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의 엘리트들이 몰리는 글로벌 금융기관에서도 성차별적 언행이 만연해, 자산운용사에 다니는 여직원 4명 중 1명은 성희롱을 당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남성 중심의 기업 문화 때문에 성차별에 대한 인식이 낮은 데다, 팀워크를 중시하는 분위기 상 문제시하기도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9일 파이낸셜타임스(FT)의 투자주간 FTfm은 자체 설문조사 결과 글로벌 자산운용사에 근무하는 여직원의 54%가 지난 1년 간 직장에서 성차별적 발언이나 행동 등 ‘부적절한(inappropriate)’ 행위를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특히 신체적ㆍ언어적 성희롱을 당했다고 대답한 여직원은 전체 응답자의 28%에 달했다.
또 부적절한 행위를 겪었다고 응답한 여직원 중 25%는 매달, 6%는 매주 1번꼴로 피해를 입었다고 말해 직장 내 성차별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FTfm과 리서치업체 세룰리어소시에이츠(CA)가 글로벌 자산운용사에 다니는 남ㆍ여직원 100명을 대상으로 수행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른 것이다.
이와 함께 이번 조사에서 직급이 낮은 여직원일수록 성차별 피해를 입기 쉬운 것으로 확인됐다.
직급이 낮은 여직원의 70% 이상이 최근 1년 내 성차별을 당했다고 응답한 반면, 중간 및 고위직 여성 중에는 49%만 성차별을 경험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같은 결과는 금융계에선 성차별 및 성희롱이 덜 발생할 것이라는 일반적 시각을 뒤짚는 것으로, 남직원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자산운용 업계 특성 상 발생하는 일이라고 신문은 분석했다. 남성 중심의 시각이 팽배해 직장 내 여성의 입장을 미처 고려하지 않거나 동료로서 평등하게 인식하지 못한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익명을 요구한 한 여성 애널리스트는 “성적인 대상으로 인식되지 않기 위해 화장을 전혀하지 않는다. 머리를 묶고 안경까지 쓰기도 한다”고 토로했다.
조사에 참여한 또다른 여성도 “자산운용 업계는 철저히 남성이 지배하는 구조”라고 꼬집은 뒤 “여성인 동료 직원들을 (직장 내 주류 남성 집단에서) 소외시키는 행동이나 문화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성적인 피해를 입어도 이 문제를 직장에 제기하기 어렵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이 떨어지는 데다, 회사 분위기를 흩뜨린다며 무시하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고용전문 로펌 시그넷 파트너스의 사이먼 맥머네미 변호사는 “성희롱 문제를 직장에 항의한 여직원이 외려 쫓겨나는 경우도 있었다”며 “특히 팀워크를 강조하는 기업에선 부적절하거나 불쾌한 언행을 지적하기 위해선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한편 지난 6일 뉴욕타임스(NYT)는 미국 최대은행인 뱅크오브아메리카(BOA) 메릴린치가 성차별 피해를 입은 여직원들에게 3900억달러의 보상금을 지불하기로 합의했다고 보도해 눈길을 끌었다. 또 메릴린치는 여직원들의 승진 체계를 개선하는 작업에 착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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