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터나 TV광고 속 ‘고령화가족’은 그야말로 하극상 코미디다. 하지만 막상 베일을 벗은 이 영화는 한 편의 따뜻한 가족물이었다.
영화를 연출한 송해성 감독은 “위로받고 싶었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엔딩크레딧이 모두 올라간 뒤 한참 후에도 뭉클한 감정이 오랫동안 남아 있었다.
애착이 큰 영화였으나 개봉은 쉽지 않았다. ‘고령화가족’은 제작 단계부터 난항을 겪었다. 지난 2010년부터 1년 간 준비를 했지만, 투자 여건 등을 문제로 엎어졌다. 송 감독은 “쉽게 만들어진 영화가 아니다. 투자사들에게 많이 외면을 받았다”면서 씁쓸하게 웃어 보였다.
# “상처받은 마음을 보듬어 준 영화”
‘고령화 가족’은 송해성 감독에게 힐링 무비 그 자체였다. 마음 속 깊숙이 묵혀 있던 응어리들과 상처들을 모두 씻겨준 작품이다.
“세상을 살면서 안 힘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저 역시 많이 힘들었죠. 요즘 다들 ‘힐링’을 찾잖아요. 스스로 많은 위로가 됐던 작품이에요. 그이번 영화는 ‘힐링’이라는 말을 대놓고 하지는 않았어요. 노숙자가 왜 노숙자로 살아야 하는지 그 속사정은 모르는 법이잖아요. 누를 초인종이 없어서 노숙자로 살 수도 있는 거고요. 그런 속사정을 자양분으로 삼아서 영화를 만들어보고자 했죠.”
‘카라’, ‘파이란’,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모두 관객들의 심금을 울렸던 작품들이다. 공통점 하나는 꼭 모든 주인공이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 송 감독은 이번 영화를 통해 어두운 그늘을 벗어나고자 했다.
“왜 내 영화 주인공들은 다 죽어야 했는지 생각했죠.(웃음) 이번에는 즐거운 영화를 하고 싶었어요. 희망이 보이는 작품을 하고 싶었죠. 그러다가 소설 ‘고령화 가족’을 보게 됐어요. 영화보다는 훨씬 내용이 셉니다. 이걸 한 번 유쾌하게 풀어보자고 생각했어요. 스스로 변화도 하고 싶었고요. 부정적인 사람이 긍정적으로 바뀐다고 할까요?”
송 감독은 인모(박해일 분)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인모가 10년 동안 제대로 된 영화 한 편 성공시키지 못하잖아요. 그게 결코 이상한 게 아니죠. 작품을 그때까지 만든 게 용한 일일 수도 있어요. 저도 어느새부턴가 영화를 찍는 게 재미가 없어지더라고요. 연극영화과를 다녔지만 감독은 그저 꿈이었고, 직업은 아니었어요. 막상 직업이 되다보니 너무 관습적으로 영화를 찍고 있더라고요.”
그런 그에게 ‘고령화 가족’은 초심으로 돌아가게 한 작품이기도 하다. 때문에 촬영 기법 역시 구(舊) 방식을 썼다고. “예전에 우리가 하나의 카메라로 한 편의 영화를 완성한 방식을 썼죠. 저도 좋았던 것 같고 배우들도 좋아했어요. 우리 서로 쓸데없는 것에 소비하지 말자고 했죠. 작품의 분위기가 여태껏 했던 것 중 가장 좋았던 것 같아요.”
# “박해일이라는 배우, 가장 고맙다”
‘고령화가족’은 한 마디로 담백한 영화다. 자극적이지 않고, 그렇다고 감동을 강요하지도 않는다. 초반부에는 보는 이들의 배꼽을 잡게 하다가, 후반부로 갈수록 ‘진짜 속살’이 드러난다.
“제가 코미디 감독도 아니고 끝까지 웃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어요. 예전에는 억지스러웠던, 또는 자극스러운 감동을 주려고 했던 강박관념이 있던 것 같아요. 형제 얘기에 포인트를 주려고 햇죠. 그동안 했던 영화들 중에서 가장 긍정적인 작품이에요.”
송해성 감독은 어려운 역할을 해내 준 박해일에게 가장 고맙다고 했다.
“윤제문 씨가 맡은 한모는 굉장히 몰입도가 센 캐릭터에요. 그에 반해 인모는 어려운 캐릭터죠. 형에 대한, 가족에 대한 책임감과 죄책감 같은 걸 드러내지 않고 쌓아가는 캐릭터기 때문이에요. 사실 박해일 본인도 굉장히 힘들어했어요. 정말 다른 사람이라면 무거운 느낌이 있을 캐릭터에요. 근데 박해일 씨가 해낸 거죠. 제가 오히려 박해일에게 부채의식을 갖게 됐어요.(웃음) 참 똑똑한 배우죠.”
박해일이 분한 인모 역에 자신의 모습이 반영되기도 했단다. 그는 연출자의 권한이 점점 사라지는 영화계의 현실에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감독 목숨이 파리 목숨이나 다름없죠. 요즘 정말 심한 것 같아요. 영화가 상업적으로 가야 하는 측면이 강조되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세태이기도 하죠. 전작도 성적이 좋지 않았으니 이번 영화를 하기까지 정말 힘들었죠. 그 힘든 시간 가장 도움이 됐던 게 바로 가족이었어요.”
# “한 밥상에서 오순도순...그게 가족이다”
‘고령화 가족’은 현실적인 영화로 평가받고 있다. 그렇지만 송 감독은 “영화는 영화대로 봐주셨으면 좋겠다”며 겸손한 모습을 드러냈다.
“사실적인 게 결코 나쁜 건 아니죠. 그래도 영화라는게 판타지를 바라보는 지점들이 있잖아요. 예를 들어서 우리 영화의 자극적인 대사들만 해도 그렇죠. 사실 그것보다 욕을 더 하면 했지 덜 하지는 않잖아요. 그걸 도덕적으로 판단해 주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송해성 감독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가족은 무엇일까.
“지금 이 영화에 표현된 가족이 제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가족이에요. 원초적이고 단순한 가족이라고 할지도 모르겠어요. 한 식탁에서, 한 밥상에서 밥을 먹는 것. 그게 바로 가족 아닐까요?”
양지원 이슈팀기자 /jwon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