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박세환 기자] # 전업주부 정모(37ㆍ서울 대치동) 씨는 최근 세무서로부터 보유하고 있는 주식에 대한 자금 출처를 소명해 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세무조사 대상이 되는 주식은 정 씨가 보유하고 있는 10억원 상당의 주식. 이는 남편이 4년 전 정 씨의 명의로 8억원가량 투자한 돈이다.
#중소기업인 박모(48ㆍ서울 대방동) 씨는 자녀 결혼비용 마련 명목으로 매달 50만원씩 6년째 고등학생인 딸(18) 명의로 적립식 펀드를 붓고 있다. 그런데 최근 지인이 자녀 명의로 적금과 주식거래를 했다가 증여세를 두들겨 맞은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혹시 자신도 세금 폭탄을 맞는 건 아닌지 고민이다.
지난해 정부가 마련한 상속ㆍ증여세법 개정안 시행으로 자신 명의가 아닌 차명계좌로 금융자산을 운용해오던 투자자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올해부터는 소득이 없는 부인이나 자녀 이름으로 된 차명계좌를 갖고 있어도 증여세 대상에 포함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칫 투자를 목적으로 직접 주식투자는 물론 펀드, 예ㆍ적금을 부인이나 자녀 명의로 여러개 개설하면 ‘증여세 폭탄’을 맞을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자녀이름 차명계좌 개설 즉시 증여 간주=왕현정 현대증권 세무전문위원은 “차명계좌는 불법적 요소에 의해 만들어진 것은 아니지만 관련 세법이 개정된 만큼 차명계좌 관리에 특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부는 상속ㆍ증여세법 45조 개정을 통해 올해부터 ‘차명계좌 증여 추정’ 시기를 대폭 손질했다. 지금까지는 금융소득 종합과세를 피하려는 사람들이 자녀 명의로 차명계좌를 만들어 금융자산을 분산하는 편법이 많았다. 하지만 앞으로는 부모가 자녀 명의인 차명계좌에 금융자산을 입금한 시점부터 자녀가 이를 증여받은 것으로 추정한다.
특히 소득 출처가 없는 사람이 차명으로 예금을 갖고 있는 것을 세무공무원이 확인하면 이를 증여로 간주한다.
김정은 KDB대우증권 차장(세무사)은 “증여세를 피하기 위해서는 증여 의도가 없는 본인의 차명계좌임을 증명해야 하는데, 소득의 출처를 밝히거나 해당 계좌를 개설한 은행ㆍ증권사에 제출한 자료를 증빙자료로 첨부해야 한다”고 말했다.
입증하지 못할 경우 증여세뿐만 아니라 벌금까지 물 수 있고, 차명계좌 블랙리스트에 오르면 평생 국세청의 ‘차명재산 관리 시스템’에 등록돼 추적을 받을 수 있다.
예를 들어 1억원의 재산을 자녀에게 증여할 경우 성인 기준 3000만원(미성년은 1500만원)이 공제돼 700만원(1억원 이하 세율 10%)을 세금으로 내게 된다. 그러나 예금으로 뒀다가 10년 뒤 적발돼 차명임을 입증하지 못하면 무신고 가산세 20%(최고 40%)에, 납부 불성실 10.95%를 계산하면 700만원의 배가 되는 1400만원가량의 세금을 물어야 한다.
▶차명 주식거래 시 미리 신고해야=차명 주식은 ‘명의개서한 날’에 증여한 것으로 판단, 증여세를 부과하도록 돼 있다. ‘명의개서한 날’은 취득자의 주소와 성명이 주주명부에 기재된 때를 말한다.
판례에 따르면 단순히 다른 사람 명의로 증권사의 고객계좌부나 예탁계좌부에 기재된 것만으로는 법률상 명의개서로 볼 수 없기 때문에 증여세를 과세할 수 없다. 매년 주주명부 폐쇄 기준일에 한국예탁결제원으로부터 실질 주주의 성명ㆍ주소ㆍ주식 수 등을 통지받은 발행 회사가 실질 주주명부에 그 사항을 기재한 시점에 명의개서한 날로 봐 증여세를 과세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결국 타인 명의로 상장 주식을 거래할 때 연중에 거래되는 주식은 증여세 과세가 쉽지 않지만 타인 명의로 보유하다가 연말을 넘기게 되면 명의개서가 된 것으로 봐 증여세가 부과될 수 있다는 것이다.
왕 위원은 “일반인 가운데 관련 법 개정을 모르고 아직까지 다른 사람 이름을 빌려 주식거래를 하는 경우가 많다”며 “현실적으로 국세청이 소액주주들의 거래에 대해 일일이 조사나 증여세 추징이 쉽지 않겠지만 금융 계좌에 대한 세무조사의 강도가 높아지고 있는 만큼 해당되는 사항이 없는지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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