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양대근 기자] ‘버냉키 쇼크’로 한국 증시가 요동치고 있다. 대내외적으로 온갖 변수가 맞물리면서 여의도의 유명한 애널리스트들도 당장 내일 주식이 어떻게 움직일지 자신있게 말하는 사람이 드물어졌다. 이런 마당에 개인투자자들이야 오죽하랴.

하지만 ‘안개 속 증시’에서 주목받는 예측 방식이 있다. 바로 통계가 그 주인공이다. 주식통계는 과거 데이터와 패턴을 기반으로 미래 흐름을 관측하는 데 활용된다. 고전적인 방식이지만 ‘과거 속에 답이 있다’는 격언처럼 주식 추이를 가늠할 수 있는 방식으로 꼽힌다.

▶‘36개월 순환주기’…분석틀로 풀어본 한국 증시=유명한 주가 분석 방법 중 하나로 미국의 회계사 출신 주식 분석가인 랄프 엘리어트(Ralph N. Elliott)가 고안한 ‘엘리어트 파동이론’을 들 수 있다. 엘리어트는 당시 전 세계의 과거 75년간 주가흐름 차트를 분석한 결과, 주가 변동이 8개 파동 속에서 하나의 사이클을 형성해 반복적으로 움직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틀을 토대로 우리 식에 맞게 재구성된 것이 ‘36개월 순환주기론’이다. 국내외 주식자료를 수집해 오며 ‘주식박물관’으로 통하는 위문복 하나대투증권 e-비즈니스부 부부장은 “한국 증시 60년을 통계로 파동이론을 대입하면 36개월 순환주기가 성립된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국내 증시는 36개월 주기의 이동평균선(주가이동의 평균치를 차례로 연결해 만든 선)이 무너지고 있다”면서 “이는 1997년 외환위기나 2008년 리먼사태와 유사한데 단순히 흐름만 보면 1600선까지 밀리는 폭락장의 전조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기술적 주식 분석’의 선구자로 꼽히는 지기호 LIG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이동평균선 아래로 지수가 하락한 것을 ‘바닥’을 쳤다는 의미로 해석했다. 그는 “지금 지수대에서 더 떨어지더라도 1% 내외로 예측된다”며 “2분기 실적 발표가 시작되는 다음달 5일 전후로 안정화 국면에 진입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직 대통령은 알고 있다?’ 청와대 주기설=또 다른 분석틀로 ‘청와대 주기설’이 있다. 대통령 재임 기간 주가 추이가 일정한 패턴으로 반복된다는 내용이다. 박정희ㆍ전두환 전 대통령 시절에는 워낙 고도 성장기였기 때문에 주가가 우상향 곡선을 그렸지만 이후 정부에서는 일정한 특징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노태우정부에서 김대중정부 시절까지는 ‘3년차 레임덕 현상’이 증시에서 공통적으로 발생했다. 초반 3년까지 리더십을 바탕으로 주가가 우상향 곡선을 그리다가 4~5년차에 리더십이 흔들리면서 주식에도 위기가 찾아왔다.

반면 노무현정부와 이명박정부 때는 주가가 초반에 떨어지다 다시 급등하는 패턴을 보였다. 두 대통령 모두 집권 초기에 리더십과 경제 위기로 주가가 흔들렸지만 집권 후반으로 갈수록 주가가 꾸준히 올라갔다. 2008년 1000선이 무너졌던 증시는 2011년 2100선에 육박하기도 했다.

박근혜정부는 후자와 비슷하게 움직일 가능성이 높다. 인사 난항과 북한 리스크, 미국의 출구전략 완화가 집권 초반의 악재로 꼽힌다. 위문복 부부장은 “5년 임기를 놓고 보면 새 정부는 이제 겨우 4개월이 지났을 뿐”이라며 “남북관계가 회복되고 세계 경제가 안정을 찾으면 주가가 올라갈 모멘텀이 충분하다”고 예측했다.

