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권도경 기자] 최근 증권가 애널리스트 리포트에는 이상한 현상이 가끔씩 눈에 띕니다. 일부 상장 부품업체에 대한 분석 리포트에 납품 대기업의 이름은 사라지고 ‘국내 최대기업’, ‘최대 고객사’ 등과 같은 단어로 대체되고 있는 것입니다. 부품업체에서 탐방오는 애널리스트에게 납품하는 대기업의 이름을 빼달라고 당부(?) 하기 때문이라는 전언입니다.

영원한 ‘을(乙)’인 부품업체의 고충이 애널리스트 리포트에도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부품업체에 있어 납품 대기업은 고마우면서도 상당히 어려운 존재입니다. 가끔씩은 납품업체의 생사 여탈권도 쥐고 있을 정도죠. 납품 단가 조정 등 거래 조건이나 계약 등이 대표적입니다.

이같은 갑을 관계는 IT나 자동차, 콘텐츠 등 납품관계에 있는 여러 업종에서 나타납니다.

부품업체중에는 이런 경우도 있습니다.

최근 증권가에서는 상반기 호실적을 기록한 부품업체 가운데 기업설명회(IR)를 여는 곳을 찾아보기 힘들어졌습니다. IR을 통해 ‘누구 덕’에 좋은 실적을 올렸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납품단가 인하 압력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부품업체들이 이런 일로 끙끙 앓는 일은 비일비재합니다. 어떤 부품업체는 대외활동을 아예 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대기업 의존도가 높은 기업 경영진들은 언론 인터뷰 요청에 대부분 손사래를 칩니다. 괜한 인터뷰로 불똥이 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국내 대기업과 공급계약이 이뤄져도 제대로 홍보를 하지 않는 업체들이 적지 않습니다.

한 부품업체 관계자는 대기업 납품계약을 언론에 홍보했다가 해당 대기업으로부터 “왜 우리를 이용해 홍보하느냐”는 경고까지 받았다고 털어놨습니다. 다른 회사 관계자는 홍보용 문구까지 일일이 검열받다시피했다는 얘기도 전합니다. 부품업계에서는 대기업이 하청업체들을 공생관계가 아닌 여전히 ‘을’로 보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입을 모읍니다. 이래저래 고달픈 부품업체들의 현 주소인 것입니다.

대기업과 하청업체는 이와 잇몸처럼 공생관계입니다. 하지만 부품업체는 영원히 갑과 평등할 수 없는 을의 입장이기도 합니다. 뿌리가 탄탄하게 받쳐주지 못하면 나무가 크게 자라지 못하는 법입니다. 한국의 부품업체들이 눈치보지 말고 경영과 생산에만 전념할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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