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ㆍ일자리 창출로 사회 기여하는 ‘기업가정신’ 추구”
“20202년 매출 2조원 비전…1000억미만 M&A 항시 추진”
[헤럴드경제=조문술 기자]1992년 늦더위가 채 가시지 않은 9월 하순 서울의 한 암자. 번뇌에 가득찬 얼굴을 한 서른네살의 청년은 부처님 앞에서 일천배를 시작했다. 늦은 오후 시작된 절은 저녁을 넘기고 새벽이 찾아올 무렵에야 겨우 끝이 났다. 땀으로 범벅이 돼 헝클어질대로 헝클어진 겉모습과 달리 복잡하던 머릿속은 하얗게 비어서 정돈돼 있었다. 그 순간 청년에게 떠오르는 것은 딱 한가지 ‘가장 잘 아는 것을 해야지!’였다.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해야 한다. 한 두 번의 실패로 좌절하고 포기한다면 앞으로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청년 이영규는 새로운 출발을 다짐했다.
1992년 5월 27일 웰크론의 전신인 주식회사 은성이 서울 강남구 포이동에서 첫발을 내디뎠다. 2평 남짓한 공간에서 후배 2명과 함께 첫 업무를 시작했다.
저축해뒀던 돈 2000만원과 융자받은 돈 3000만원을 합쳐서 법인 설립시 필요한 5000만원을 확보했다. 처음 시작한 사업이 순탄할리 만무했다. 매출부진과 거래업체의 부도로 사업 시작 4개월만에 사업자금은 바닥이 났다.
이 대표는 대학 졸업 후 1985년 당시로선 선망의 직장이던 동양나이론(현 효성)에 입사, 2년을 근무했다. 울산 부근의 언양공장에 배치받아 일했는데, 그 무렵 동양나이론은 극세사(마이크로화이버)를 막 개발해 생산에 적용시키는 단계에 있었다. 여기서 그가 맡은 일이 극세사 가공업무였고, 이렇게 극세사와 이 대표의 인연은 시작됐다.
웰크론을 기반으로 성장한 이 대표는 2007년 고흡수성 부직포를 적용할 위생용품업체를 물색하던 중 현재의 웰크론헬스케어(구 예지미인)를 인수했다. 급성장하는 첨단 소재사업의 확대를 위해 2010년에는 산업용플랜트 전문기업 웰크론한텍(구 한텍엔지니어링)과 산업용보일러 전문기업 웰크론강원(구 강원비앤이)을 시차를 두고 사들였다.
4개 계열사를 둔 기업집단의 회장이 된 이영규 대표는 “현재 계열ㆍ관계사와 다양한 시너지효과를 낼 수 있는 제조업체이면 언제든지 인수합병(M&A)에 나설 수 있다”는 입장이다. 2022년 매출 2조원, 이익 2000억원, 시가총액 2조원 달성이라는 ‘비전 2022 222’도 극세사 한올에서 시작된 셈이다.
-왜 창업을 결심했나
▶대학(한양대 섬유공학) 졸업 후 동양나이론에 입사해 울산 부근의 언양공장에서 첫 근무를 시작했다. 그무렵 동양나일론은 극세사를 막 개발해 생산에 적용시키는 단계에 있었다. 여기서 그가 맡은 일이 극세사 가공업무였고, 이렇게 극세사와 인연이 시작됐다. 하지만 첫 직장생활도 녹록치만은 않았다. 가족과 떨어져 먼 타지에서 열심히 근무했지만, 공대 출신은 아무리 열심히 해도 현장근무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던 게 당시 사회분위기였다. 게다가 연공서열 위주의 인사정책 때문에 열심히 일을 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간의 차이가 별로 없었다. 자기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는 생각에 결국 2년 만에 회사를 그만뒀다.
퇴직 후 별달리 갈 곳이 없어 약진통상이라는 중소 의류수출업체에 들어갔다. 당시 대기업 초봉이 33만원이던 시절, 중소기업 초봉인 28만원을 받고 근무를 시작했다. ‘앞으로 내가 한 회사의 대표가 돼 회사를 제대로 경영하기 위해서는 직장생활 할 때부터 정직하게 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일했다. 부정부패가 없는 투명한 거래만이 원가절감으로 연결되고, 차후에는 경쟁력도 생겨 더 많은 오더를 수주할 수 있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약진통상에서 4년간 근무하며 경영을 공부했고 마침내 웰크론그룹의 전신인 ‘은성코퍼레이션’을 설립하게 됐다.
-어린시절은 어땠나.
