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이형석 기자]
■ 김기덕의 ‘뫼비우스’
이번 김기덕의 영화는 조금 힘들다. 다소 풀어지고 부드러워졌던 김기덕의 세계가 ‘피에타’에서 다시 날을 곤두 세웠고, 이번 ‘뫼비우스’에선 더욱 서슬 퍼래졌다. 까딱 자칫하다간 김기덕이 휘두르는 상상력의 칼에 마음을 다칠지도 모르겠다. 일단 마음을 다잡고 관람을 준비해야 한다.
영화는 파격적이고 적나라하며 신랄하다. 성기가 절단되고, 성적 희열을 위해 신체가 훼손된다. 아버지의 성기가 아들에게 이식되고, 부자(父子)가 같은 여자를 탐하며, 모자(母子)가 성적인 관계를 맺는다. 대부분의 장면이 ‘근경’(近景)으로 스크린에 담긴다. 웬만큼 단련된 영화전문가도, 김기덕 영화의 팬이라도, 시각과 청각의 한계를 넘나들며 스크린에서 엄습해들어오는 감각의 무자비한 공세를 당해내기가 어렵다. 때로 불편함과 불쾌함의 정도가 ‘고문’ 수준으로 치닫는다. 이만하면 말초적 감각을 자극함으로써 객석을 ‘충격’으로 몰아가는 전략은 가히 성공적이다.
생각해보면, 영화 뿐만이 아니다. 카메라 바깥에서도 김기덕 감독은 말로 한국영화계에 항상 파란을 일으켰고 논란을 불렀다. 그가 ‘취중언사’까지 동원해 한국영화계를 싸잡아 비판하고, 욕설과 독설을 던진 자전적 다큐멘터리 ‘아리랑’은 카메라 안팎에서 그가 일으켰던 충격파의 절정이었다. 그는 데뷔작 ‘악어’로부터 한국영화계와 불화했다. 평론가들은 그의 작품을 여성에 대한 가감없는 폭력을 행하는 ‘여성비하’ ‘여성착취’ ‘남근주의’ ‘남성우월주의’라고 비판했고, 관객들은 지옥도 같은 그의 세계를 외면했다. 한동안 그의 영화는 분노와 폭력, 살인, 강간을 서슴치 않는 인물들의 기괴한 욕망으로 채워졌다. 그러다가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을 기점으로 그의 세계에는 상징과 추상, 종교적인 언어들이 삼투되기 시작했고, 용서와 구원, 화해의 기운들이 깃들기 시작했다. 그의 말대로 그것은 카메라가 조금 더 멀찍이서 인간사를 바라본 결과일지도 모른다. 클로즈업의 적나라함을 알아챌 수 없는 원경의 그림들은 조금 더 사색적이었고, 조금 더 성찰적이었다. 하지만, ‘피에타’에서 조금 더 가까이 들여다 본 삶은, 그리고 그 근원이라 할 수 있는 가족은 애초부터 파국적이었고, 원래부터 폭력적이었다.
이로부터 김기덕의 태도는 다시 초기의 지점으로 되돌아간 것이 아닌가하는 혐의가 생긴다. 그의 영화가 끔찍한 것을 끔찍한 것으로 묘사함으로서 반성을 요구한다면, 그의 발언이 충격적인 방식으로 이의제기를 함으로써 문제를 환기하도록 한다면, 그것은 센세이셔널리즘이 아닐까?
과연, 작가주의일까, 센세이셔널리즘일까? 김기덕 감독의 20번째 영화 ‘뫼비우스’는 그 경계에 위태하고 불온하게 걸쳐져 있다. 불편함을 감내하고 영화를 조금 더 가까이서 들여다보자. 남자(조재현 분)는 골프채로 스윙을 연습하고 여자(이은우 분)는 와인을 마시며, 아들(서영주 분)은 교복을 입고 있는 대한민국 중산층의 가정이다. 남편 휴대폰의 벨이 울리고, 머리를 산발한 여자가 다짜고짜 뺏어든다. 아들이 보는 가운데 서로 휴대폰을 가지려 그악한 육탄전을 벌이고, 힘으로 아내를 제압한 남편은 통화한 후 집을 나선다. 외도다. 그는 길모퉁이 허름한 구멍가게의 젊은 여인(이은우 분)과 차 안에서 질펀한 정사를 벌인다. 아버지의 불륜을 아들이 훔쳐보고, 아버지의 엇나간 욕망을 지켜보는 아들을 아내가 목격한다. 눈밝은 관객은 아내와 가게의 젊은 여인이 묘하게 닮았다는 점을 알아차릴 수 있다. 같은 여배우다. 이은우의 1인 2역이다. 시선이 겹치고 욕망이 얽혀들며 이룬 한 가족의 기묘한 ‘뫼비우스의 띠’다.
