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우리에겐 교황이…’ 종교인의 갈등과 고뇌의 삶 그 고요함과 긴장 속에도 일상의 천진난만한 웃음이…
누구는 떠나고, 누구는 돌아온다. 그 길은 성(聖)과 속(俗), 신의 길과 인간의 길 사이에 있다. 30대쯤 돼 보이는 상욱 행자는 세속의 길에서 문득 ‘부처’를 만났다. 명문대 졸업 후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교수 임용 면접을 앞두고 출가했다. 미국 대학에서 우연히 들렀던 ‘젠(zenㆍ선ㆍ禪)센터’에서 불가와의 만남이 삭발로 이어졌다. 가족에게 설득당할 것 같아서 편지 한 장 써놓고 부처 앞에 엎드렸다. 그래도 부모님이 몇 번이고 수행 도량을 찾아 울고 매달리며 ‘회심’을 청할 때 세속의 연은 끝내 행자의 눈물을 막지 못한다. 그런가 하면 어린 시절 부모도 모른 채 절에 버려져 숙명처럼 계를 받은 20대쯤의 선우스님도 있다.
불교에선 세속(가족)의 인연을 맺지 않은 이가 부처에 귀의하는 경우 ‘동진스님’이라고 부른다. 동진스님은 모든 승려가 선망하는 운명이지만 정작 선우스님은 가족을 만날 수 있는 다른 행자와 스님을 부러워하며 부모의 얼굴도 모른 채 자란 자신의 삶에 회한을 내비친다. 어느 길가에서든 마주칠 법한 20대의 신세대도 목탁과 독경 소리 그윽한 산사에서 마주칠 수 있다. 그저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다른 종교는 신을 믿지만 절은 나를 믿는 곳”이라는 생각으로 출가하게 됐다는 말괄량이 소녀에 개구쟁이 소년같은 민재 행자다. 나이 지긋한 영운스님은 17세에 출가해 매일 100배씩 약 3년여간 백만배를 한 후, 40년 동안 하루같이 선방을 지키며 수행해왔다고 한다.
비구니 스님의 수행도량인 백흥암에 카메라를 들이댄 다큐멘터리 영화 ‘길 위에서’(감독 이창재ㆍ23일 개봉)에서 만날 수 있는 사연이다. 백흥암은 경북 영천시 청통면 팔공산 자락에 터를 잡은 사찰로, 1년에 두 차례 외에는 일반인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된, ‘금남’ ‘금속(禁俗)’의 공간이다. 영화는 새벽 3시 잠든 경내를 깨우는 도량석 목탁 소리부터 밤 9시까지 이어지는 예불과 명상, 설법 등 수행 정진의 과정과 밥짓고 청소하며 밭을 일구는 비구니 스님의 일상을 때로는 산사에 이는 바람소리에도 깨어질 듯한 고요와 긴장 속에서, 때로는 사춘기 소녀 같은 왁자지껄한 웃음 속에서 담아낸다.
카메라를 들고 찾아간 감독에게 백흥암의 큰스님은 “여기서 무엇을 보고 싶으신가”라고 물었다. 그리고 감독은 마지막에 “내가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라며 자문한다.
우리와 다르지 않은 업(業)을 이고 있는 행자의 번뇌였을까, 수년간을 오직 방 한칸(무문관)에 들어앉아 정진하는 스님의 ‘수양’이었을까,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장난치는 행자스님의 천진난만한 웃음이었을까.
인간의 길과 신의 길 사이의 번뇌는 어느 종교인이라고 다를까. 이탈리아의 거장 난니 모레티 감독의 ‘우리에겐 교황이 있다’는 세속의 연을 끊지 못해 “아버지여, 내게서 이 잔을 거두소서”라고 기도할 수밖에 없었던 한 신부의 이야기다. 그가 끝내 받아들기를 거부한 ‘신이 내린 운명’은 어처구니 없게도 교황의 직분이다. 극중 교황이 선종하고 바티칸에선 후임을 뽑는 콘클라베(전 세계 추기경이 모여 교황을 뽑는 비공개 회의)가 열리면서 영화는 시작한다. 그런데 근엄한 표정의 추기경의 마음 속 기도가 한결같다. “주여, 저는 아니랍니다.” “제발 저만은 교황으로 뽑히지 않게 해주소서.”
영화의 주인공인 멜빌 추기경도 그 중의 한 명이었지만 거듭되는 회의에서 결국은 세계에서 가장 드높은 영예의 ‘신의 사명’을 받게 된다. 그래도 멜빌은 “살려주시오. 나는 교황을 못 하겠소. 제발 저를 놔주시오!”라고 외친다. 견디다 못한 멜빌은 바티칸으로부터 도망치고, 세상 사람과 섞여 며칠을 보낸 끝에 숨기고 살아왔던 ‘또 다른 나’를 만난다. 그것은 가족을 그리워하는 아들이자 동생이었고, 무대를 소원하던 젊은 연극지망생이었다. 평생 ‘신의 길’을 걸어왔던 존경받는 사제였지만, 그조차도 세속의 번뇌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던 것이다.
묘하게 겹쳐지는 장면. ‘길 위에서’에서 새해를 맞는 비구니 스님은 한 방에 모여 윷놀이를 즐기며 어린아이같이 펄쩍펄쩍 뛴다. ‘우리에겐 교황이 있다’에서 새 교황을 발표하지 못해 바티칸에 갇힌 추기경은 신나는 공놀이로 시간을 보낸다.
“이 잔을 거두소서”라는 ‘인간의 길’과 “제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는 ‘신의 길’. 그 사이에는 짐작 못할 번뇌가 놓여져 있을진대, 그래서 사람은 ‘길동무’와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아닐까.
혜민스님은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에서 이렇게 말했다.
“혹자는 떼제 공동체(프랑스 부르고뉴 지방에 모여 종교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무종파 기독 사제의 공동체)나 절 같은 곳의 삶은 억압되고 엄격하고 고행이 뒤따라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공동체 생활에는 단순하면서도 소박한 아름다움, 마음의 잔잔한 평화와 즐거움이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