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건 만남과 헤어짐의 끝없는 연속 아픔·고통 가져오지만 보낸자·떠난자 성숙시켜

존엄사 정면으로 다룬 영화 ‘카르페 디엠’ ‘죽음은 삶, 이별은 만남’ 역설적으로 표현

‘회자정리(會者定離).’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다. 산다는 것이 만남과 이별의 연속적인 과정이다. 아니, 삶과 죽음, 태어나고 세상을 떠나는 것이야말로 만남과 이별의 가장 극적인 형식이라고 할 것이다.

이별은 보내는 자와 떠나는 자를 만들어내고, 함께했던 시간을 영원 속에 봉인시키는 마술 같은 힘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이별은 아픔과 고통을 가져오고, 끝내는 보내는 자와 떠나는 자 모두를 성숙시킨다. 네덜란드 영화 ‘카르페 디엠’은 첫 만남에서 일었던 불꽃 같은 사랑이 끝난 후 정해진 이별을 감당해야 하는 두 남녀의 이야기를 그렸다. 두 남녀가 함께했던 시간 대부분 남자는 끊임없이 떠나고, 여자는 남겨져야 했으나 최후엔 남자가 보내고, 여자가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간다. 네덜란드의 논픽션 베스트셀러인 레이 클룬의 ‘사랑이 떠나가면’을 스크린에 옮긴 작품으로, 가슴 아픈 멜로드라마이자 적극적인 ‘존엄사’를 정면으로 다룬 논쟁적인 작품이다. 광고전문가인 ‘스테인’(바리 아츠마 분)은 인생을 즐기는 자유분방한 남자다. 밤마다 클럽에서 쾌락의 밤을 만끽하는 쾌락주의자이기도 하다. 그는 어느 날 자신만큼이나 불꽃 같은 여자 ‘카르멘’(캐리스 밴 어슨 분)을 만나 강렬한 사랑에 빠진다. 광고회사를 차려 승승장구하며 사업에서도 성공 가도를 달리던 스테인은 카르멘과 숙명 같은 결혼을 한다. 습관 같은 ‘외도’에도, 둘의 결혼생활은 남부러울 것이 없다. 귀여운 딸까지 낳아 최고의 인생을 살던 중 부부에게 갑작스러운 불행이 닥친다. 아내 카르멘이 유방암에 걸린 것. 이때부터 남편의 ‘나쁜 버릇’에 불과했던 외도는 또 다른 사랑이 되고, 또 하나의 삶이 된다. 아내의 병으로 삶이 힘들어진 스테인은 화가인 로즈를 만나 꺼져가던 정열과 쾌락 속으로 다시 빠져든다. 그에게 아내 카르멘은 언제나 되돌아갈 수 있는 둥지이고, 로즈는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행복이었다. 카르멘은 스테인의 둥지이되, 번번이 주인을 떠나보내야 하는 온기 잃은 둥지가 돼 갔다. 수술로 가슴을 잃어버린 아내는 바깥으로 도는 남편을 보며 날마다 이별을 가슴에 새긴다. 수술 후 완치됐다고 믿은 암이 재발하고 결국은 시한부 통고를 받자 일상처럼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던 스테인과 카르멘의 관계는 커다란 변화를 맞는다. 지쳐가는 육신과 피로해진 영혼을 견디다 못해 존엄사로 최후의 이별을 택하는 카르멘과 운명의 사랑을 마지막까지 지키는 스테인의 이야기를 그린 이 영화의 한국 개봉 제목은 아이러니하게도 ‘카르페 디엠’이다. ‘현재를 잡아라’ ‘지금을 즐겨라’는 뜻의 라틴어다. ‘고통에 시달리는’쯤으로 해석되는 원제인 ‘스트리큰(Stricken)’보다 주인공들의 삶과 죽음을 훨씬 의미심장하게 표현했다. 현재의 삶에, 지금의 만남(관계)에 충실한 것이야말로 이별과 죽음을 아름답게 완성하는 가장 훌륭한 방법이라는 뜻이 아닐까. 아니면 죽음과 이별이야말로 삶과 만남을 완성하는 형식이라는 역설이든지.

또 다른 이별도 있다. 한ㆍ중 합작 영화 ‘이별계약’은 훗날의 만남을 기약해두고 ‘자발적’으로 이별을 선택한 남녀의 이야기다. 무슨 유행가 가사처럼 만남은 이별의 시작이 되고, 이별은 만남을 위한 또 다른 약속이었던 셈이다. 고교 시절 운동장 벤치에서 혼자 밥 먹는 여학생 차오차오(바이바이허 분)와 그의 곁에 슬며시 다가와 앉은 남학생 리싱(펑위옌 분). 그렇게 첫사랑의 시간은 풋풋하고 찬란했다. 그리고 대학졸업. 차오차오는 불현듯 리싱에게 이별을 통고한다. 또 다른 행복한 만남을 위해서라는 이유와 함께. 여자는 식기디자이너로, 남자는 요리사로 성공해서 다시 만나기로 하고, “5년 후에도 서로 독신이면 결혼한다”는 계약서를 장난 반, 진심 반으로 만든다. 그런데 5년 후 차오차오가 리싱으로부터 받은 전화는 ‘결혼 초대’였다. 과연 그 둘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왜 차오차오는 어려운 시절을 함께할 생각을 하지 않고, 갑작스레 이별을 통고했던 것일까. 사랑하지만 같이할 수 없었던 두 남녀 사이엔 멜로드라마의 필수 코스인 ‘시한부’가 등장하지만, ‘이별계약’이라는 설정과 유머를 섞은 아기자기한 에피소드가 뻔할 수 있는 드라마에 윤기와 숨결을 불어넣는다. 손을 잡은 첫사랑 연인의 어깨 위로 살포시 내려앉는 눈처럼, 이별은 사랑의 풍경을 완성하는 형식이다.

그렇다면 첫사랑은 이별로 하여 영원한 시간 속에 봉인된 신화일 것이다. 영화 ‘어느 예술가의 마지막 일주일’(감독 마르잔 사트라피, 빈센트 파로노드)은 돈 없는 예술가이기 때문에 여인의 아버지 반대로 첫사랑에 실패한 한 예술가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실연 후 천재 바이올리니스트가 연주하는 모든 음엔 이룰 수 없었던 첫사랑과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던 연인이 깃들였다. 첫사랑으로 그는 예술을 완성했지만, 죽음을 선택해야 했다.

최근 출판가에선 ‘잘 죽는 방법’ ‘행복한 죽음’ ‘존엄한 최후’를 다룬 책이 인기다. 연애에선 잘 헤어지는 것이, 인생에선 잘 죽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일 것이다. 김광석이 부른 노래 한 소절을 보태도 좋을 것이다. 누구나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