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딸을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 산과 산을 넘으며 도망치기에 여념이 없었고, 부상을 입거나 아픈 사람을 위해서도 애썼다. 이 모든 것은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봄부터 무더웠던 여름까지 배우 이동욱의 여정이다.

이동욱은 최근 필모그래피에 KBS2 수목드라마 '천명: 조선판 도망자 이야기'(이하 천명)를 추가했다. 데뷔 후 처음으로 도전하는 사극이었고, 게다가 딸까지 둔 아버지 역할로 그에게는 변신이자, 모험이었다.

7월의 첫 날, 아직 '천명'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이동욱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만족보다는 아쉬움, 후련함 보다는 앞으로의 행보에 대한 고민에 빠진 그는 배우로서 한층 성장한 모습이었다.

◆ "진짜 속내, 이제야 드러냅니다."

이동욱은 '천명' 속 내의원 의관 최원 역을 맡았다. 극 초반부터 살인누명을 쓰고 도망자 신세로 전락한 인물. 여기에 아픈 딸 랑(김유빈 분)도 있다. 누명을 벗고, 어린 딸을 지키려 고군분투했던 3개월.

"보통 한 작품에서 빠져나오는 기간은 한 달에서 두 달 정도 걸리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빨리 빠져나오기 위해서 애써보기도 했는데, 결국 시간이 답이더라고요. 아무래도 이번 작품은 좀 더 오래 남을 것 같긴해요"

그도 그럴 것이 춥고, 더운 날씨를 모두 견디며 산 속에서 뛰고 또 뛰었다. 의상도 한복인데다 분장도 약 1시간 이상 걸리는 사극의 특성상 체력적으로도 힘들 수밖에 없는 상황. 딸을 부둥켜안고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억울한 누명에 괴로워하는 등 감정 연기도 회를 거듭 할수록 깊어졌다.

"마지막 촬영 날, 실제 극 중 엔딩 장면을 찍었는데...잔상이 오래 남더라고요. 그 분위기, 당시의 느낌이 아직도 가슴 속에 있어요. 그 때도 한동안 현장에 계속 있었어요. 산꼭대기에서 촬영했는데 제가 가장 늦게 내려왔죠"

마음 속 여러 가지 감정이 교차했을 터. 끝났지만 늘 그렇듯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는 이동욱.

"19, 20회는 아직 모니터를 못했습니다. 결과물은 매번 그렇지만 아쉽죠. 항상 최선을 다하지만, 찍어놓은 걸 보면 그렇더라고요. 어쩔 수 없는 부분이지만 아쉬움이 커요(웃음). 작품을 하나씩 끝낼 때 마다 스스로에게 '죽을 만큼 최선을 다했느냐'고 물어요. 이번에는 그랬고, 할 때도 그렇게 느꼈는데 막상 끝나고 나니 '너무 쉽게 봤던 건 아닌가' 싶더라고요"

방영에 앞서 열린 제작발표회 당시, 이동욱은 매우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이었다. '처음'에 의미를 부여하는 취재진의 질문에도 당당하고 또 덤덤하게 넘어갔다. 그러나 실제는 조금 달랐다. 종영이 된 후에야 조심스럽게 속내를 드러냈다.

"연기 생활 14년 째, 책임감이 더 커졌어요. 모든 배우들이 다 그럴 것이지만, 할 때마다 고민되고 엄청난 압박감과 긴장에 시달려요. 수많은 사람들이 저를 꾸짖는 꿈을 꾸기도 하고, 불면증에 시달리기도 했죠"

"잘해야 되는데..."하는 생각 때문에 잠도 설쳤고, 심적인 부담감도 상당했다. '천명'의 시작 전 이동욱은 그랬다. 이는 진행 중에도 이어졌고 순간엔 최선을 다해 찍었지만, 아쉬움이 크다. 어느덧 현장에서 '선배'의 위치에 섰고, 배우 인생 15년 차에 접어들었기 때문일지도.

◆ "괜찮은 선택이었습니다."

'천명'을 성공적으로 마쳤고, 다음에 어떤 작품을 하더라도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 타이틀롤로서 작품뿐만 아니라 현장도 이끌어야하는 입장이었지만, 이동욱은 촬영 현장이 가장 즐겁다.

"현장 분위기를 어떻게든 재미있게 해보려고 장난도 더 많이 치고, 농담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짓궂게 스태프들을 괴롭히기도 하고요(웃음). 나름대로 표현하고자 선물을 준비해서 드리기도 했죠. 아무래도 그런 것들을 더 신경 써서 하게 되더라고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항상 후배의 입장이었는데, 어느덧 후배들이 많이 생겼어요"

작품에 대한 해석, 장면을 바라보는 시각도 깊고 넓어졌다.

"감독님과 장면에 대한 조율을 많이 했어요. 스태프들과 같이 고민하고, 때론 제가 내놓은 의견을 반영해주시기도 했고요. 감독님께서 열린 마음으로 수용해주셨어요. 간혹 어떤 신에 있어서는 우기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 받아주셨으니 감사하죠"

실제 최종회에 등장한 한 장면은 이동욱의 의견이 적극 반영된 결과물이다. 마지막 회, 송종호(이정환 역)와 강별(최우영 역)의 입맞춤 장면이 그것. 이는 이동욱의 의견이 반영돼 탄생할 수 있었다. 당초 대본에는 강별이 손으로 송종호의 입을 막는 것이었으나, 현장에서 리허설을 지켜보던 이동욱이 "입으로 막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의견을 내놓은 것. 이를 감독이 수용해 '천명'의 유일한 입맞춤 장면이 나왔다.

