자연과 사회를 가로지르는 철의 법칙, 약육강식의 세계에 대한 상징이다. 파이가 호랑이의 위협으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구명정에 남아있던 ‘조난의 기술’이라는 책자와 아버지가 깨우쳐준 정글의 논리 때문이었다. 그것은 신이 아닌 ‘이성’의 세계였다. 하지만 중년 남자로 성장한 파이는 여전히 채식주의자이며 가톨릭과 이슬람, 힌두의 신을 믿는 사람으로 살아간다. 조난으로부터 파이를 구해낸 것은 단순히 생존의 기술뿐이었을까. 영화는 운명과 싸워가는 위대한 용기, 그리고 신과 생명에 대한 믿음이었음을 말해준다.
영화는 파이가 극한 상황 속에서도 잃지 않았던 ‘신에 대한 믿음’을 보여준다. 파이가 말하는 것처럼 그때의 신이란 알라이거나 여호와거나 크리슈나이거나, 아니면 그 모두이거나 관계없다. 그렇다고 할 때, 파이에게서 신이란 ‘선과 정의의 체계’이며 호랑이와의 관계에서 보여준 ‘생명 존중과 공존의 원리’가 아닐까. 이타적 유전자가 새겨진 인간 혹은 생명에 대한 믿음이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