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서상범 기자]경기도 안산에 사는 김미대자(70) 할머니는 요즘 입가에 웃음이 가시지 않는다. 마흔이 다되도록 장가를 가지 못해 걱정을 끼치던 두 아들에게 시집온 두 며느리 때문이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손주들까지 차례로 안겨준 복덩이 며느리들은 바로 베트남에서 온 원띠뚜엔란(28) 씨와 레티반(31) 씨다.
원띠뚜엔란 씨는 2006년 남편 안동은(46) 씨와 만났다. 안 씨의 회사 사장이 베트남 지인을 통해 소개시켜준 것. 안 씨는 그녀의 사진을 보고 한눈에 반했고 얼마후 베트남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안 씨는 “마흔이 다되가며 결혼을 접어야 하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을 하던 중 아내와 만남은 그야말로 구원과 같은 기회였고 국적은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원띠뚜엔란 씨도 “국제결혼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이 돌던지라 다소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남편의 듬직한 인상과 태도에 이 남자와는 평생을 함께해도 괜찮겠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시작된 한국에서의 결혼 생활이 처음부터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다. 우선 음식이 문제였다. 원띠뚜엔란 씨는 “매운 음식에 적응하는 것이 정말 힘들었다”며 특히 김치를 처음 먹었을 때는 매운 맛에 한 번 놀라고, 이 김치를 매 끼마다 꼭 먹는다는 사실에 두 번 놀랐다고 한다.
베트남과 다른 한국문화도 걸림돌이었다. 남녀가 똑같은 일을 하고, 사회적 지위도 여성이 다소 높은 베트남에 비해 한국의 가부장적 문화는 좀처럼 적응하기 힘든 부분이었다. 언어적인 부분도 만만치 않았다. 남편은 약간의 영어를 쓰면서 어느정도의 의사소통이 가능했지만, 시어머니를 비롯해 다른 한국인들과 대화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 모든 걸림돌을 해소시킨 것은 한국을 이해하고 적응하려는 원띠뚜엔란 씨의 노력과 남편의 배려와 이해였다. 원띠뚜엔란 씨는 “한국을 다른 나라, 낯선 나라가 아닌 내가 살아가야 할 또 하나의 고국이라고 생각하고 적응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며, “여성가족부에서 운영하는 다문화센터뿐 아니라, 안산시에 거주하는 다른 베트남 및 다문화 이주여성들과 정보교류를 통해 하나하나 적응해나갔다”고 말했다.
그녀는 이 과정에서 남편이 많은 도움을 줬으며, 바쁜 와중에도 한국어 공부를 도와주는 것은 물론, 집안 일을 조금이라도 나눠서하려는 모습에 많은 힘을 얻었다고 말했다. 안 씨는 “다른 나라와 다른 문화를 살아온 사람들이 어울려 살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사랑과 이해, 배려”라며, “한국은 이렇다, 베트남은 이렇다고 고집과 주장을 하기보다는 절충하고 적응하는 모습이 있다면 크게 싸울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적응해나가던 중 원띠뚜엔란 씨는 사랑의 큐피트가 되기도 했다. 바로 남편의 동생인 기동(44) 씨에게 2008년 지금의 아내인 레티반 씨를 소개시켜준 것이다. 결혼할 마음이 전혀 없었던 동생이었지만 형과 알콩달콩 잘사는 형수를 보고 결혼을 결심하게 됐다.
기동 씨는 “형수가 한국 생활도 열심히 하고 어머니에게도 잘하는 모습을 보고 형수가 소개시켜준 여자면 믿을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지금은 결혼을 인생의 최고의 선택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두 형제는 베트남 출신 부인과 각각 남매를 낳아 키우고 있다. 인근에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두 형제 가족의 나날은 말 그대로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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