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박스오피스는 한국영화들이 꾸준히 정상을 지키며 순위권을 장악해 할리우드 영화들이 힘을 못 쓰고 있다. 하지만 이런 영화들 속 아이들을 위한 한국영화의 수는 비교적 드문 것이 현실이다. 특히 부모와 자녀가 볼 수 있는 영화 역시 쉽게 찾아보기 어렵다.
이 가운데 첫 작품으로 가족과 함께 볼만한 영화를 연출한 감독이 등장했다. 아이들에게 한 아름 선물을 가져온 산타클로스 같은 영화 ‘히어로’의 김봉한 감독이다.
‘히어로’는 어린이 드라마 ‘썬더맨’의 종영으로 슬퍼하는 아들 규완(정윤석 분)을 위해 직접 썬더맨 역할을 맡아 촬영에 돌입하는 주연(오정세 분)의 이야기를 그렸다. 이를 통해 영화는 히어로물에 대한 남다른 애착을 드러낸다.
# ‘히어로’, 할리우드와 일본 애니에 대응하는 첫 걸음
김 감독은 ‘히어로’를 시작한 계기로 자신의 아들 이야기를 꺼냈다. 할리우드의 슈퍼히어로 영화에 열광하는 아들을 바라보며 한국에는 왜 이런 영화들이 없는가에 대한 마음 속 반응이었다.
“요새 아이들이 미국 마블 코믹스와 할리우드 영화 ‘어벤저스’의 캐릭터들에 빠져있어요. 제 아들도 약 20번 봤는데 대사도 외우더라고요. 그걸 보며 우리나라는 왜 그런 부분이 없을까 고민했죠. ‘히어로’는 약 5~6년 전부터 고민한 프로젝트였어요. 요즘 아이들에게 우리나라 히어로를 선물해주고 싶었죠. 특히 대형 완구점에 가면 전대물(악당에 맞서 지구를 구하는 팀의 이야기를 그린 장르로 일본에서 시작됐으며 ‘후뢰시맨’, ‘파워 레인저’ 등이 유명하다)도 전부 일본산이에요. 그런 점이 아쉬웠어요.”
김 감독은 이러한 현실에서 아버지와 아들 세대의 연결점을 찾았다. 아버지가 본 히어로와 아들이 보고 있는 히어로에서 이번 영화 역시 탄생할 수 있었다.
“아버지와 아들이 볼 수 있는 히어로 영화가 있었으면 했어요. 과거 전대물은 아버지가 봤다면 요즘 아이들은 할리우드산 슈퍼히어로 영화를 보죠. 이 중간 지점에서 완벽하지는 않지만 시작점을 가지고 싶었어요.”
특히 한국영화 시장에서 아이들이 주로 보는 장르로는 애니메이션을 꼽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역시 한국 애니메이션은 미국과 일본에 비해 부족한 형편이다.
“자녀와 함께 영화를 보는 게 드물어요. 그나마 애니메이션이 유일하죠. 엄마와 아이가 쇼핑몰에 가면 엄마는 쇼핑하고 아이는 영화 혹은 애니메이션을 보며 나눠져요. 애니메이션도 관객이 보통 100만 정도 들잖아요. 패턴 분석은 아니지만 일본 애니메이션 ‘명탐정 코난’ 등이 극장에서 개봉하면 상대적이지만 비율상 대박이에요. 그렇다고 제가 평생 이런 장르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나라도 괜찮다는 인식이 있으면 온가족이 볼 수 있는 영화들을 많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 ‘히어로’, 도전과 노력으로 빛난 탄생
김 감독은 이번 작업의 공을 모든 스태프들에게 돌렸다. 감독의 예술이라는 영화에 대한 그의 생각은 감독뿐만이 아닌 모든 스태프가 자신의 영화라고 생각하며 맡은 역할을 다한 협력 그 자체였다. 하지만 그 협력의 시작은 김 감독의 처절한 도전으로부터 비롯된다.
“제가 미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후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시나리오 작업을 했어요. 누군가에게는 유치할 수 있겠지만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진심을 담아 써내려갔어요.”
그는 시나리오가 나오고 진행된 프리프로덕션 1년 반의 시간을 힘든 시기로 꼽았다. 특히 디자인 작업에서 썬더맨을 만드는 과정은 그의 머리를 쥐어짜게 만들었다.