▶선친이 비누공장을 한 덕분에 비교적 유복한 어린시절을 보냈다. 한데 5남매 중의 셋째 아들이어서 자립심이 강한 편이었다. 그런데 사춘기시절에 접어들면서 어음부도로 인해 집안은 풍비박산 나고 말았다. 사업가로서 성공해 집안을 일으켜야겠다고 결심하게 됐다. 사업 구상은 대학(한양대 섬유공학과)에 들어가면서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제조업체를 설립해 제대로 운영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더욱 강해졌다. 일단 직장 생활을 통해 사회를 경험한 후 창업을 하기로 마음을 먹고 취업의 길에 들어섰다. 그래서 결과론적이긴 하지만 직장생활을 길게 한다는 생각은 애초에도 갖지 않았었다.
-극세사는 당시로선 크게 사업이 안되는 분야였는데
▶모든 게 가능성에서 출발한다. 남들이 하지 않던 비의류용 극세사의 가능성은 일본에서 발견했다. 1992년 9월 사업이 실패를 거듭하고 방황하던 때 문득 일본 출장에서 봤던 극세사가 떠올랐다. 우리나라에서는 안경을 사면 무료로 나눠주던 안경닦이를 돈을 주고 사는 모습이 놀라웠다. 그 안경닦이 원단이 바로 극세사였다.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극세사가 인조가죽(샤무드)나 블라우스 등 의류에 한해 이용되고 있었을 뿐이다. 때마침 독일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친구가 샤무드를 독일로 수출할 수 있느고 문의해왔다. 도착한 샘플을 보니 일본 전시회에서 봤던 안경닦이 원단과 비슷했다. 그동안 은성에서 취급했던 원단에서 기모공정은 그대로 하고 후가공만 바꿨다. 뭔가 큰 사업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사업은 어떻게 펼쳤나
▶국내 보다는 해외시장에 먼저 도전했다. 독일로부터 주문받은 원단을 제대로 만들어 내기 위해서 하루를 48시간처럼 보냈다. 두달 넘게 동서남북으로 종횡무진하며 샘플을 만들어 독일로 보냈고, 다행히 결과는 ‘OK’였다. 그렇게 유럽시장에서 가능성을 찾았다. 당시 유럽바이어들이 ‘면으로 된 청소용품을 극세사로 만들어 달라’는 요청을 많이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극세사 분야에서 만큼은 누구보다 자신 있었다. 6개월간 청소용 극세사 편직 및 염색, 가공을 연구한 후 결국 극세사클리너를 완성했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만들어진 은성의 극세사 클리너 ‘T-101’은 네덜란드를 거쳐 스웨덴으로, 다시 핀란드로 주문이 확대됐다.
-해외에서 성공해 국내에서도 1위가 됐는데, 일반적인 기업들과 꺼꾸로다. 어렵지 않았나.
▶세계시장 진출에 성공한 은성의 매출은 해가 거듭될수록 상승세를 더해갔다. 극세사 클리너분야 세계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하고, 한국에서도 ‘세계일류상품’으로 선정되는 등 ‘제일 잘하는 것’에 대한 충분한 인정을 받았다. 그무렵 유럽시장을 중심으로 해외 제조자개발생산(ODM) 오더만 진행하다 해외에서 성공을 바탕으로 국내 시장에서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2003년 코스닥시장에 입성한 은성은 2007년 ‘웰크론’으로 사명을 변경하고 새로운 도약을 시작했다. 극세사 클리너에서 시작한 생활용품은 목욕용품, 침구, 인테리어 소품 등으로 제품군을 확대하며 ‘세사(SESA)’라는 브랜드를 가지고 2001년 백화점 입점에도 성공했다. 이후 2011년에는 대리점브랜드 ‘세사리빙(SESA Living)’을 출범, 2013년 현재 전국 170여개 매장을 보유하며 ‘극세사로 만든 프리미엄 알러지방지 침구’에 대한 인식을 높였다. 수출 중심의 기업이었던 웰크론은 현재 수출과 내수의 비중을 50대 50까지 끌어 올리며 국내 시장에서 브랜드 인지도를 확보해 나가고 있다.
-2000년대 사업이 안착하면서 인수합병(M&A)도 많았다
▶현재보다 앞으로의 10년, 20년, 30년이 더 중요하다. 기업이 100년, 200년 장수하려면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웰크론이 보유하고 있는 섬유기술을 적용할 수 있는 새로운 분야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2007년 흡수력이 좋은 고흡수성 부직포를 적용할 위생용품업체를 물색하던 중 현재의 웰크론헬스케어를 인수하게 됐다. 현재 예지미인은 여성용품 이외에 유아용ㆍ성인용 기저귀, 물티슈, 화장품까지 생산 제품이 확대되고 있다. 또 급성장하는 소재사업를 확대하는 방법을 찾던 차에 플랜트기업 웰크론한텍을 2010년 1월 인수했다. 웰크론한텍은 대형 EPC(설계, 조달, 시공)사가 진입하기 힘든 중소형 담수플랜트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입하고, 최근에는 웰크론이 개발하고 있는 멤브레인필터를 활용한 역삼투압 담수플랜트 분야를 개척해 나가고 있다. 웰크론과 웰크론한텍은 융합경영을 통해 멤브레인필터와 담수플랜트를 함께 수출할 수 있다. 같은 해 산업용보일러 업체 웰크론강원도 그래서 인수했다. 산업용 스팀을 생산하는 웰크론강원과, 발생한 스팀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는 웰크론한텍간의 시너지를 고려한 결과다. 현재 가족사가 된 3개사 모두 매출 호조를 보이고 있다. 특히 웰크론강원과 웰크론한텍은 인수 전보다 3배 가량의 매출 신장을 기록하기도 했다.