분노한 여자는 칼을 들고 남편의 성기를 자르겠다고 달려들지만 실패한다. 대신 아들의 몸을 희생의 제물로 바치려 한다. 결국 아들의 육체는 훼손당하고, 자신 때문에 벌어진 비극에 아버지는 절망한다. 결국 스스로 눈을 찌른 그리스 신화의 오이디푸스처럼 아버지는 자신의 몸을 베어냄으로서 속죄하려 한다.
띠를 한번 꼬아붙여 안팍의 경계를 없애는 ‘뫼비우스’ 놀이는 계속된다. 아들은 성기를 잃었지만 아버지의 불륜 상대를 찾아가 금단의 쾌락을 욕망한다. 스스로 거세한 아버지는 불구가 된 아들의 성(性)을 찾아내려 온갖 방법을 시도하는 한편, 스스로는 거세된 몸을 위한 새로운 욕망의 샘을 ‘자해’에서 발견한다. 결국 아들의 몸엔 아버지의 성기가 이식되고, 한 가족이 이룬 욕망과 쾌락의 ‘뫼비우스의 띠‘는 순환을 계속하다 어느 지점에서 비극적인 끝을 본다.
김기덕 감독의 세계에서 한동안 바깥으로 밀려났던 폭력과 강간, 자학, 살인, 신체훼손의 기괴한 세계가 다시 중심으로 돌아왔고,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에서 한발 떨어져 아름다운 사계 속 인간사의 불교적 순환을 그려내며 절정을 이뤘던 ‘원경(遠景)의 상상력’ 대신 위악적이고 신랄한 클로즈업의 고통이 스크린의 한 가운데로 들어왔다. 신체를 해하는 ‘섬’, 여인이 자신을 겁탈한 남자를 받아들이는(사랑하는) ‘나쁜 남자’, 침묵 속에서 기묘한 삼각관계를 보여준 ‘빈집’, 남편의 외도로 인해 다른 남자를 찾아간 여인의 이야기 ‘숨’, 한 여인이 성형 전후의 자신과 연적관계가 된다는 설정으로 ‘얼굴 바꾸기 놀이’를 보여주는 ‘시간’ 등 김기덕은 자신의 20번째 작품에서 그동안의 전작들을 가장 극단적인 방식으로 인용하거나 답습한다.
김기덕 감독은 “가족은 무엇인가 욕망은 무엇인가 성기는 무엇인가”라고 물으며 “내가 아버지고 어머니가 나고 어머니가 아버지다, 그렇게 우린 뫼비우스 띠처럼 하나로 연결된 것이고 결국 내가 나를 질투하고 증오하며 사랑한다”고 ‘작의’를 밝혔다. 김기덕 감독은 일찌기 ‘시간’에서 영화의 처음과 끝을 이어놓음으로써 시작도 끝도 없는 시간의 뫼비우스를 보여줬으며, 이번 영화의 성기이식과 비견할만한 ‘얼굴바꾸기’를 통해 관계와 정체성의 뫼비우스를 극화했다.
다시 물을 수 밖에 없다. 작가주의인가, 다만 센세이셔널리즘일 뿐일까? 김기덕 감독이 작품 속에서나, 영화계에서나 오로지 충격과 논란을 통해서만 자신의 작가적인 의지를 성취할 수 있다고 믿을 때 센세이셔널리즘과 작가주의는 다시 ‘뫼비우스의 띠’를 이룬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김기덕 감독의 섬뜩한 이미지와 논쟁적인 발언은 오히려 그의 작가주의를 훼손하는 것은 아닐까? 20번째 다운 김기덕 세계의 ‘종합’이자 ‘완성’이 아니라 ‘정체’나 ‘퇴행’처럼 보이는 ‘뫼비우스’에 선뜻 엄지손가락을 들 수 없는 이유는 단지, 시각적이고 도덕적인 불편함 때문만은 아니다.
■ 홍상수의 ‘우리 선희’
홍상수의 영화는 점점 능청스러워지고, 점점 유들유들해지며, 점점 재미있어진다. 점점 경쾌해지고, 점점 유머러스해진다. 약간 ‘연속극’을 보는 듯한 느낌도 드는데, 왜냐하면 이어지는 작품들에 극중 비슷한 인물과 이름이 반복돼 등장하고, 같은 배우들이 비슷한 역할을 맡아 연기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매년 한 두 편씩 상영이 되는 연속극이나, 이야기는 연속되지 않지만 같은 인물들의 다른 이야기를 그리는 연작같은 인상을 준다. 그래서 첫 회부터 보게 되면 더 재미있지만, 최근 에피소드 한 편만을 떼어놓고 봐도 전혀 문제가 될 일 없이 즐거움을 준다. 그리고 또 몇 개월 후나 1년 후쯤에는 새롭게 만들어질 에피소드가 궁금해지기도 한다.
홍상수의 16번째 작품인 ‘우리 선희’는 한 여자와 세 남자의 이야기를 그렸다. 주ㆍ조연이 따로 없고, 그 4명의 남녀 모두가 주인공이다. 굳이 따지자면 가장 중심에는 여자가 있다. 그 여자를 만나고 바라보는 세 남자의 같거나 다른 시선이 담겨졌다.
