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남자가 사랑할 때’황정민이 삶을 사랑하는 법

사랑 이야기·연기할때가 가장 행복 멜로는 무조건 OK 단번에 출연 결정 눈물 많아진 나이…묘한 떨림 느껴져

1년째 클라리넷 배우며 쇼팽곡 연주 교향악단 입단 꿈 ‘언젠간 되지않겠나’ 삶도, 사랑도…멋있고 근사하게

시상식 턱시도가 아닌 연주복을 입고 오케스트라 단원과 섞여 무대에 선 황정민, 영화가 아니라 실제라면 더 근사할 것이 틀림없다. 그런데 왜 클라리넷일까. “그냥, 좋으니까, 멋있으니까.” 무릇 삶도, 사랑도 그런 것이 아닐까. 40대에 꿈꾸는 ‘클라리네티스트’. 황정민이 삶을 사랑하는 법이다.

“사랑얘기하고 멜로연기할 때가 제일 재미있어요. 사실 제일 어렵기도 하지요. 요새 TV 예능프로그램처럼 스크린에 자막이라도 있었으면 훨씬 쉬울까요? ‘한눈에 반했음’ ‘절절하게 사랑하고 있음’ 뭐 이렇게 말이죠. 제가 워낙 멜로를 좋아해서 의무감 같은 것이 생겼어요. ‘신세계’ 때 만난 영화제작자에게 ‘멜로 한번 해보자. 멜로라면 무조건 출연한다’고 노래를 불렀어요. 그렇게 이번 영화가 이뤄졌습니다.”

‘남자가 사랑할 때’에서 황정민이 맡은 태일도 ‘그냥’ 한 여자에게 빠져든다. 사채업체 부장으로 빚 받는 일이 직업인 남자. 상대가 어떻든 주먹과 협박을 동원해 막무가내로 돈은 받아내고 마는 불량배지만, 스스로는 마흔이 되도록 형 집에 얹혀사는 한심한 인생이다.

그가 병원에 있는 중환자에게 돈을 받으러 갔다가 아버지를 간호하는 호정(한혜진 분)을 보고 첫눈에 반한다. 불쑥 병원을 찾아 먹을 것을 건네고, 채무각서 대신 자신과의 ‘데이트’ 약속으로 빚을 탕감해가는 등 누가 보기에도 어이없는 서툰 구애를 계속해 간다. 태일을 매몰차게 거부했던 호정은 차츰 상대의 황당한 행동 속에 깃든 진심을 받아들여간다.

영화배우 황정민 . 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영화배우 황정민 . 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영화배우 황정민 . 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영화배우 황정민 . 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너는 내운명’과 ‘행복’ ‘신세계’에서 황정민이 연기했던 남자들 사이의 그 어디쯤에서, 황정민은 한결 성숙하고 기름기는 빠졌지만 여운은 더욱 짙어진 ‘남자의 순정’을 보여준다.

“ ‘괜찮겠니? 마흔 넷에 멜로 하는데 아이돌이다 20대다 하는 젊은 유행 앞에서 괜찮겠어?’ 자문도 했지만 저도 솔직히 궁금했어요. 사십이 넘어서 멜로를 만나면 내 표정이 어떻게 스크린에 담길까 말이죠. 완성된 영화 보고 나니 ‘아, 괜찮네. 꽤 깊은 맛이 있네’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30대 때는 갖지 못하고 보지 못했던 미묘한 공기와 떨림이 느껴지더군요. 잘 나가는 형님배우들도 멜로 많이 했으면 좋겠어요.”

마흔도 중반에 이른 황정민은 눈물이 많아졌고, 개구쟁이 아홉살 아들과 장난치는 것이 마냥 좋고, 어느덧 덜어놓고 내려놓는 지혜도 생겼다.

“어떤 날은 아들 생각하고 집사람 얼굴만 봐도 눈물이 나요. TV에서 다큐멘터리나 오디션 프로그램을 볼 때도 그렇고. 이번 영화에선 아버지 역의 남일우 선생님 다리를 주물러드리는 장면이 있는데, 대사에도 있지만 다리가 너무 가느시더군요. 아버지 생각도 나고 주체못할 정도로 펑펑 울음이 쏟아졌어요. 오버액션으로 보일까봐 몇 번을 다시 찍었죠.”

황정민은 매번 새로운 촬영을 시작할 때 후배 스태프에게 “이 작품은 내 인생의 처음이자 마지막인 영화”라며 “지금 우리가 만나서 한 작품을 찍는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인연이냐, 너무 치열해도 이해해달라”고 말한다. 그 치열함에 황정민은 ‘스스로를 옥죄고 앞으로만 달리기보다 스스로 즐기는 법’을 더했다. 그의 차기작은 ‘국제시장’과 ‘베테랑’이다.

이형석 기자/suk@heraldcorp.com

사진=박해묵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