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영상ㆍ신상윤 기자]지난달 27일 서울 인사동 초입. 김영훈 대성그룹 회장을 만나기 위해 인사동을 찾았다. 약속시간이 30분 남았기에 초입 대리석 의자에 앉았다. 봄볕이 너무 따스했다. 포근했다. 10여분 남짓 졸았다. 눈을 뜨니 보이지 않던 것이 한눈에 들어온다. 붓 모양의 석탑. 아, 이런게 있었구나. 석탑 세로로 ‘대한민국전통문화예술중심 인사동(大韓民國傳統文化藝術中心 仁寺洞)이라는 글귀가 보인다.
대성그룹 본사(동덕빌딩)가 위치한 서울 관훈동은 흔히 인사동으로 불린다. 우리 전통문화에 현대 감각을 접목시킨 옛스러우면서도 세련된 인사동의 거리에는 바쁜 도시인들의 종종걸음을 팔자걸음으로 바꾸는 여유로움이 느껴진다. 전통과 현대의 융합, 즉 ‘옛 것을 익혀 새 것을 안다’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의 덕목이 행인의 발걸음에도 반영되는 것일까.
그러고 보면 대성그룹은 인사동과 닮았다. 1947년 국내 최초로 전통 굴뚝산업인 연탄사업(대성산업공사)으로 시작, 국가 기간산업인 에너지사업을 부흥시키고 정보기술(IT)과 교육ㆍ문화 콘텐츠 등 새 사업을 융합시켜 다양한 분야로 뻗어나가고 있는 것이 그렇다. 전통을 바탕으로 한 현대의 접목, 인사동에 대성그룹이 위치한 것은 운명일지도 모른다.
약속시간에 맞춰 회장실에서 김영훈 대성그룹 회장을 만났다. 악수를 하는 손이 힘차다. 신학도 출신인 김 회장은 온화한 인상에 말투도 차분했다. 그런데 사진 촬영을 위해 회장실 한 켠에 놓여있던 국궁을 들고 시위를 당기는 포즈를 취하자 강한 카리스마가 느껴진다. 활은 그의 친구다. 활을 쏘는 과정이 바로 경영이라는 철학 때문이다.
김 회장의 일성(一聲)은 확고했다. 그는 창업주의 뜻을 이어받은 경영을 강조했다. 사옥과 같은 겉포장에는 관심이 없다고 했다. “선친은 사옥을 살 돈이 있으면 그 돈으로 공장 등 각종 시설을 갖추는 데 투자하라”고 했다며 “선친이 남기셨던 휘호 중 국조무궁(國祚無窮ㆍ나라의 복이 영원히 무궁하기를 바란다)을 가슴에 간직하고 있다”고 했다.
새정부가 강조하는 창조경제에 대한 철학도 내비쳤다. 그는 “창조경제는 작은 아이디어가 큰 돈이 되는 경제, 정보통신기술(ICT)처럼 핵심 기업과 관련 업계가 모두 이익을 누릴 수 있는 경제, 법과 원칙이 있는 경제로 풀이된다”며 “대성그룹이 추진하고 있는 신재생에너지사업이 대표적인 예”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조심스럽지만, 오너 2~3세의 갈 길도 제시했다. 김 회장은 “오너 2ㆍ3세들은 국가의 영웅, ‘내셔널 히어로’가 돼야 한다”며 “국내에서만의 (이익에)갇혀있지 말고 나라의 미래를 창조하기 위해 해외에 적극적으로 진출해야 한다”고 했다.
1시간30분 계속된 대화에선 김 회장의 겸손 속에 때론 확신과 때론 자신감이 투영된 경영코드가 마구 쏟아졌다.
#“셰일가스, 에너지시장에 큰 변화 가져올 것” -세계에너지협의회 공동의장을 맡고 있는 에너지 전문가다. 지난 겨울 문제가 됐던 에너지 부족 사태를 어떻게 보나.
