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론 레인저’ 열연 조니 뎁 실제 인디언의 피 섞여있지만 美대륙 원주민 파괴 상징 ‘백인’

때론 야만성, 때론 평화 상징 그들 정체성엔 더 큰 혼란만…

‘캐리비안의 해적’으로 유명한 할리우드 스타 조니 뎁이 미국 인디언 역할을 맡아 영화에 출연했다. 디즈니의 신작 ‘론 레인저’(감독 고어 버번스키, 4일 개봉)에서다. 조니 뎁은 이 영화의 개봉을 앞두고 한 인터뷰에서 “증조부모로부터 우리 가문엔 인디언 체로키족의 피가 섞여 있다는 말을 들었다”며 “항상 그 사실이 자랑스러웠다”고 말했다. 조니 뎁은 영화 출연 계약 후 또 다른 인디언 종족인 코만치의 후손으로 ‘명예 입양’됐으며 나바조족의 전통적인 세례를 받기도 했다. 이와 함께 그는 자신이 맡은 극중 인물인 ‘톤토’ 역할을 연기하기 위해 시나리오와 캐릭터에 대한 인디언 지도자들의 자문을 구했다. 영화사 디즈니도 인디언 지도자들을 초청해 시사회를 가졌으며, 미국 인디언 대학 기금에 후원금을 기부했다. 이 같은 시도의 취지는 조니 뎁이 미국 연예지 엔터테인먼트 위클리와 가진 인터뷰로 요약된다.

“톤토에 대해 숙고하기 시작하면서 내가 과연 (인물을 연기하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인물 관계를 완전히 뒤엎어서 (원작의) ‘론 레인저’에서뿐 아니라 이제까지의 미국영화사를 관통해 미국 원주민(인디언)에게 씌워졌던 부정적인 묘사(ugliness)를 바꾸려고 했습니다.”

노력의 결과는 어땠을까? 조니 뎁이 연기한 ‘톤토’에 대해 평가가 미묘하게 엇갈리고 있다. 미국영화사 속 왜곡된 인디언의 전형에서 탈피해 진일보한 캐릭터라는 반응이 한편이다. 즉 미개하거나 야만적인 악당 아니면 백인의 조역에 그쳤던 데서 한걸음 나아갔다는 의견이다. ‘론 레인저’는 1930년대 라디오 드라마 시리즈를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당시에는 백인 배우가 ‘톤토’의 목소리 연기를 했으며, 1950년대 TV 드라마 버전에서는 실제 미국 원주민 출신 배우가 역할을 맡았다. 어드벤처 액션 블록버스터로 제작된 이번 영화에 대해서 박수를 보내는 쪽은 원작에선 수동적이고 백인을 보좌하는 단순한 조수에 그쳤던 인물이 적극적이고 영웅적인 액션의 주인공이 됐다는 사실을 반기고 있다. 반면 눈살을 찌푸리는 편에선 조니 뎁이 아무리 자신에게 인디언의 피가 섞였다고 강조한다 해도 ‘백인 스타’라는 사실은 변함없으며, 극중에서 얼굴에 흰 분칠을 하고 죽은 까마귀를 머리에 매달고 다니는 ‘기괴한 모습’은 인디언에 대한 편견을 부채질할 뿐이라고 주장한다.

‘론 레인저’는 전국에 철도 건설이 한창인 1800년대 후반 미국 개척시대를 배경으로 백인과 인디언의 활약을 그린 영화로, 일종의 변형된 서부극이자 어드벤처 액션 영화의 외양을 띠고 있다. 정의감이 투철한 젊은 검사 ‘조지’(아미 해머 분)에겐 범죄 소탕의 영웅으로 활약하는 형 ‘대니’가 있다. 그러나 상대의 심장을 도려내 씹는다는 잔인무도한 총잡이 ‘부치’에게 형을 잃고, 동행했던 조지 역시 총을 맞고 사막에 버려진다. 이때 괴짜에 엉뚱한 수수께끼의 인디언 ‘톤토’(조니 뎁 분)가 나타나 조지를 구하고, 둘은 합세해 부치를 쫓는다. ‘톤토’는 어린 시절 자신의 실수로 백인에게 종족을 모두 잃고, 복수의 대상을 ‘악령’이라 칭하며 떠돌아다니던 신세였다. 철도 개발을 둘러싼 백인들의 음모로 인디언과의 전쟁 기운이 치솟아 오르는 가운데, 인디언과 백인 콤비의 활약이 펼쳐진다.

고어 버번스키를 비롯한 ‘캐리비안의 해적’ 제작진이 다시 뭉쳤고 조니 뎁은 ‘잭 스패로우’처럼 괴짜에 유머러스한 캐릭터를 보여주지만, 영화는 오히려 흑인이 인디언으로 대체된 ‘장고: 분노의 추적자’(감독 쿠엔틴 타란티노)의 가족영화 버전 같다. 2시간20분이 넘는 러닝타임은 부담스럽지만, 두 선로를 나란히 가는 두 열차에서 벌어지는 후반부의 액션은 압권이다.

인디언. 1492년 콜럼버스가 미국 대륙을 발견했지만 인도로 착각하고 원주민에게 붙여준 이름. 미국 원주민(American Native)의 또 다른 이름. 미국 대륙의 원래 주인. 정작 인디언 자신은 부족 각각의 고유한 명칭으로 바꾸길 원하는 이름. 미국사에 내재한 근원적 폭력과 미국 백인들의 뿌리 깊은 죄책감을 상징하는 이름. 서부극에선 몰아내고 개화시켜야 할 야만족이자 미개인, 잔혹한 악당이었고, ‘늑대와의 춤을’에선 백인 영웅에 의해 구원을 받는 평화로운 존재. ‘도어스’에서 짐 모리슨이 영혼의 문을 열고, 초월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 샤먼(영매). SF우주시대엔 지구인이 침략한 행성의 외계인 ‘아바타’로 비유된 타자. 조니 뎁은 과연 인디언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