여자는 ‘선희’(정유미 분)다. 그녀가 대학 교정에 나타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졸업 후 한동안 주위와 연락을 끊고 지내다가 잠적했다가 오랜만에 모교를 다시 찾은 길이다. 영화과 졸업생인 선희는 해외 유학을 가기 위해서 재학 중 자신을 아꼈던 최교수(김상중 분)에게 추천서를 부탁하기 위해서 학교에 발길을 한 것이다. 다시 만난 최교수는 선희를 반가와하면서 “원래 영화 만드는 게 목표가 아니냐, 유학은 도피가 아니냐, 부딪쳐 보는 것이 어떻게냐”는 둥 이런 저런 충고를 하지만, 선희는 기어이 공부를 하겠노라며 결국 추천서를 받기로 한다. 오랜만에 찾아간 학교에서 다소 울적해진 선희는 한 치킨집에서 낮술을 들이켜다 옛 연인인 문수(이선균 분)을 만난다. 오랜만에 취한 둘이 대작을 하다가 결국 문수는 여전히 선희를 사랑한다며 주저리 주저리 애정고백을 늘어놓고, 선희는 그를 뒤에 남겨놓고 술자리에서 일어선다. 옛사랑을 만나 다시 감상에 취한 문수는 잘 알고 지내는 형이자 감독인 재학(정재영 분)을 찾아 또 한잔을 청한다. 느닷없이 나타난 후배가 귀찮은 재학은 퉁명스러운 태도로 후배의 연애고민을 들어준다. 한편, 다음날 선희는 다시 최교수를 찾아가 추천서를 받지만,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내성적이며 주위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자기 표현에 능하지도 못하지만 머리가 똑똑하고 안목이 뛰어나며 이상적일 정도로 순수하다, 언젠가는 숨겨진 재능이 드러날 수도 있다”는 요지의 추천사는 도대체 칭찬인지 비난인지 모를 정도였다. 선희는 다시 써 달라며 최교수와 술 한잔을 하게 되고, 사제 관계를 넘는 뭔가 끈끈한 분위기가 흐른다. 여제자의 부추김으로 다시 가슴이 설레인 최교수는 마음 터놓고 지내는 후배를 찾는데, 그게 또 재학이다. 재학은 상대가 선희라는 사실을 모른 채, 최교수의 애정고민을 들어준다. 그리고 재학은 오가던 동네 길에서 우연히 선희를 만나고, “술 한잔 사달라”는 후배의 청에 반색해 함께 취한다. 역시 재학과도 선후배 관계를 넘는 묘한 분위기다. 이렇게 최교수와 문수, 재학 사이에서 선희는 서로의 꿍꿍이와 비밀 애정사로 숨겨진 존재가 된다. 모두에게, 각자에게 선희는 그냥 선희가 아니라 ‘우리 선희’다. 선희는 없는 자리, 이 세 명이 함께 모이면 선희에 관한 어떤 말들이 오갈까?
홍상수 감독은 몇 가지 실제 겪었던 일화를 떠올리면서 이 영화를 만들었다. 오랜만에 찾아온 옛 제자가 추천사를 부탁했던 일, 그런데 써 준 추천사가 마음에 안 든다며 다시 써달라고 청해왔던 일, 자신이 해준 충고를 아는 누군가가 똑같이 반복하고 있는 것을 듣고 당황했던 일, 누군가를 화제로 놓고 이러쿵저러쿵 말하다가 의견일치를 보고 신기해했던 일 등이다. 그러면서 홍상수 감독은 “(한 사람에 대한 평판에서) 의견 일치의 경우가 불일치한 의견으로 서로 충돌할 때보다 더 위험한 짓거리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었다” “충고란 것들이 하나의 기성상품처럼 충고자들의 입 사이를 떠돌면서 사람들 몸에 억지로 씌워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며 “우린 정리하고 정의하지 않을 수 없지만, 우리의 그런 정의 내리기가 또 우리의 한계가 되는 것 같다, 이 영화에선 우리의 이런 면을 좀 과장되게 드러내 보였다”고 말했다.
홍상수의 영화는 시덥잖고 사소해 보이는 술자리와 만남과 말들로 가득채워졌고, 때로 대화는 어색하고 주춤하며 엇나가기 일쑤고, 특별히 대단한 줄거리랄 것도 없는 일상적인 사건이 연속된다. 하지만 그 틈과 틈을 비집고 나오는 굉장한 유머와 아이러니, 그리고 인생의 진실과 성찰이 공명을 일으킨다. 그리고 무엇보다, 홍상수의 영화는 스크린 속 술자리 속에 관객을 끌어당기는 마법같은 힘을 갖고 있다. 스크린 속의 그들이 내 옆자리에서 술을 마시고 있고, 나는 그 태연한 관찰자가 되는 경이로운 순간. 물론, 극장 문을 나서면서도 술집으로 향하게 하는, 유머 지수와 함께 ‘알콜 지수'도 무척 높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