“디자이너에게 썬더맨 디자인의 주문을 독특한 것으로 했는데 쉽지 않았죠. 아이언맨 비슷한 게 나올 수도 있지만 요청 후 결과를 보고 나름 마음에 들었어요. 제일 고심한 의상의 재질은 배트맨 재질과 아이언맨 재질을 놓고 고민하던 끝에 잠수복 재질로 결정했죠. 프롤로그에 나오는 썬더맨의 메탈 슈트는 CG로 처리했어요. 아이언맨 같이 서있는 것, 움직이는 것 등을 따로 제작하는 비용이 저희 영화 제작비더라고요.”
‘히어로’를 위한 노력은 이것뿐만이 아니다. 제주도 로케이션은 28일간의 촬영으로 27회차를 찍었다. 제작비와 시간을 위해 비행기 왕복 티켓을 미리 끊었기 때문이다. 또 신지수를 비롯한 배우들은 당시 제주도의 매서운 추위에 대해 토로한 바 있다.
“제주도에서 촬영한 지대가 해발 500~600m라서 엄청 추웠어요. 특히 신지수 씨는 바닷가에서 찍는데 춥고 화장실도 못가서 힘들었을 거예요. 돌봐주지 못해줘서 미안했죠. 제작비 때문에 배우들을 위한 부분을 많이 신경 쓰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드네요. 촬영장에서 주먹밥, 김밥으로 때웠죠. 또 촬영장소인 병원 수술실은 하루 빌리면 촬영 뒤 24시간을 소독해야했는데 결국 그 병원은 이틀간 수술실을 쓸 수 없었죠. 원장님께 감사드린다고 전하고 싶네요.”
# ‘히어로’, 무엇을 보여주려 했을까
영화에서 썬더맨은 배우 오정세가 직접 입는 타이즈 의상의 모습과 아이언맨을 연상시키는 메탈 슈트 차림의 모습으로 나뉜다.
히어로에 대한 감독의 접근은 아빠 주원의 어린이 드라마 촬영을 통한 영웅 행세와 아들 규완의 환상 속 히어로가 충돌해 서로 다른 입장을 대변한다.
“극중 죽음을 앞둔 아이의 눈에서 보는 3D 메탈 슈트의 썬더맨은 살겠다는 희망이고, 악당은 그 아이의 암덩어리일수도 있어요. 복잡하게 이야기하기 싫었어요. 극중 ‘마지막 잎새’ 이야기를 뻔하다고 하겠지만 돌려 이야기하기 싫었던 거죠.”
특히 영화는 히어로라는 접점을 통해 아들과 아버지, 혹은 가족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일본배우 겸 감독 기타노 다케시가 그랬어요. 가족이란 누가 안쳐다보면 버리고 싶은 사람들이라고요. 오래 살다보니 그럴 때가 있지만 버리지는 못하죠. 아빠들은 아이들이 휴대폰으로 ‘아빠 힘내세요’라고 하지만 미치도록 힘든 경우가 있다고 해요. 일에 치여 한 시간 자고 출근하는 가장의 모습에 바로 초능력이 있는 거죠.”
김 감독은 이 영화의 원형으로 흔히 비교하는 ‘솔드아웃’ 같은 영화가 아닌 그가 가장 좋아하는 감독인 팀 버튼의 ‘빅 피쉬’를 언급했다. 그는 영화에서 다뤄진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간직되는 의미 있는 거짓말을 자신의 영화를 통해 꿈꾼 것이다.
“‘히어로’를 보고 난 아들이 아버지를 쳐다보며 ‘내가 아프면 아빠도 영화처럼 할 거냐’라고 물으면 아버지는 ‘나는 그것보다 더 한다’고 말하는 모습들을 봤으면 좋겠어요.”
이렇게 아들과 아버지의 사연을 통해 영화 속 행복을 전하려는 김봉한 감독. 그는 아들에게 아이언맨 장난감을 사주고도 할리우드 캐릭터가 거실을 차지하는 게 기분이 나빠 한국형 슈퍼히어로를 만들었다. 그는 말 그대로 우리 아이들과 가족에게 선물을 전하며 한국영화의 작지만 새로운 한 걸음을 시작했다.
“산타클로스가 있다 없다 이야기하면서 산타는 안 올 거라고 하지만 양말은 걸어 놓잖아요. 이런 마음은 나이가 들어가면서도 존재하거든요. 앞으로 이런 마음들이 더 좋아지지 않을까 해요. 예전에는 세상을 바꿀 거라고 했지만 이제 5분만이라도 돌이켜보게 하고 싶습니다.”
양지원 이슈팀기자 /jwon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