▶우려했던 상황이 발생하지 않은 것은 다행이었지만, 전력 위기가 해마다 여름, 겨울에 되풀이되면 안 된다. 단기간에 공급량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대규모 발전소 건설이 최선의 해결책이겠지만, 장기적 국가 에너지 전략을 감안하면 가급적 분산형 전원시설 확충이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수요 측면에서 제5의 에너지원이라 할 수 있는 에너지 효율을 높일 수 있는 다양한 정책들도 좀 더 포괄적으로 시행해야 한다.
대성그룹은 연탄사업으로 출발했지만 화석에너지에서 신재생에너지로 방점을 옮겨가고 있다. 2003년부터 몽골의 나란, 울란바타르, 만다흐 지역에 사막화 방지와 전력 공급을 위해 몽골에 풍부한 태양광과 바람을 활용한 복합발전시스템인 ‘솔라윈’을 구축해왔다. 에티오피아, 카자흐스탄, 방글라데시 등에도 전기, 물, 식량을 공급할 수 있도록 하는 하는 등 에너지사업을 통해 개발도상국에게 적정기술을 지원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김 회장은 “국내에서도 올해 생활폐기물을 연료로 재활용하는 도시 생활쓰레기 고형화연료 프로젝트인 RDF(Refuse Derived Fuel) 프로젝트와 LNG를 연료로 전기를 생산해 대구 신서혁신도시에 전력을 공급하는 발전소 건설 사업을 컨소시엄 구성을 통해 추진할 예정”이라고 했다.)
대성그룹 사업의 양대 축은 에너지와 IT 및 교육ㆍ문화 콘텐츠다. 그러나 과거와 달리 비에너지 부문에 부쩍 신경을 쓰고 있다. 신재생에너지사업을 기업의 신성장동력으로 삼고 있지만, 전통적 에너지사업은 화석 연료가 기반이라 지속적인 성장에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비에너지 부문을 통한 사업 다각화로 이를 극복하고자 한다.
-북미 지역을 중심으로 셰일가스 열풍이 불고 있다. 어떻게 전망하나.
▶셰일가스는 채굴할 수 있는 자원량이 약 1500억t으로, 전 세계 인구가 60년간 사용 가능하다. 수입이 본격화되면 가스시장을 포함한 에너지시장 구조 전체에 큰 변화가 올 것이다. 석유ㆍ석탄 가격도 하향안정세를 보일 것이다. 중동 산유국 중심의 에너지 질서에도 변화가 생길 것이다. 대성그룹도 셰일가스에 따른 에너지시장의 변화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가스를 활용한 분산형 발전 사업 등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오는 10월 세계에너지협의회(World Energy CouncilㆍWEC) 공동의장에 취임한다. 각오가 있다면.
▶2005년 처음 WEC 부의장이 됐을 때만 해도 우리나라의 위상은 그리 높지 않았다. 그러나 에너지시장에서 한국, 중국, 인도 등 신흥시장의 위상이 크게 높아진데다, 우리나라가 WEC 최대 행사인 세계에너지총회를 유치하는 등 주요한 역할을 맡은 것이 국제 사회의 시각을 변화시켰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우리나라에 대한 국제 사회의 기대와 경계가 공존하고 있다. 앞으로 WEC의 영향력을 전세계로 더욱 확대하고, 지구촌 곳곳에서 발발하는 에너지 관련 이슈에 대한 대응 방안을 마련하는 일에 주력할 계획이다.
(김 회장은 오는 10월13일부터 5일간 열리는 대구세계에너지총회 유치에 WEC 아태 담당 부의장으로서 큰 역할을 담당했다. 총회에는 전세계 100여개국에서 정부, 민간ㆍ국영기업, 학계 등 에너지 분야 관계자 5000여명이 참여, 각종 의제 중 특히 에너지 안보, 보편적인 에너지 공급, 환경책임이라는 ‘에너지 트릴레마(Energy Trilemma)’에 대한 해결 방안을 논의한다.)
