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 기근으로 대정전 초비상…전기요금 저렴한 시간대 충전하고 피크타임에 사용하는 에너지혁명 재부각

전력수요 해마다 걷잡을수 없이 급증 내년 원전2기 가동돼도 일시적 해결 뿐

2009년 정부 스마트그리드 주요 의제로 정부 부랴부랴 ICT기술 절전방안 발표

SK케미칼 등 국내기업 기술 세계 최고 국내 수요 적어 유럽 등 해외시장 눈독

전기 기근이 극한에 달하고 있다. 정부의 스마트그리드(Smart Grid) 정책이 관심을 넘어 시급한 일이 돼가고 있다.

지난 2011년 9ㆍ15 대정전 때부터 시작된 전력난 논란. 이제는 여름과 겨울 같은 계절적 피크 시즌은 물론 봄ㆍ가을마저도 안심할 수 없는 분위기다. 정부의 ‘절전 캠페인’은 마치 1997년 IMF 당시 대국민 금 모으기 운동 이상이다. 돈이 전기로만 바뀌었을 뿐, 직장ㆍ학교 등 여기저기서 ‘절전’을 강요받고 있다.

27일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전날 피크타임 때인 오후 2~3시의 순간 전력 수요는 000만㎾를 기록했다. 정확히 1년 전인 지난해 8월 26일 기록한 0000만㎾보다 0만㎾를 더 사용한 것이다. 전력 수요는 해가 갈수록 높아만 가고 있다.

분명히 지난해보다도 국민의 ‘더워서 못 살겠다’는 원성은 높아지고 있고, 산업체의 조업 조정 및 자가발전기 가동 등의 수요 억제책은 다양해지고 있는데 왜 전력거래소 전광판의 위험 수위는 점점 더 위태위태해지는 것일까?

‘온 국민을 들끓게 만든 원전 비리만 없었다면’이라는 후회부터 ‘내년 신규 원전 2기만 더 가동하면 전력난은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는 근본적인 해답을 내놓을 수 없다. 새로운 대안은 지능형 전력망, 바로 ‘스마트그리드’다.

▶바빠진 스마트그리드 정책=스마트그리드란 전력 시스템의 효율을 극대화하는 것으로, 발전소와 송ㆍ배전시설, 전력 소비자들을 정보통신망으로 연결해 전력 소비량을 쌍방향으로 체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말한다.

기본 개념은 간단하다. 전기요금이 저렴한 시간대에 에너지 저장장치(ESSㆍEnergy Storage System)에 전기를 충전하고, 전력이 부족한 피크타임 때 충전분을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 핵심이다.

지금까지 전기에너지는 기술적으로 저장이 불가능했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에너지 저장장치란 에너지 혁명을 일으킬 수 있다. 마치 인류가 냉장고를 발명해 음식을 저장한 뒤 나중에 먹을 수 있게 만든 것과 비견할 만하다.

이런 스마트그리드를 통한 수요 관리가 우리 정부의 주요 의제로 떠오른 것은 지난 2009년 11월 ‘제6차 녹색성장위원회 보고대회’ 이후다. 당시 정부는 2016년까지 핵심 기기인 스마트계량기의 보급과 20만㎾h 규모 ESS 설치, 전기차 충전기 15만기 설치 등을 통해 원자력발전 1기 분량인 120만㎾를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2년 후인 2011년 9월 15일 사상 초유의 대정전 사태가 일어나자 갑자기 마음이 다급해졌다. 지금껏 부족함을 모르고 쓰던 전기에너지였는데 상황이 달라졌음을 실감한 것이다. 스마트그리드 진흥 정책이 처음 대중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때다. 탄력을 받아 2012년 2월 ‘제6차 녹색성장 정책 이행 점검회의’에서는 3년 전 논의된 안건들이 모두 정부 추진 정책으로 확정됐다.

하지만 그래도 국내 전력 수요 증가 속도는 걷잡을 수 없게 증가했다. 결국 산업통상자원부는 스마트계량기 전환계획을 오는 9~10월 중에 발표하기로 계획을 앞당겼다.

지난 12일 열린 ‘스마트그리드 정책간담회’에서 윤상직 산업부 장관은 “정부의 역할은 새로운 비즈니스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고, 실제 투자는 민간부문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만 호들갑 떨어봤자 안 되겠으니, 민간에서도 적극 나서 전력난 문제 해결에 동참하라는 사실상의 ‘채근’이다.

