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 사퇴종용설… “때가 아니다”거부의사 檢 두번째 압수수색 후 결국 백기투항 공기업·금융권 등 ‘MB맨 정리’ 본격화 일부선 ‘정권교체=사퇴압박’ 고질병 우려

12월 정기인사 앞둔 기업들도 노심초사 ‘현정부 네트워크 인물’ 급부상여부 관심

이석채 KT 회장이 결국 낙마하면서 정권교체에 따른 최고경영자(CEO) 리스크가 다시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일단 지분이 없는 민간기업에 정부의 입김이 작용하는 것은 임기제의 취지를 훼손한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KT와 금융권 등 공기업 성격이 강한 곳은 정권 코드와 어울리는 인물로 교체하는 게 당연한 것이라는 시각도 만만찮아 찬반양론이 팽팽하다.

주목되는 것은 이 회장 낙마를 계기로 재계 쪽에서도 12월 정기인사에 영향을 줄 것이 불가피해 보인다는 점이다. 이미 대관 업무 등에 현 정부와 우호적인 인물로 포진시킨 바 있는 재계는 정기인사에서 한층 ‘박근혜 인물’을 탐색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엇갈리는 시각=이 회장의 사퇴는 검찰의 압수 수색과 관련이 커 보인다. 이 회장은 지난달 초부터 청와대로부터 사퇴를 종용받았다는 소문이 돌면서 거취 논란에 휩싸였다. 당시만 해도 “아직은 때가 아니다”며 사임 거부 의사를 명확히 했지만, 검찰의 두 번째 압수 수색 후 더는 버틸 수가 없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참여연대가 고발한 배임 혐의는 검찰 수사에서 밝혀질 일이지만 이에 따라 박근혜정부의 사퇴 압박과 무관치 않다는 시각이 제기돼온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이 회장 사퇴는 현 정부 우호 인물로의 교체를 위한 시발탄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정준양 포스코 회장의 운신이 다시 주목되면서 일부 민간기업, 공기업, 금융권 등의 ‘MB맨 솎아내기’가 본격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재계 10대그룹 임원은 “이명박정부에서 임명된 이 회장에 대해 청와대가 곱지 않은 시선을 갖고 있다는 얘기는 꾸준히 돌았다”며 “ ‘낙하산 임명→정권교체→사퇴 압력’이라는 고질적인 병과 이 회장 사퇴가 관련이 없지 않아 보인다는 점에서 뒷맛이 개운치 않은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이 회장의 사퇴와 관련한 시각은 엇갈린다.

조택 이화여대 행정학과 교수는 “정권교체에 따른 기관장 등의 대대적인 교체의 타당성에 대해서는 찬반양론이 엇갈리고 있다”며 “다만 그 타당성 여부를 떠나 법률에서 기관장 등의 임기를 보장하고 있음에도 실제로는 이를 지키지 않고 법률을 침해하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정부의 한 고위 관료는 “바뀐 정권의 국정철학에 맞는 인물로 교체되는 게 옳다”며 “다만 검찰 수사와 같이 반강제적으로 쫓아내는 듯한 일이 반복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고 했다. 다른 관료는 “법적으로 임기가 보장된 검찰총장도 정권이 바뀌면 이런저런 사유로 교체되는데, 정부 산하 공기업은 물론 공공 성격이 강한 기업들의 수장에 대한 교체 압력은 엄청날 수밖에 없고, 본인이 알아서 물러나 주는 게 순리이고 사회적 비용을 절약하는 길”이라고 했다.

정용덕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집권한 정부가 추동력을 받기 위해 뜻을 같이하는 동지들을 주요 직위에 포진시키는 미국의 전통과, 행정과 정치를 분리해 전문가가 정치와 거리를 두고 행정을 맡아야 한다는 프랑스, 독일의 전통은 각각 장단점이 있고 이론적인 기반도 있어 무엇이 옳고 그르다고 말하기는 어렵다”며 “방식의 문제보다는 정권 5년 내에서 어떻게 하면 많은 업적을 낼 수 있을지를 보고 판단하는 것이 가장 적절한 것 같다”고 했다.

▶인사 시즌, 눈치 볼 수밖에 없는 기업들=KT발(發) CEO 교체는 재계 전체적으로 행간이 간단치 않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청와대 ‘사인’이 바탕에 깔린 만큼 올해 12월 정기인사에 이 흐름을 반영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재계로서도 노심초사하게 된 셈이다.

일부 기업은 올해 초 박근혜정부 출범에 대비해 이미 현 정부와 우호적인 인물을 스크린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중간중간에 대관 업무 등에 현 정부와 네트워크를 갖춘 인물을 중용한 곳도 상당수다.

이에 이 같은 흐름이 12월 인사에서 눈에 띄게 반영될 게 분명하다는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경제민주화다, 뭐다 해서 기업을 옥죄는 분위기인데 정부에서 전(前) 정부 인물을 물갈이하는 분위기가 본격화되는 이상, 인사 때 그것을 무시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라며 “전 정부 색깔이 조금 있다 싶은 인물은 손해를 보고, 현 정부와 네트워크가 강한 인물이 약진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고 했다.

결국 위기 극복 인사, 성과주의 발탁 인사, 사업 조정에 따른 선택형 인사 등이 주요 화두가 될 것이 분명한 삼성과 현대차그룹을 비롯한 재계 인사의 올해 코드 중 하나가 ‘현 정부 네트워크 인물’ 중용 인사에 어느 정도 반영될지 주목된다.

김영상ㆍ하남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