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 자산운용 등 매각, 3조3000억 고강도 자구계획 발표… ‘희망찬 미래’ 열릴지 귀추 주목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입이 무거운 사람이다. 그 무게는 침묵 뒤에 이어지는 행동에 그대로 실린다. 위기의 순간, 그 무게 있는 결단이 힘을 발휘한다. 남편인 고 정몽헌 회장의 뒤를 이어 지난 10년간 현대그룹을 이끌며 숱한 위기를 마주할 때 보여줬던 현 회장의 일관된 모습이다. 현 회장이 또 한 번 결단을 내렸다. 그동안 유동성 위기에 몰린 현대그룹을 두고 업계 안팎의 ‘설왕설래’에도 침묵을 지키던 현 회장이 고심 끝에 세간의 예상을 뛰어넘는 자구계획안을 발표했다.

핵심은 금융업 철수다. 현대증권을 포함한 금융계열 3개사를 팔기로 한 것이다. 현대증권은 현대그룹에는 큰 의미가 있는 회사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1977년 국일증권을 인수하면서 현대그룹 금융 사업의 주춧돌이 됐고, 고 정몽헌 회장이 2000년 ‘왕자의 난’에서 승리했을 당시 현대증권은 현대건설과 함께 경영 기반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핵심 계열사의 역할을 넘어 지금의 현대그룹이 옛 현대그룹의 명맥을 이어받는 ‘정통(正統)’임을 보여주는 상징인 셈이다. 현 회장에게는 사실 카드가 많지 않았다. 칼자루를 쥐고 있는 금융권에서 일찍부터 현대증권을 핵심으로 하는 ‘주력 계열사 매각’을 요구해왔다. 결국 현 회장은 정통을 포기하고 미래에 힘을 싣는 결단을 내렸다. ‘통탄의 결단’이다.

현대그룹은 이번 자구안으로 3조3000억원 규모의 유동성을 확보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1조3000억원 규모의 부채를 상환해 주요 계열사의 기준 부채비율을 현재 493%에서 200% 후반대로 낮출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현정은(기업인/현대그룹회장)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입이 무거운 사람이다. 그 무게는 침묵 뒤에 이어지는 행동에 그대로 실린다.
현정은(기업인/현대그룹회장)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입이 무거운 사람이다. 그 무게는 침묵 뒤에 이어지는 행동에 그대로 실린다.

전환점을 맞은 현대그룹의 앞날은 ‘해운’과 ‘대북 사업’으로 점철된다. 현대상선이 그룹을 이끄는 핵심 동력으로 자리를 견고히 하고 대북 사업을 담당하는 현대아산이 현대그룹의 정통과 명맥을 잇는 역할을 한다.

물론 우려도 있다. 해운 시황이 점차 살아나고 있기는 하지만 조선업에 비해 회복세가 더딘 것이 사실이다. 본격적인 업황 회복은 2015년 정도로 업계는 전망하고 있다.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 남북관계도 대북 사업의 전망을 어둡게 한다.

현 회장의 지난 10년은 녹록지 않았다. 현대상선 경영권 분쟁, 현대건설 인수전 등 범(汎)현대가와 잇달아 분쟁을 겪어왔다.

그룹의 회생을 위해 내린 현 회장의 결단이 지난 10년을 뒤로하고 새로운 10년을 기약하는 현대그룹에 희망찬 미래를 열어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박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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