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원안내영어 책 출간…박선우 법원 실무관
10곳넘는 출판사 거절로 자비 출간 ‘아이러브 공·필·민’ 뜨거운 반응
2006년 어느 주말 서울서부지법의 영장실질심사장. 범죄를 지은 외국인 피의자가 심사를 받기 위해 출석했는데 영어통역인이 오지 않았다. 갑자기 다른 통역인을 구할 수도 없는 사정이어서 법원 관계자는 발만 동동 굴렀다. 피의자와 말이 통하지 않아 자칫 심사 자체를 못하게 될 뻔한 상황에서 박선우(40) 실무관이 대타로 통역에 나섰다. 전문통역인은 아니었지만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외국계 회사에서 근무한 경력도 있었던 덕에 박 실무관은 무사히 심사를 마칠 수 있었다.
이 우연한 법정 통역 사건을 계기로 박 실무관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우리도 읽기 싫은 보험약관 같은 외국어 안내문을 공공기관에 비치해 놓았다고 외국인 민원 소통을 위해 할 일을 다했다고 스스로 만족하고 있으면 될까.’
그렇게 그는 공무원과 외국 민원인을 위한 민원안내 영어책을 쓰게 됐다.
한국사회는 이미 다문화사회로 진입했다. 그만큼 한국말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의 민원 수요도 늘어나고 있다. 지하철에서 치한으로 오해받아 긴급체포될 경우의 안내, 누군가를 고소하는 절차, 집주인에게 보증금 달라고 내용증명 보내는 것, 임차권등기 신청, 전세 확정일자 받는 일 등 사람 사는 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외국인도 똑같이 겪고 있다. 한국인에게도 쉽지만은 않은 그런 일이 낯선 한국 땅에서 살아가는 외국인에게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테지만 공공기관의 배려는 아직 미흡하다.
박 실무관은 “외국인은 익숙하지 않은 한국 인프라에 맞춰 살아야 하는 사회적 약자임에도 공공기관은 한국의 제도 전반에 걸친 전문적인 안내 도입에 소극적”이라고 지적했다.
박 실무관은 “긴박하고 억울한 상황에서 ‘패닉’ 상태가 된 외국인과, 그 외국인에게 상황과 절차를 안내해야 하지만 언어의 장벽 앞에 ‘얼음’이 돼버린 공무원을 목격하면서 양쪽 모두를 위한 친절한 민원영어책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바로 집필에 들어갔다.
시작은 했지만 막상 책을 내는 일은 쉽지 않았다. 법원은 물론 검찰ㆍ경찰 관계자까지 두루 만나며 꼼꼼히 자료조사를 해야 했고, 업무시간을 피하느라 초등학생인 아이도 친정에 맡겨두고 주말과 밤을 쪼개 틈틈이 책을 썼다. 막상 원고가 완성된 뒤에는 10곳이 넘는 출판사가 출간을 거절해 결국 본인의 자비로 책을 내야 했다. 그렇게 탄생한 책이 ‘아이러브 공ㆍ필ㆍ민(공무원 필수 민원영어가이드)’이다.
책에 대한 공직사회의 반응은 상당하다. 선정이 까다로운 법원 도서관의 최고 분류 등급을 받아 전국 62개 지방법원과 지원의 도서관에 그가 쓴 책이 당당하게 꽂혀 있다. 서울지방경찰청 교통지도과에서도 대량 주문했다.
자랑스러운 법원공무원이 돼 한국의 사법부를 세계에 알리고 싶다는 그는 “더 다양하고 전문적인 민원상황과 그에 맞는 영어교과서도 만들어 민원 소통에 일조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김성훈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