기업들도 지지 않았다. 정부에 구체적 요구 사항으로 ▷요금 체계 개편 ▷전력 재판매 허용 ▷ESS(에너지 저장장치) 보급 위한 제도 개선 ▷지능형 수요 관리 서비스 육성 ▷스마트미터기 전환 및 확산 사업 추진계획 등을 제시했다.

이후 16일 산업부는 ICT 기술을 활용한 절전 방안을 발표했다. 에너지 정책을 공급 중심에서 수요 관리형으로 전환하고, ICT와 전력을 융합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한다는 계획이 골자다. 이를 위해 ESS를 이용, 심야시간대 전기를 저장했다가 주간 피크시간대 사용하는 기업들에는 인센티브를 주고, 아낀 전력은 기업이 직접 전력 거래 시장에 되팔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전기료가 원망스런 세계 최고 기술=경기 성남 판교신도시에 위치한 SK케미칼 사옥의 ‘에코랩’은 기상 예보를 바탕으로 신재생에너지의 전력 생산량을 예측하고 부족분은 값싼 심야 전력으로 충전한다. 전력 부하를 분산해 전기료를 낮추는 시스템이다. 이미 해외 유수 기업에서도 에코랩 투어 문의를 해올 정도다. 회사 측은 이 시스템으로 연간 에너지 사용량을 44% 절감, 약 4억4000만원의 비용을 절감한다고 설명했다.

국내 제주 스마트그리드 실증단지 사업에 참여했던 포스코ICT는 일본의 에디슨파워와 공동으로 일본 ‘배터리 에너지 저장장치(BESS)’ 시장에 진입했다. 포스코ICT 관계자는 “중동 국가에도 컨설팅을 시작했고, 미국에는 주파수 조정 사업 참여를 앞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효성은 홍콩 전력청과 400㎾급 대규모 ESS 구축계약을 이미 체결했다. 효성 관계자는 “미국을 포함한 북미, 유럽, 홍콩을 포함한 중국, 호주 등 선진국 시장에 대한 전략적 접근이 필수”라며 “전력 시장과 신재생에너지 도입량이 큰 국가일수록 우선 접근하고 있다”고 답했다.

왜 이들은 국내 시장은 외면하고 해외부터 눈독을 들일까? 이유는 수지타산 때문이다. ESS 장비는 1000㎾를 구축하는 데에 수십억원의 비용이 소요될 만큼 워낙 고가의 장비가 필요하다. 수요자 입장에서는 투자비 대비 효과를 생각할 수밖에 없다.

유럽이나 미국 등 선진국의 경우 전기요금도 비싸지만 시간대별 차등화된 요금 구조 때문에 가정에서도 ESS의 수요가 있다. 스마트그리드의 가정 보급이 가장 활발한 일본의 경우 설치비용이 아무리 비싸도 수요가 항상 있다는 게 업체들의 설명이다.

소형 ESS를 생산하는 FXT 사 관계자는 “2시간 정도 전력을 사용할 수 있는 4㎾급 가정용 ESS는 구축비용이 1000만원에 달하지만 일본에서는 수요가 꾸준하다”며 “정부가 지원금까지 주고 있어 가정 보급도 활성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국내는 상황이 다르다. 전기요금 자체도 싸고, 시간대별 가격 구조도 아직 가정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한 업계 관계자는 “국내의 경우 가격 대비 투자비 회수가 어려운 환경”이라며 “우리 기업들이 현재 세계 최고 수준의 ESS를 생산하고 있지만, 일반 가정은 물론 기업들도 웬만해서는 큰 필요성을 못 느끼고 있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인 네비건트리서치에 따르면 전 세계 ESS 시장은 올해 16조원에서 2020년 58조원 규모로, 연평균 53%씩 폭발적인 성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했다.

국내 최초로 1㎿급 ESS를 설치해 사용하고 있는 삼성SDI 기흥사업장도 연 1억2000만원의 전기요금을 절약하고 있지만, 현재의 전기료 체제로는 투자비 회수까지 10년이 훌쩍 넘어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우리 기업이 미래를 내다보고 세계 최고 수준으로 확보한 ESS 기술력을 국내에서도 쉽게 보려면 일단 차등요금제 강화 등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윤정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