이동욱은 당시를 떠올리며 "그동안의 멜로 연기 경험을 토대로 '지금이 타이밍'이라고 생각했다"고 표현했다.

이 한 마디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 그동안 대중들에게 이동욱은 달콤하고 설렘 가득한 로맨틱 코미디 장르에 익숙한 배우였다. 그러나 '천명'을 통해 그 한계점을 넘었다. 한복을 입고, 딸이 있는 아버지로서도 제 역할을 톡톡히 해냈으니 말이다.

로맨틱 코미디 장르를 넘어 사극으로 스펙트럼을 넓혔다. 앞으로 연기자로서의 행보 역시 더 넓어진 셈이다.

"그런 점에 있어서는 '천명'이 괜찮은 선택이었던 것 같아요. 더불어 기대와 숙제도 동시에 안게 됐고요. 다음 작품은 좀 더 신중하게 선택해야 하지 않을까요? 또 늘 하는 고민은 여러 가지 선택 중에 잘 하는 걸 해야 할지, 아니면 잘 할 수 있는 걸 해야 할지의 기로에서 고민하죠. 물론 닥쳐봐야 아는 거지만요"

◆ "대중들이 선택하지 않으면 존재의 의미가 없잖아요"

체력적으로, 또 심적으로 힘든 작품이었던 '천명'. 그러나 현장 분위기만큼은 어느 작품보다 좋았다. 송지효를 비롯해서 권현상, 조달환까지 유독 그와 동갑내기 연기자들이 많은 것도 한 몫 했다.

"같이 연기한 배우들이 정말 좋았어요. 이번 작품은 특히 더 그랬고요. 선배들의 격려를 참 많이 받았죠. '잘한다, 네가 최고다'라고 이야기를 해주셔서 힘을 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었지만, 버틸 수 있는 힘이 됐죠"

'명품 아역연기자'라는 극찬을 받은 김유빈양과의 연기 호흡도 극의 재미에 큰 몫을 했다.

"계속해서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해서 쑥스럽긴 한데, 사실 딸을 향한 애틋함을 표현하는 것도 부담스러웠어요. 그런데 부성애 등의 감정 연기는 회가 거듭되고 극에 빠져들면서 저절로 나오게 됐죠. 유빈이와의 호흡도 좋았고요"

극 초반, 이동욱을 향한 시청자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그러나 이는 그에게 국한된 것이 아니라, 항상 어떤 결과물의 의견은 양분화 될 수밖에 없다. 연기자의 입장에선 날카로운 시선이 마냥 유쾌할 수만은 없고, 이는 이동욱 역시 마찬가지. 그러나 받아들이는 입장은 조금 달랐다.

"예전에는 댓글이나, 대중들의 반응을 거의 신경 쓰지 않는 편이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날 수록 그냥 넘어가면 안 되는 것이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물론 얽매이면 안되겠지만, 벗어나서도 안 될 것이 대중들의 목소리라고 생각합니다. 100이라고 치면, 100 전부는 아니더라도, 받아들일 건 받아들여야죠"

그리고 그는 자신이 대중과 함께 소통하는 직업이란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사실 직업의 특성상 대중, 시청자들이 선택을 하지 않으면 존재의 의미가 없잖아요. 그렇지만 늘 딜레마는 생기죠. 대중들이 좋아하는 기호를 알 것 같은데, 그런 것만 하기엔 스스로의 만족도를 신경 쓰지 않을 수 없고. 그래서 항상 어려워요"

'천명'을 막 끝낸 지금, 앞과 뒤를 동시에 바라볼 수 있게 됐다.

"군 제대 후 '여인의 향기'라는 드라마로 좋은 성적을 거뒀고, 거기에 심취해 있었던 것 같아요. '천명'을 하고나니, 30대의 뭔가가 시작된 건 아닌가 하는 기분이 듭니다. 과거 예능프로그램에서 '사극이 하고 싶다'고 했는데 이뤘어요. 이제는 또 다른 목표, 도전을 생각해 봐야겠죠"

매번 다른 출발점에 서는 배우라는 직업. "하면 할수록 어려운" 연기를 매년 한 작품 이상씩 소화해야한다. 대사, 눈빛, 몸짓 하나만으로도 보는 이들의 심금을 울려야 하고 웃음도 전달해야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촬영 현장이 가장 즐겁고 신나는 이동욱은 영락없는 배우다.

"새로운 시작, 책임감이 늘어갈 것 같아요. 더불어 부담감 역시도요. 또 더 치열해져야 할 것 같습니다. 한계가 어디인지는 모르겠지만 방법은 계속하는 수밖엔 없겠죠. 결국, 앞으로 나아가고 발전할 수 있는 방향은 끊임없이 도전하고 부딪히는 것 같아요. 바람이 있다면 5, 60대가 되어도 멜로 연기를 하고 싶어요. 하나 더, 신뢰와 믿음이 가는 배우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작품에 앞서서는 누구보다 긴장하고 부담감도 큰 그이지만, 항상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 어울린다. 늘 당차고 유쾌한,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세월이 흐를수록 매력을 더해가는 배우로 성장하길 소망한다.

"달라질 것이고, 더 잘하고 싶습니다. 앞으로의 이동욱,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김하진 이슈팀기자 /hajin1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