▶“한국 증시, 저점은 꾸준히 우상향하고 있다”=물론 주가통계가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기준이 되는 관점과 시기에 따라 얼마든지 통계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한국 증시의 ‘저점’이 꾸준히 상승해 온 점을 주목하라고 조언한다. 지난 60년 국내 주가 추이를 그래프로 살펴보면 중간에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계속 우상향을 그려 왔음을 알 수 있다. 단기적으로는 불안요소가 많았지만 그것을 극복하면서 한국 경제가 탄탄해지고 주식의 저점이 계속 높아져 온 것이다.

‘증권계 재야고수’ 김동희 증권대학 대표는 “증시에 참여하고 있는 투자자들은 늘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공포와 두려움을 갖게 마련”이라며 “하지만 확실한 것은 시장이 현재 보여주는 추세 그 자체이며 추세 순응 투자자들은 자신의 능력을 벗어나는 무리한 매매를 하지 않게 된다”고 강조했다.

위문복 부부장은 “글로벌 경제가 불안한 지금이 오히려 투자자에게 기회가 될 수 있다”면서 “성공적인 투자를 위해서는 세계 경기 흐름을 알고 투자한 회사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파악하는 등 스스로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bigroot@heraldcorp.com

<1962년 증권파동에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까지…한국 증시 위기와 극복의 순간들> 1956년 출범한 한국 증시는 60년 역사 동안 영광과 위기의 순간을 함께 겪어왔다. 그중에는 시장 자체가 뿌리째 흔들릴 정도의 위기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 증시는 곧바로 이전 수준을 회복하고 그 이상까지 오르는 저력을 보여왔다.

국내 증시의 첫 위기는 1962년 5월 일어난 증권파동이었다. 증권파동이란 정치자금을 필요로 했던 공화당 세력과 증권업계 종사자 일부가 공모해 투기를 벌이면서 거래소 기능을 한순간에 마비시킨 사건이다. 5월 11일 기준 당시 합산 방식으로 하루 만에 주가가 41.17% 폭락했다.

주식회사였던 거래소가 부도나면서 파산한 투자자들의 자살이 속출했고 시장도 장기간 휴장에 들어가는 등 후유증이 컸다. 사건 이후 거래소는 주식매매가 불가능한 공영조직으로 개편됐고 1979년에는 명동에서 여의도로 이전하게 됐다. 그 전후로 1978년 ‘건설주 파동’과 1990년 ‘깡통정리’로 증시가 한때 흔들리기도 했지만 곧바로 본궤도를 회복했다.

1997년 찾아온 IMF 외환위기는 우리 경제뿐 아니라 증시에서도 가장 큰 시련의 시기였다. 그해 653포인트로 시작한 종합주가지수는 1997년 말 376포인트라는 참담한 성적을 기록했다. 주요 기업들의 상장폐지가 이어졌고, 증권가에서는 동서증권과 고려증권 등이 문을 닫았다.

하지만 위기는 곧 기회였다. 정부에 대한 회의론 속에서도 국민들은 금 모으기 운동을 통해 버팀목 역할을 했고 증권가에서는 ‘바이 코리아’ 열풍이 불었다. 부동산 시장이 위축된 상태에서 펀드 붐이 일어나면서 코스피가 크게 상승했다. 당시 박현주 현 미래에셋 회장은 국내 최초로 뮤추얼펀드를 출시하는 등 성공 신화를 쓰기도 했다.

2000년대 들어 9ㆍ11 테러 직후였던 9월 12일에 12.02% 폭락한 경우도 있었지만 우리 증시는 2007년 2085.45포인트를 넘어서며 사상 첫 2000고지에 진입하기도 했다.

그러나 기쁨은 잠시뿐이었다. 2007년 12월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사태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로 이듬해 다시 경제 한파가 찾아왔다. 2008년에는 코스피지수가 892.16포인트까지 곤두박질쳤고 한 해 동안 무려 40.7%의 주가가 날아갔다. 이후 점진적으로 회복, 2010년 12월 14일 코스피 2000선을 다시 회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