-M&A 이후 이질적인 계열사 임직원들을 하나로 만들기가 쉽지 않다
▶ 서로 다른 사업성격을 가진 기업들을 하나로 만드는 것이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웰크론, 웰크론강원, 웰크론한텍, 웰크론헬스케어가 웰크론그룹이라는 이름 아래 모인지 3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화학적 결합이 숙제로 남아 있는 게 사실이다. 이 때문에 계열사간 화합을 위해 수시로 직원들이 마주할 자리를 마련하고 있다. 봄에는 4개사 직원들이 한 자리에 모여 대규모 체육대회를 진행하고, 여름에는 30km 코스의 야간행군을 실시한다. 올해로 9회째 진행되는 이 행사는 이미 웰크론 본사가 위치한 서울 구로구에서는 명물로 자리잡고 있다. 또한 가을에는 10km 마라톤과 6시간 코스의 산행을 실시하는 등 직원들의 화합과 극기정신을 함양하고 있다. 직원들간의 커뮤니케이션도 중요하다. 그래서 분기별로 전직원이 함께하는 워크숍을 진행하고, 가족사보를 발행해 전직원의 자택으로 발송한다. 규모가 커져가면서 사업영역이 넓어진 회사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가족의 응원을 바란다는 의미에서다. 또 최근에는 ‘직원과 마주보기’도 시작했다. 매월 각 사 월례조회에서 ‘도서강연’을 하는 시간이 바로 그것이다. 4개사 직원들에게 혁신적인 마인드를 심어주기 위해 매월 1권씩 필독도서를 선정, 직접 강연에 나선다. 지금까지 이 회장은 ‘1등에는 신념이 있다’, ‘승자의 안목’, ‘창조력 주식회사’, ‘제대로 시켜라’ 등의 독서강연을 진행했다.
-이제 브랜드가 생겼으니 그 브랜드를 세계화해야 하지 않나
▶고급 소재로 만들어진 알러지방지 침구가 중국 진출 기회를 잡았다. 웰크론은 최근 세사리빙 브랜드 해외 1호점인 중국 칭다오에 ‘청양점’을 열었다. 현재 중국은 소비수준 향상과 베이비붐에 힘입어 고급 제품에 대한 수요가 넘친다. 세사리빙의 주력상품인 알러지방지 침구는 머리카락 100분의 1(1㎛) 굵기의 고밀도 극세사를 촘촘하게 직조해 알러지 발생의 원인으로 알려진 집먼지진드기의 서식 및 이동을 차단했다. 칭다오는 지리적으로도 바닷가에 인접에 있고, 대기 중에 먼지가 많기 때문에 ‘흡수성이 좋고 먼지가 나지 않는 침구’로 차별화를 추구하는 세사리빙의 컨셉트가 주효할 것으로 예상했다. 청양점은 개점 첫날부터 현지인 고객들의 방문이 줄을 이었다는 보고를 받았다. 중국인 고객들은 “중국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디자인으로, 색감이 아름답고 품질이 뛰어나다”고 평가한다더라. 중국 시장을 시작으로 중국 각지에 세사리빙 브랜드를 전파한 후 다른 나라로 나갈 것이다.
-향후에도 M&A는 계속되나
▶일각에서는 무분별한 사세 확장이라는 우려의 시선도 있지만 M&A에 대한 나름의 원칙이 있다. 첫째, 웰크론그룹의 다른 계열사들과 사업적 연관이 있어야 한다. 제조업을 기반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 그 두번째다. 발전 가능성이 있는 좋은 제조기업이라면 언제든 M&A를 검토할 수 있다. 실제 그런 제의도 가끔 들어오고 있다.
-웰크론의 비전은
▶2022년 매출 2조원, 이익 2000억원, 시가총액 2조원 달성이라는 ‘비전 2022 222’을 지난해 5월 임직원들 앞에서 발표했다. 이는100년, 200년 장수하는 기업을 만들기 위한 단기적인 목표다. 새로운 가치를 고객에게 제공하고 일자리 창출로 사회에 기여하는 게 ‘기업가정신’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목표 지속 추구하겠다.
조문술 기자/
freiheit@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