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브루스 윌리스, 존 말코비치와 어깨를 나란히 해도 어색하지 않다. ‘월드스타’라는 수식어가 식상할 만큼 활발한 행보를 걷고 있는 배우 이병헌이 그 주인공. 이병헌은 영화 ‘레드: 더 레전드’를 통해 또 한 번 할리우드에서 입지를 넓혔다.

이번 영화에서 이병헌은 특수요원 출신 한조베로 등장한다. 브루스 윌리스에게 배신을 당하고, 칼을 겨누지만 결국 다시 손을 잡는 캐릭터다. 카리스마와 허당 기질을 동시에 갖춘 매력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이병헌은 단순한 출연을 넘어 극의 애드리브를 직접 짜는 등 적극적으로 촬영에 임했다. 특히 극 중 한국말로 ‘이런 x'라며 깜짝 욕설로 큰 웃음을 안기기도 했다.

영화 홍보 활동과 연인 이민정과의 결혼 준비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이병헌을 최근 서울 중구 한 호텔에서 만났다. 빠듯한 일정에도 불구하고 프로다운 면모로 인터뷰를 이끌었다.

“미국을 총 네 번 왔다갔다 했어요. 그러니 너무 멍하고 정신이 없네요.(웃음) 물론 ‘광해’ 워싱턴 시사도 있었지만요. ‘레드’를 처음에 홍보하다가 프리미어 홍보도 하고 또 온 거예요.하하. 정신이 없을 수 밖에 없죠.”

‘레드: 더 레전드’의 아시아권 홍보는 이병헌에게 맡긴 모양새다.

“그런 느낌도 없지 않아요. 일본은 10월 쯤 개봉하는 걸로 알고 있거든요. 그 때 다른 배우들이 올지 안 올지는 아직 모르지만요. 아마 저는 적극적으로 홍보를 해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할리우드에서도 입지를 쌓은 만큼 팬들의 반응 역시 뜨거워졌다. 그는 “날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아서, 전과 달랐다”고 말했다.

“극장 앞에 모이는 팬들의 호응이 조금은 달랐죠. 서양인들이 훨신 더 많았어요. 물론 이 영화에 대한 정보가 있는 사람들도 많았겠죠. 워낙 이국적인 코미디인데도 많이 웃으면서 보더라고요. 특히 제가 냉장고 문을 뜯어 버리는 장면에서는 굉장히 큰 박수를 받았어요. 영화를 보다가 박수를 받는 건 의외의 반응인데, 기분이 좋고 신나더라고요.”

‘레드: 더 레전드’는 액션과 웃음을 동시에 갖춘 오락물이다. 특히 이병헌의 욕 장면은 보는 이들을 파안대소하게 한다. 이에 대한 미국의 반응은 어땠을까.

“사실 현지인들은 잘 못 알아 듣는 것 같더라고요. 왜, 우리가 외국 영화를 볼 때도 중동 사람이 갑자기 그 나라 말을 쓰면 모르잖아요. 그냥 분위기로 알아 듣는거죠.(웃음) 처음에 이 욕을 한국어로 하니까 감독과 프로듀서가 무슨 뜻이냐고 묻더라고요. 15세 등급을 넘어가면 안된다고요. 하하. 수위조절을 한 거죠.”

브루스 윌리스, 존 말코비치, 캐서린 제타존스 등 할리우드의 기라성 같은 배우들과 호흡을 맞춘 소감을 어떨까. 특히 그는 존 말코비치에 대한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정말 재능이 많은 분이에요. 매일 색칠을 하고 계시길래 뭘 하냐고 여쭤 보니 디자인을 하낟고 하더라고요. ‘나 디자이너인데 몰랐어?’라고 하셨죠. 자신의 이름으로 패션 브랜드가 있다더군요. 그 뿐 아니라 오페라, 연극도 한다며 영화는 그 일부분이라고 하시더라고요. 애드리브도 디테일하시고, 굉장히 많은 내증을 갖고 계신 듯 해요.”

이번 영화에서도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바로 이병헌의 노출신이다. ‘지.아이.조’에 이어 또 등장하는 탄탄한 근육질 몸매. 할리우드 영화에서 그의 노출은 필수불가견한 것일까.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거지 그들이 제 몸을 노렸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관객들에게 제가 맡은 캐릭터가 굉장히 세다는 것을 빨리 각인시키기 위해 넣어놓은 장치인 것 같아요. 덕분에 저는 3개월 동안 몸매 관리를 하면서 고생해야했지만요.(웃음) 캐릭터를 전달하는 데 있어서는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극 중 한조베는 배신의 쓰라린 아픔이 있는 캐릭터다.

“그런 게 없는 삶이 있을까요. 제 인생의 반은 배우였지만, 나머지 반은 평범한 남자였죠. 그렇기 때문에 일반 사람들이 겪는 경험도 했고, 배우로 사는 사람들의 경험도 했죠. 당연히 가장 믿는 사람에게 배신을 당한 것 만큼 충격적인 일도 없죠. 그런 것에 대한 상실감은 많이 느꼈어요.”

이병헌은 나이가 들어도, 잃고 싶지 않은 것으로 소년성을 꼽았다. 순수한 소년의 감정을 끝까지 지켜보겠다는 각오다.

“나이 들으면서 잃을 수 있는 소년성은 절대 잃고 싶지 않아요. 나이 든 여배우에게도 소녀가 안에 살아 있는 법이고, 나이 든 노인에게도 소년성은 있을 거란 말이죠. 특히 뭔가를 창조해내야 하는 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그런 동심이 없으면 안 되거든요. 아직 제 안에는 소년성이 많다고 생각해요. 물론 주관적인 판단일 수 있지만요.”

인터뷰 내내 이병헌은 영화의 에피소드와 자신의 연기에 대해서는 소탈하게 털어놨다. 그러나 연인 이민정에 대해서는 여전히 말을 아꼈다. “아직 프러포즈를 못 했다”며 “공공연하게 알리고 싶지 않다”고 강조했다.

한편 18일 개봉한 ‘레드: 더 레전드’는 25년 만에 재가동된 최강 살상 무기 ‘밤 그림자’를 가장 먼저 제거하기 위해 은퇴 후 10년 만에 다시 뭉친 CIA 요원 ‘R.E.D’의 활약을 담았다. 브루스 윌리스, 존 말코비치, 메리 루이스 파커, 이병헌, 캐서린 제타존스 등이 출연한다. 양지원 이슈팀기자 /jwon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