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송전탑 공사 재개 현장 가보니
아침부터 공사차량·인력 등 분주 주민들 “내집·선산 꼭 지키겠다” 농기구든 손에 플래카드·인분까지
“우리가 돈을 달라카나, 뭘 달라카나? 우리는 우리 집에 사는 게 좋아서 그냥 살겠다긴데, 나라가 왜 그거 하나를 못 지켜주는긴데? 내가 여기서 캭 죽어뿌려야 이짓거리들 그만할긴가?”
경남 밀양시 부북면 위양리 평밭마을은 밀양 송전탑 건설 반대 주민들에게 ‘성지’가 돼가고 있었다. 동틀 무렵인 오전 6시부터 마을 입구 길목에 둘러앉은 할머니들만 10여명. 쭈글쭈글한 손으로는 인분통을 쥐어들었다.
두 시간 정도 흐른 오전 8시 한전 공사차량과 인력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경찰도 대거 몰려왔다. “무섭지 않냐”는 질문에 최모(81) 할머니는 “우리는 이렇게 3년 이상 지내와서 이제 익숙하다”고 말한다.
시골 할머니의 눈빛이 마치 투사가 된 듯하다. 최 할머니는 “어차피 죽는 거 한 번 죽지 두 번 죽냐”며 “그냥 내 집과 우리 선산을 지키다가 죽는 게 내 속이 편하다”고 했다.
죽는다는 말이 그냥 하는 말이 아닌 것처럼 들렸다. 마을 이장 김모(80) 할아버지는 나무에 매달아놓은 밧줄을 목에 매달고 한전 공사인력이 다가오면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 모른다고 겁을 줬다.
폭 3m밖에 안 되는 마을 입구 도로에 몰려든 70~80대 노인은 40여명. 이들은 이미 인근의 집을 놔두고 며칠 전부터 마을 입구 움막에서 생활해오고 있었다. 김 할아버지는 “한창 올해 농사 준비로 바빠야 할 시기지만 송전탑이 들어서면 농사고 뭐고 다 의미가 없어지니 이렇게 다들 나온 거 아니냐”고 외쳤다.
격렬한 저항에 한전 직원들도 100여m 거리에서 공사차량들을 준비만 해두고 진입하지 못했다. 한국전력은 울산 울주군 신고리 원전에서 경남 창녕군 북경남 변전소에 이르는 90.5㎞ 구간에 765㎸급 송전설비를 설치하기 위해 울주군, 기장군, 양산시, 밀양시, 창녕군 등 일대 5개 시군에 철탑 161기를 세워야 한다. 착공 후 공사가 11차례에 걸쳐 중단됐고 주민의 반대로 밀양 5개 면의 철탑 52개를 짓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해 말 조환익 한전 사장이 취임한 이후 주민들과의 대화는 크게 늘었다. 성과도 있었다. 한전 측에 따르면 30여개 마을 가운데 절반인 15개 마을은 이미 한전의 보상안에 합의를 한 상태다. 하지만 남은 15개 마을에 대해서는 더 이상 설득이 불가능하다는 게 한전의 시각이다.
반대 주민들은 이분화됐다. 기존 송전탑 건설 반대 주민을 대표하던 ‘밀양 765㎸ 송전탑 반대대책위’에서 주요 인력들이 빠져나와 두 달 전 ‘밀양시 5개면 주민대표위원회’를 따로 구성했다.
김상우 주민대표위원회 실무위원은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한전 측으로부터 합리적 보상안을 얻어내기 위해 계속 협상할 것”이라며 “이미 밀양에는 외부 정치세력들이 너무 많이 들어와 송전탑 건설 이슈를 지역 주민들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끌고가고 있다”고 말했다.
부산에서 귀촌해 5년째 밀양에서 거주하고 있는 한모(66) 씨는 “송전탑 하나를 두고 마을 인심은 이미 갈라진 지 오래”라며 “건설 여부를 떠나 한전과 정치권, 시민단체들의 기싸움으로 찢어진 민심은 회복할 수 없는 것 아니냐”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밀양=윤정식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