#“국조무궁(國祚無窮), 선친의 뜻이자 기업정신” 김 회장은 2004년부터 10년째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리는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에 개근하고 있다. 김 회장은 포럼에 대해 “기업가들이 돈벌이가 아니라 세계 모두가 당면한 고민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아이디어를 얻는 자리”라며 “세계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귀한 자리라 빠지지 않고 참석한다. 신사업 개발에 아이디어와 영감을 주기도 한다”고 했다.
김 회장은 포럼에서 알게 된 ‘협상학의 대가’ 다니엘 사피로 미국 하버드대 교수와의 인연을 소개했다.
“샤피로 교수의 방한과 대성그룹 임직원 대상 협상 워크숍을 주선할 수 있었던 것도 포럼에서의 만남이 계기가 됐어요. 저는 세계에 협상학을 전파함으로써 세계의 평화와 발전에 기여하고자 하는 샤피로 교수의 아이디어에 크게 감동받았고, 샤피로 교수도 제가 가지고 있는 비전, 즉 에너지를 바탕으로 세계의 빈곤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취지에 공감해 서로 가까워지게 됐죠.”
-대부분 기업과 달리 자사 소유 사옥을 갖고 있지 않다.
▶선친의 뜻이었다. 선친은 사옥을 살 돈이 있으면 그 돈으로 공장 등 각종 시설을 갖추는 데 투자하라는 뜻을 갖고 있었다. 지금 건물도 우리가 빌딩을 지어주면서 몇 개 층을 빌려 들어가게 된 것이다. 선친이 남기셨던 휘호 중에 국조무궁(國祚無窮)이란 말이 있다. 선친은 그런 뜻으로 사업을 했다.
-그런 것이 바로 기업가정신일텐데. 2~3세의 정신은 이에 비해 좀 희석됐다는 얘기도 있다.
▶대부분 기업 창업주들은 대개 내수업종으로 시작해 회사를 성장시켰다. 하지만 2ㆍ3세는 다르다. 주인 의식은 있는데 스스로 창업을 해 보지는 않았다. 가끔 창업가 정신을 잊고 있지 않은가 걱정된다. 2ㆍ3세들이 창업가 정신을 이어받을 수 있도록 기업 규모를 늘려 세계시장에서 경쟁해야 한다. 다보스포럼 가면 느끼지만 아직 국내기업의 규모는 작다. 2ㆍ3세 오너들이 포럼에 가서 그런 걸 느끼고, 스스로 겸허해졌으면 좋겠다.
-박근혜정부의 핵심정책이 창조경제다. 이에 맞춘 대성그룹의 전략이 있나.
▶새 정부가 강조하는 창조경제는 작은 아이디어가 큰 돈이 되는 경제, 정보통신기술(ICT)처럼 핵심 기업과 관련 업계가 모두 이익을 누릴 수 있는 경제, 법과 원칙이 있는 경제로 풀이된다. 대성그룹이 추구하는 사업들은 현 정부가 추구하는 창조경제와 이미 맞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대성그룹이 추진하고 있는 신재생에너지사업이 대표적인 예다.
신재생에너지 사업에 관한한 누구보다 많은 생각을 해봤기 때문일까. 일사천리다.
“RDF 사업은 생활 폐기물 중 가연성 폐기물을 선별해 고형연료로 가공한 뒤 이를 RDF전용 발전기 및 보일러 연료로 활용함으로써 열과 전기를 생산하게 됩니다. 쓰레기도 자원이 될 수 있다는 창조적인 아이디어죠. 지금까지 매립 또는 소각 처리해야 했던 쓰레기를 연료로 재가공하면 쓰레기 처리량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어 환경 오염을 줄일 수 있습니다. RDF 전용 발전기 및 보일러 제조회사는 장비 생산 주문이 늘어나는 만큼 매출을 늘릴 수 있고요. 생산된 열과 전기는 석유나 석탄을 원료로 생산한 에너지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공급되니 사용자에게도 이익이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