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뽕이냐 짜장면이냐, 물냉면이냐 비빔냉면이냐, 아메리카노냐 카페라떼냐, 바닐라냐 초코아이스크림이냐’. 세상에는 사소하지만 고민에 빠지게 만드는 쌍이 있다. 한 가지를 선택하면 늘 남의 접시에 눈이 더 가는 음식 따위가 그렇다. 이번 추석극장가 티켓 발매대 앞에 선 관객들도 ‘짜장과 짬뽕’의 영원한 난제에 도전해야 될 지도 모르겠다. ‘대체재’ 혹은 ‘라이벌’ 쯤으로 짝패를 묶을 수 있는 영화가 여러 쌍 눈에 띈다.
특히 전례없는 부흥기를 맞은 한국영화의 추석상차림이 풍성하다. 2000년대 이후 한국영화사를 대표해온 이름들이 추석 극장가를 수놓는다. 송강호와 설경구, 당대 최고의 흥행파워, ‘천만배우’들이 선두다. 한해 영화관객 2억명 시대. 1년에 4번 정도 극장을 찾아 화제작들에 열광하는 일반 관객들의 가슴을 뛰게 만드는 이름이다. 영화마니아들을 흥분시키는 거장 감독의 간판도 내걸린다. 김기덕과 홍상수다. 올해 닷새간 계속되는 추석 연휴 극장가는 한국영화 르네상스의 축도(縮圖)다.
다양한 장르의 외화와 포진했다. 부모와 자녀가 함께 볼 수 있는 애니메이션도 있고, 십대들이 열광할만한 판타지도 걸린다. 색다른 선택을 하고 싶은 영화팬이라면 공포나 로맨스영화를 권할만하다.
■송강호의 ‘관상’이냐 설경구 ‘스파이’냐 한국을 대표하는 천만 배우, 송강호와 설경구가 추석 극장가의 ‘투 톱’이다. 송강호의 ‘관상’은 비극적인 사극, 설경구의 ‘스파이’는 현대 첩보 액션 코미디. 딱 한 편만 봐야 한다면 한국영화팬들은 여러 모로 갈등이 크겠다.
꼬리칸의 탑승객들을 태우고 빙하기의 지구를 질주했던 ‘설국열차’의 엔진 후열이 아직 채 식지 않은 가운데, 곧이어 도착한 송강호의 차기작 ‘관상’은 당대 최고의 ‘관상쟁이’로 꼽히는 가상의 인물과 조선 초기 정쟁의 피바람을 불러일으킨 ‘계유정난’의 역사적 사실을 결합시킨 이른바 ‘팩션 사극’이다. 극중 역적 집안으로 몰려 아들 ‘진형’(이종석 분), 처남 ‘팽헌’(조정석 분)과 산골에 은거하던 천재적인 관상쟁이 ‘내경’(송강호 분)은 한양의 내로라 하는 기생 연홍(김혜수 분)의 꼬드김에 “집안을 일으키고자” 장안으로 올라왔다가 서릿발같은 조종 내 권력투쟁에 엮이게 된다. 병약해 죽을 기색이 역력한 문종은 왕위를 이을 어린 세자(단종)를 걱정해 “역모의 운명을 타고 난 자를 가려내고 김종서와 함께 보위를 지켜달라”는 비밀 지령을 내경에게 내린다. 이때부터 ‘호랑이 상’인 김종서(백윤식 분)와 피도 눈물도 없는 야망으로 가득찬 ‘이리 상’ 수양대군(이정재 분) 사이에서 내경의 두 눈과 세치 혀에 조선의 국운이 달린다.
‘폭발적인 연기’라는 흔한 수사가 따라다니는 설경구이지만 ‘스파이’에선 마음 비우고 몸을 풀고 액션과 코미디로 구르고 엎어졌다. ‘스파이’는 아내(문소리 분)도 모르게 국가 비밀 정보원으로 일하는 철수(설경구 분)의 좌충우돌 활약상을 담은 첩보 코미디영화다. 설경구는 조직에서 유능한 스파이이지만 아내에겐 ‘팔푼이’ 취급을 받으며 고양이 앞에 쥐 신세인 주인공 역할을 맡아 문소리와 ‘허당’에 ‘푼수’인 부부연기를 보여준다.
철수는 태국에서의 대 테러 작전 중 비행기 승무원인 아내가 잘 생긴 남자(다니엘 헤니 분)와 놀아나고 있는 것을 목격한다. 그런데 상대가 테러리스트다. 아내 지키랴, 테러 막으랴, 아내 구하랴, 나라 구하랴, 철수의 동분서주와 그의 아내 영희의 좌충우돌이 절정을 향해 달려간다.
