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올해 국내 극장가와 대중문화의 유행을 꿰뚫는 열쇠말 중 하나는 ‘아버지’였다. 올 초 극장에서 바람을 불러일으켰던 뮤지컬영화 ‘레미제라블’과 ‘7번방의 선물’은 형식도 이야기도 국적도 달랐지만, 기묘하게도 ‘세상으로부터 오해받는 억울한 아빠의 자식(딸)을 위한 희생담’이라는 점에선 완벽하게 닮은꼴이었다. ‘설국열차’도 그 중심에는 아버지와 자식의 이야기를 품고 있었다. 가상의 인물인 ‘관상쟁이’를 등장시켜 세조반정의 조선사 한 장을 불러낸 ‘관상’도 결국은 아들을 위한 아버지의 분투극이었다. ‘더 테러 라이브’의 사건은 우리나라의 경제개발 과정에서 희생당한 아버지 세대의 비극으로부터 비롯됐다. 최근 흥행작인 이준익 감독의 ‘소원’은 성폭행을 당한 아동과 그 가족의 치유기를 담았는데, 흉포한 세상으로부터 자식을 지켜주지 못한 아버지의 회한이 짙게 드리워 있었다.
그렇다면 과연 ‘아빠’는 누구인가? ‘아빠가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한국영화는 대개 아버지를 역사적 실존이나 상징, 사회적 맥락 속에서 불러낸 경우가 많았다. 이와 다르게 일본의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사진>는 좀 더 본질적으로 ‘아빠’라는 존재에 대해서 성찰하게 하는, 극적으로도 매우 흥미진진한 작품이다. ‘만약 아버지인 당신이 수년간 애지중지 키워왔던 자식이, 알고 보니 신생아실에서 뒤바뀐 다른 집의 아이였다면 어쩌겠는가?’
아마도 ‘고급 사립’쯤 될 듯한 한 초등학교에서 신입생 선발을 위해 실시하는 ‘학부모 학생 면접’ 장면이 영화의 첫 시작이다. 첫 보기에도 부유하고 부족함 없어 보이는 가장 료타(후쿠야마 마사하루 분)와 아내, 그리고 6살배기 소년 케이타가 그 주인공이다. 료타는 대기업의 간부로 성공한 샐러리맨이며 아들이 늘 ‘최고’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엄격한 아버지이기도 하다. 그런데 어느날 병원으로부터 6년간 키운 아들이 친자가 아니며 출생 직후 산부인과에서 다른 아이와 뒤바뀌었다는 연락을 받는다. 그는 병원의 주선으로 친자 류세이와 그를 키워온 상대 부모도 만나게 된다. 중상류층의 생활을 하고, 아들에겐 고급 교육을 시켰던 료타와 달리, 상대 부모는 지방의 소도시에서 조그만 전파상을 운영하는 서민이었다. 료타와 마찬가지로 아들이 뒤바뀌었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류세이를 키워온 유다이(릴리 프랭키 분)는 소박하고 자유분방하면서, 어딘가 모자라고 주책맞아 보이는 인물. 하지만 류세이는 아이들과 함께 뒹굴며 노는 친구같은 아빠였다.
“서로 아이들이 바꿔 키운 경우 대개는 혈연을 선택한다”는 병원의 말. 두 집 부모는 일단 서로 만나고 상대 아이(친자)와 함께 보내는 시간을 늘린다. 그리고 점점 결단의 시간이 다가온다.
실제로 베이비붐이었던 1960년대 일본에선 갓난아이가 착오로 바뀌는 경우가 심심치 않았고, 이로부터 영화의 원작소설과 감독의 기획이 영감을 얻었다는 사실이 재미있다. 고레에다는 “아버지와 아들을 잇는 것이 핏줄인가, 함께 보낸 시간인가 라는 질문이 영화의 출발이었다”고 말했다. 일본 최고의 스타배우인 후쿠야마 마사하루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고 점차 변해가는 ‘아빠’의 심리를 빼어나게 연기했다. 호들갑스럽지 않고 차분한 어조로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가는 감독의 연출력은 이 작품을 칸영화제 심사위원상에 올려 놓았다. 아빠를 두었거나, 아빠가 됐거나, 아빠가 될 모든 자식을 위한 영화다. 19일 개봉, 전체관람가.
이형석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