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형적인 금괴 사기수법은…
“○○○정권 시절 비자금이 4000억원 있다. 금괴도 꽤 있는데 곧 처분한다더라.”
이른바 사기조직의 기망책인 A(47) 씨는 지난해 초부터 서울 일대에 전 정권의 비자금과 관련한 소문을 퍼뜨렸다. A 씨 일당이 타깃으로 삼은 이들은 사업과 부동산 투자로 자산을 모은 B 씨와 C 씨였다. A 씨는 사기조직의 일원인 D(53) 씨를 B 씨와 C 씨에게 소개했다.
D 씨의 진술은 더 그럴 듯했다. “내가 ○○○정권 시절 비자금을 만들었다. 대통령이 만든 비자금은 4000억원에 달한다. 영국 10만파운드권도 1000장, 12.5㎏짜리 금괴도 있다. 1억원만 내면 금괴 하나와 10억원을 줄 수 있다.”
이어 D 씨가 보여준 동영상엔 금괴와 5만원권 다발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또 담보로 건네준 강철박스엔 10억달러짜리 미국 채권이 들어 있었다. 이에 혹한 B 씨와 C 씨는 각각 1억원과 4500만원을 투자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이들의 사기 행각은 끝내 의심을 저버리지 않은 C 씨가 경찰에 신고를 하면서 덜미를 잡혔다.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D 씨 등 3명을 사기 등 혐의로 구속하고, 나머지 일당 8명을 입건했다.
경찰 수사 결과, D 씨가 건넨 미국 채권과 영국 파운드화는 위조된 것으로 밝혀졌다. 또 금괴와 5만원권 다발을 찍은 동영상 역시 인터넷에 떠도는 영상에 불과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 사건의 피의자 중 일부는 과거 동종 수법 범행으로 피해자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은 “이전 피해를 만회하고, 잘만 하면 한몫 챙길 수 있다는 생각으로 범행에 가담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이처럼 허무맹랑해 보여도 비자금을 빙자한 금괴 판매는 전형적인 사기 수법이 됐다.
지난해 3월에도 전직 대통령이 운영하는 비밀단체처럼 속여 수십억원을 가로챈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E(51) 씨 일당은 지난 2008년 8월부터 12월까지 강남에 ‘특정물건 처리단’이라는 유령 단체 사무실을 차리고 “전직 대통령의 금괴와 달러를 보관하고 있는데 처분이 어렵다. 이를 현금으로 사서 비자금 형성을 도와주면 사례하겠다”고 속여 6명에게 20억원을 받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서울 강북경찰서는 E씨 등 4명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등의 혐의로 구속했다.
2010년 대구에서도 구 정권 때 조성된 금괴 등을 현금화해주면 대가를 주겠다고 속여 수억원을 챙긴 2개 조직이 적발되기도 했다.
경찰 관계자는 “서울 명동 일대 사채시장을 중심으로 시중에 떠도는 전 정권 비자금이나 금괴 운운하는 소문은 전문적인 사기단의 사기수법”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금괴 등을 헐값에 구입할 수 있다는 이야기에 쉽게 속아 넘어가선 안 된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김기훈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