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이영란 선임기자] 이 작가는 하필이면 밤낮없이 소음이 이어지는 서울 이태원에 작업실겸 주거공간을 꾸렸다. 세계 곳곳의 레지던시(작가들을 위한 거주용 창작공간)를 오가던 작가 이주요(42)에겐 한밤에도 왁자지껄한 다툼이 벌어지고, 생선장수의 억척스런 외침이 귓전을 때리는 이태원 시장통이 더욱 첨예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 선택은 우연이었지만, 어쩌면 필연일 수도 있었다.
유럽을 중심으로 국제무대에서 활동 중인 설치미술가 이주요가 지난 26일부터 종로구 율곡로3길(소격동)의 아트선재센터에서 대규모 개인전 ‘나이트 스튜디오(Night Studio)’를 연다.
이번 전시는 2009년부터 2011년까지 거주하며 작업한 이태원동 작업실에서 출발한다. 그 곳은 지난 20여 년간 세계 곳곳을 유목민처럼 떠돌며 작업해온 이주요가 머문 최초의 개인작업실이다.
이태원동 시장길 초입에 위치한 이주요의 작업실은 시장 상인들과 다국적 주민들이 저마다의 삶을 치열하게 살아가는 현장이다. 작가는 새 거주지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감에 밤잠을 못 이루기 일쑤였다. 이번 작업은 그같은 내면적, 환경적 요소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이주요는 이태원동 작업실에 머무는 동안 국내외 미술관계자에게 ‘오픈 스튜디오’ 방식으로 자신의 내밀한 공간을 네 차례 걸쳐 공개했다. 삶의 터전이자 작업의 터전을 그대로 활용한 설치및 오브제, 드로잉 작업을 선보인 것이다. 이렇게 스튜디오에서 시작된 그의 작업은 이번에 아트선재센터로 옮겨져 전시 형태로 관람객들과 만나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무엇이든 직접 만들긴 좋아했던 작가는 자신만의 독특한 스토리텔링을 위해 핸드메이드 타자기를 만들었다. 기다란 나무막대 끝에, 활자가 새겨진 고무판을 매달거나, 원형으로 빙빙 돌아가며 글자가 타이핑 되도록 한 ‘이주요식 타자기’다. 따라서 그의 엉뚱한 핸드메이드 타자기들은 작동법이 저마다 다르고, 형태 또한 제각기 다르다.
전시장 벽면엔 타자기들이 찍어낸 결과물이 계속 반복된다. 타자기로 쳐내려간 텍스트 또한 흥미롭다. 거의 고함 치듯 생선을 파는 상인의 억척스런 삶을 담은 ’생선 장수‘(Fish Peddler), 끝없이 계속되는 건축공사를 원망하며 작업한 ’먼지바람‘(Dust Wind)’, 그리고 작가가 이태원동 스튜디오에서 쓴 시를 찍어내는 ‘낭송하는 타자기(Recitation of Itaewon Poetry)’ 등이 그 것이다.
오래된 주택의 나무마루를 뜯어내 이를 다시 이어붙인 설치작업 ‘무빙 플로어(Moving Floor)’ 또한 작가가 낯설고 복잡한 곳에서 겪는 불안감을 보여준다. 관객은 조금씩 흔들리는 마루 작품 위를 걸으며, 잠시나마 이주요가 느꼈던 경험을 느껴볼 수 있다. 나무바닥 밑에는 작은 바퀴들이 무수히 달려, 사람들이 움직일 때마다 삐걱대며 흔들린다.
이주요의 작업은 이처럼 일상의 온갖 낡은 재료를 활용해 이뤄지는 것이 특징이다. 버려진 철근, 문짝, 선풍기를 수거해 공간을 재구성하는 것. 또 보일 듯 말 듯한 드로잉이며, 네덜란드에서 가져온 문짝이며 바닥재 등이 곳곳에 포진해 있다. 출품작은 총 20여점이다.
그의 작업은 거의 ’발명‘ 수준인 것도 남다르다. 예술에 공학이 결합된 듯한 핸드메이드 타자기 외에도, 커다란 얼음 앞에 선풍기를 매달아 여름에 이태원을 찾았던 방문객들의 더위를 식혔던 작업 등이 그에 해당된다. 이같은 작업을 통해 작가는 곧 사라질 것들에 대해, 그 운명에 대해 반성적 사유를 시도하고 있다. 아울러 작가의 일상적 경험과 삶이 어떻게 공간 작업에 반영되고 있는지도 보여준다. 매일매일의 삶과 예술이 경계없이 교차하며, 새로운 시각예술적 방식으로 대중과 관계맺기를 시도한 이주요의 공간 작업은 다소 난해하지만 현실에 단단한 뿌리를 둔 상상력이자, 발견(또는 발명)이란 점에서 관심을 모은다.
네덜란드의 반아베미술관, 독일의 프랑크푸르트 현대미술관의 기획자들과 이번 전시를 공동 큐레이팅한 김선정 사무소 디렉터는 “작가의 내밀한 사적 공간에서 진행했던 작업이 전시장이라는 공적 공간에 들어와 어떻게 그 경계를 흔들고 변모되는지, 그 과정에 주목하며 감상하면 흥미로울 것”이라고 밝혔다.
이주요는 지난 2010년, 독특하면서도 파워풀한 작업을 하는 작가에게 양현재단(이사장 최은영)이 수여하는 ’제3회 양현미술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올들어 그 수상기념전을 네덜란드의 반 아베미술관에서 개최했고, 독일 프랑크푸르트 MMK 현대미술관에서도 이를 순회 전시한바 있다. 따라서 이번 서울 아트선재센터에서의 전시는 세계를 순회하며 열리는 전시의 완결편인 셈이다.
작가 이주요가 여러 도시에서 만나 함께 일해온 사람들과, 각 도시의 관람객들과 겪고 만들어낸 경험, 그 시간들을 아우르는 기록은 ‘이주요 나이트 스튜디오'라는 동명의 도큐멘테이션 자료로도 만들어져, 그간의 긴 여정과 경험을 아우르며 하나의 이야기를 완결짓고 있다. 전시는 1월 12일까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