■홍상수의 ‘우리 선희’ VS 김기덕의 ‘뫼비우스’ 한국의 작가주의를 대표하는 홍상수와 김기덕도 추석극장가에 신작을 내놨다. 홍상수의 ‘우리 선희’는 유쾌한 코미디, 김기덕의 ‘뫼비우스’는 불편한 비극이다.
홍상수의 16번째 작품인 ‘우리 선희’는 한 여자와 세 남자의 이야기를 그렸다. 여자는 ‘선희’(정유미 분)다. 그녀가 대학 교정에 나타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영화과 졸업생인 선희는 해외 유학을 가기 위해서 최교수(김상중 분)에게 추천서를 부탁한다. 최교수를 만나고 나오는 길에 선희는 우연히 옛 연인인 문수(이선균 분)을 만난 낮술을 마신다. 문수는 여전히 선희를 사랑하노라며 술주정에 가까운 애정고백을 한다. 그러나 싸늘한 선희는 추천서 건으로 이번에는 최교수와 술을 마신다. 분위기가 야릇하고 최교수는 연애감정에 가슴이 설렌다. 후배 문수와 선배 최교수의 연애상담을 해주던 재학(정재영 분)도 선희를 만나 술잔을 기울인다. 둘도 평범한 선후배지간은 아니다. 이렇게 선희는 세 남자 사이의 꿍꿍이와 비밀 애정사로 숨겨진 존재가 된다. 선희는 없는 자리, 이 세 명이 함께 모이면 선희에 관한 어떤 말들이 오갈까? 홍상수의 영화는 여전히 술과 웃음을 부른다.
반면, 이번 김기덕의 영화는 맘편히 보기 힘들다. 조금 힘들다. 다소 풀어지고 부드러워졌던 김기덕의 세계가 ‘피에타’에서 다시 날을 곤두 세웠고, 이번 ‘뫼비우스’에선 더욱 서슬 퍼래졌다. 까딱 자칫하다간 김기덕이 휘두르는 상상력의 칼에 마음을 다칠지도 모르겠다.
영화는 파격적이고 적나라하며 신랄하다. 성기가 절단되고, 성적 희열을 위해 신체가 훼손된다. 아버지의 성기가 아들에게 이식되고, 부자(父子)가 같은 여자를 탐하며, 모자(母子)가 성적인 관계를 맺는다. 대부분의 장면이 ‘근경’(近景)으로 스크린에 담긴다. 웬만큼 단련된 영화전문가도, 김기덕 영화의 팬이라도, 시각과 청각의 한계를 넘나들며 스크린에서 엄습해들어오는 감각의 무자비한 공세를 당해내기가 어렵다. 때로 불편함과 불쾌함의 정도가 ‘고문’ 수준으로 치닫는다. 김기덕의 영화는 한층 더 어두운 욕망의 지하도 혹은 지옥도 속으로 걸어들어간다.
■‘몬스터 대학교’ VS ‘슈퍼배드2’ 추석 극장가에 나란히 개봉하는 두 편의 할리우드 애니메이션은 모두 시리즈의 속편이다. ‘몬스터 대학교’는 ‘몬스터 주식회사’의 주인공들을 겁주기 대전공 대학생 시절로 데려간 작품. ‘슈퍼배드2’는 전편에서 슈퍼악당이었던 주인공을 딸바보 아빠로 변신시켰다.
‘몬스터주식회사’(2001)의 주인공인 마이크와 설리반의 대학시절 에피소드를 그렸다. 캐릭터가 매력적이다. 외눈박이 귀염둥이 괴물 마이크는 아무리 노력해도 웃음을 자아내는 외모가 콤플렉스. 반면 설리반은 한번만 움찍해도 사람을 놀래키는 천부적인 몬스터다. 견원지간이었던 둘이 함께 팀을 이룬 경연대회를 통해 우정과 재능을 깨닫는다는 성장담이다. 각양각새의 몬스터가 아이들의 환호를 자아낼만하다.
‘슈퍼배드 2’는 슈퍼악당에서 ‘딸 바보’로 변신한 ‘악당’ 그루의 이야기를 담았다. 세 딸 마고, 에디스, 아그네스와 함께 행복한 삶을 살고 있던 그루. 그러던 어느 날 세상을 지배하려는 최강 악당 군단이 나타나자 그루는 비밀 요원으로 변신, 악당 소탕작전에 투입된다. 역동적인 액션과 화려한 스펙터클이 장점이다. 이야기도 탄탄하다. 한국 더빙판에선 소녀시대의 태연과 서현이 목소리를 연기했다.
