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동대문·청량리 새벽시장
자정 출근 정오 퇴근 올빼미생활 새벽4시에 먹는 밥 사실상 점심 한식·양식 등 배달 메뉴도 다양
거침없이 달려가는 청춘들의 삶 눈에는 졸음대신 뿌듯함이 가득
“지금도 제 꿈을 이뤄가고 있는 중입니다.”
6년째 동대문 패션타운에서 점포를 운영하고 있는 이슬연(30ㆍ여) 씨. 꿈을 위해 달리고 있지만, 밤 12시에 출근해 낮 12시에 퇴근하는 밤낮이 바뀐 일상은 여전히 만만치 않다. 6월 초, 새벽 4시가 가까워지는 시간에 선택한 그녀의 ‘점심 메뉴’는 매운 떡볶이. 이 씨는 “고된 일로부터 받는 스트레스를 매운 음식을 먹으면서 날려버린다”고 말했다. 새벽에 먹는 음식이지만, 한 밤중에 일을 시작하는 그녀에게는 점심밥인 셈이다.
동대문 패션타운 일대에는 점포만 3만5000여개가 있다. 매일 백만명이 오가는 이곳의 단골손님은 2030세대들. 소매업자들과 인터넷 쇼핑몰 운영자들, 중국 바이어들이 새벽에 찾아오기 때문에 동대문 패션타운은 밤이 깊을수록 활기가 넘친다.
점포를 비울 수 없는 도매업자들을 위해 모든 음식은 배달된다. 한식부터 시작해 양식, 중식, 일식 그리고 이탈리안 음식까지 없는 메뉴가 없다. 가격대는 5000~8000원대.
동대문 패션타운 인근 식당에서 12년째 배달을 한 김순복(56ㆍ여) 씨는 새벽 4시20분에 쟁반 5개를 머리에 이고 좁은 골목길을 요리조리 다니고 있었다. 그는 “새벽 3시30분께부터 6시까지가 가장 바쁘다”며 “젊은 매장 주인들과 인사를 나누며 일하다 보면 10년은 젊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소매상을 대신해 장을 봐주는 구매 대행업자인 박성훈(21) 씨는 새벽 5시께 야외 간이 테이블에 서서 컵에 담긴 김치찌개를 먹고 있었다. 물건을 제때 보내기 위해 밥 먹는 시간도 아끼는 것이다. 그는 “열심히만 하면 인정받는 게 동대문”이라며 “밤을 움직이는 또 다른 청춘들과 함께 거침없이 달려가고 있다”고 전했다.
새벽 시장을 여는 또 다른 곳, 청량리 청과물 도매시장에는 경매가 마무리되는 새벽 3시께 찰밥과 된장국을 실은 카트를 끄는 할머니들이 등장한다. 이들을 통해 청과물시장 50~60대 도매업자들은 단돈 2500원으로 배를 채운다.
22년간 청과물 도매장사를 했다는 홍명자 (65ㆍ여) 씨는 “바쁜 경매 시간대에 짬을 내서 배고픔을 달랠 수 있는 음식”이라며 “이걸로 새벽을 버텨서 우리 아들을 대학까지 보낼 수 있었다”고 웃으며 말했다.
홍 씨의 남편 박길태(68) 씨는 ‘이제는 일을 그만둬야지’라는 말을 3년째 입에 달고 살았지만 실제로 일을 그만둘 마음은 없다. 그는 “손주들 용돈도 주고 자식들에게는 손 안 벌리고 아내와 함께 열심히 일해서 사는 보람 때문에 계속 일을 하고 있다”면서 “이 나이에 일이 있고 또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고 말했다.
새벽 5시20분께 시장 한쪽에 삼삼오오 모여 구수한 차를 즐기시는 도매상 할머니들 무리가 눈에 띄었다. 세월의 흔적과 함께 녹아든 삶의 방식을 변함없이 이어가고 있었다. 27세에 경남 밀양에서 서울로 상경해 청량리역에서 장사를 시작한 지 32년의 세월이 흘렀다는 이명자(59ㆍ여) 씨는 “내게 남은 꿈이 있다면 아무 탈 없이 우리 아들, 딸, 손주까지 잘살아주는 것”이라며 “지금까지 우리 자식들을 가르치고 대학까지 보냈다는 뿌듯함에 일할 맛난다”고 말했다.
남들이 자고 있는 이른 시간 가장 먼저 새벽을 깨우는 이들의 눈빛은 졸음 대신 꿈으로 빛나고 있었다. 이제 막 일을 시작한 청년부터 수십 년간 한자리를 지켜온 노년까지 새벽 시장에서 만난 다양한 사연을 가진 이들의 꿈을 향한 열정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김현경ㆍ이정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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