■‘섀도우 헌터스: 뼈의 도시’ VS ‘퍼시잭슨과 괴물의 바다’ 10대~20대의 젊은 관객을 타깃으로 하는 판타지 영화도 나란히 추석을 앞두고 개봉했다. 먼저 ‘섀도우 헌터스: 뼈의 도시’는 크게 보아 ‘트와일라잇’ 시리즈의 설정이나 분위기를 벗어나지 않는 작품이다. 악마사냥, 늑대인간, 뱀파이어 등 서구 판타지 영화의 익숙한 소재가 등장한다. 뉴욕에 사는 10대 소녀 클레리(릴리 콜린스 분). 집을 비운 사이 엄마가 정체를 알 수 없는 인물들에 공격을 받자 클레리는 우연히 알게 된 새도우 헌터 제이스(제이미 캠벨 바우어 분)의 집으로 거처를 옮긴다. 제이스의 집에서 새도우 헌터의 역사 등을 공부하게 된 클레리는 엄마가 실제로는 뛰어난 새도우 헌터였고 어렸을 적부터 친하게 지내온 아저씨가 늑대인간이며 아버지로 믿고 있던 사람이 가공의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고 충격에 휩싸인다. 예쁘고 멋있는 젊은 배우들이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책임과 사명을 다하게 되며 그 와중에 로맨스를 경험한다.
‘퍼시잭슨과 괴물의 바다’는 2010년 개봉한 ‘퍼시잭슨과 번개 도둑’의 후속편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빌어온 판타지로 주인공들은 신과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데미갓’이다. 신과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데미갓들이 모여 사는 ‘데미갓 캠프’에 어느날 절대 뚫리지 않는 굳건한 보호막을 뚫고 황소 한 마리가 침입한다. 캠프 곳곳에서 위기를 알리는 경고음이 발생하자, 포세이돈의 아들 퍼시(로건 레먼)와 아테네의 딸 아나베스(알렉산드라 다다리오) 등은 보호막을 재건하기 위해 재생능력이 탁월한 황금 양피를 찾으러 괴물의 바다로 나선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사랑에 빠질 확률 VS ‘컨저링’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로맨스영화, ‘컨저링’은 공포영화다. 사랑이 뭔지, 공포가 뭔지 확실히 보여주는 수작들이다.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세상 수많은 인연 가운데 운명의 짝을 마주치기까지 두 남녀의 이야기를 그렸다. 두 주인공이 만나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아니라 서로를 알아보기까지 보내야만 하는 시간과 우연에 관한 영화다. 여느 로맨스 영화와 달리 전개가 독창적이다. 마틴(하비에르 드롤라스 분)과 마리아나(피욜라 로페즈 드 아야라 분)는 부에노스 아이레스라는 도시 속의 섬같은 존재다. 남자는 좁은 집안에 틀어박혀 컴퓨터로 모든 생활을 하는 웹디자이너다. 7년전 헤어진 여자친구가 남기고 간 강아지만 그의 곁을 지킨다. 여자는 쇼윈도를 디자인하는 디스플레이어다. 어느날 닥친 회의를 끝내 벗어나지 못하고 불현듯 4년간의 동거와 연애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서로 낯도 모르고 존재도 모르는 두 남녀. 각자는 가끔 우연히 마주친 이성과 밥먹고 운동하고 얘기하고 섹스하며 인연과 가능성을 타진하지만, 늘 뭔가 하나 둘씩 삐꺽거리고 결국 관계는 실패로 끝난다. 과연 그들은 어떻게 서로를 알아보게 될까.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도시 풍경과 두 주인공의 취향을 말해주는 다양한 소품 및 미술, 그리고 매력적인 배우와 귀를 즐겁게 하는 음악이 빼어나게 어우러졌다.
‘컨저링’은 이른바 ‘하우스 호러’다. 귀신들린 집을 그린 공포영화다. 1971년 로드 아일랜드의 한 농가에 다섯딸을 둔 페론 부부가 이사를 온다. 새 집에 대한 기쁨도 잠시, 집에는 괴이한 일들이 연속되고, 가족들은 악령과 죽음의 공포에 시달린다. 페론 부인은 당대 최고의 악마전문가인 워렌 부부를 불러 악령을 퇴치하고자 한다. 전형적인 ‘엑소시즘’ 장르에 하우스 호러, 가족드라마를 결합했다.
이형석 기자/suk@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