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이혜미 기자] 하루가 멀다하고 들려오는 ‘갑’들의 횡포가 눈살을 찌푸리게 합니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회항’ 사건부터 백화점 ‘갑질 모녀’ 논란, 유명 패션 디자이너의 ‘열정 페이’(열정을 빌미로 한 저임금 노동) 논란까지. 자신의 권력을 무기로 약자를 짓밟고 착취하는 행태는 당사자들은 물론, 전 국민의 공분을 샀습니다. 정작 ‘갑’들은 자신들을 향한 비난의 이유를 온전히 이해하고 있을 지 의구심이 듭니다. 영화 ‘존 윅’에서 평범하게 살아가려던 한 남자가 ‘강아지 한 마리’ 때문에 복수의 화신으로 돌변한 것을 언뜻 이해하기 어려운 것처럼 말이죠. 이 복수극의 발단도 누군가에겐 지극히 ‘사소한 일’일 뿐입니다.

한 때 최고의 킬러였던 존 윅(키아누 리브스 분)은 아내 헬렌을 만나 새 삶을 시작합니다. 하지만 아내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그는 실의에 빠집니다. 그러던 중 아내가 죽기 전 자신에게 남긴 비글 강아지 한 마리를 건네 받은 뒤 다시 생의 의지를 되살립니다.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존의 69년형 머스탱에 눈독을 들이던 요제프 일당이 존의 집에 들이닥치고, 이들은 차량을 탈취하는 과정에서 강아지까지 잔인하게 죽입니다. 엄청난 재력의 마피아 보스 아들인 요제프는 이번에도 아버지의 ‘백’을 믿고 사고를 친 거죠. 분노한 존 윅은 땅 깊숙히 묻어뒀던 살인 병기들을 꺼내 요제프 일당을 향한 전면전에 돌입합니다.

사실 ‘존 윅’이라는 영화는 뼛 속까지 액션물입니다. 러닝타임 대부분을 박진감 넘치는 총격전과 피와 살점이 튀는 복수극으로 채워넣었죠. 그럼에도 화려한 액션 뒤, 존 윅의 분노가 한 순간 폭발한 계기에 눈길이 갑니다.

누군가는 ‘그깟 강아지 한 마리 때문에 목숨을 건 복수극을 벌이는 게 말이 되느냐’고 물을 지 모릅니다. 하지만 존에게 그 강아지는 단순한 애완견 이상의 의미였습니다. 삶의 의지를 잃었던 그에게 아내가 남긴 강아지는 살아야 할 한 가닥 희망이었죠. 그것을 뺏긴 순간, 삶을 이어가야 할 이유도 사라진 것입니다. 극 중 존은 동료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누군가는 강아지 한 마리 때문에 이런 일을 벌이냐고 할 지 모르지만, 그 강아지는 아내가 내게 남긴 마지막 선물이었어.”

돈이면 다 해결될 것이라 생각했던 요제프는 존 윅의 살해 위협을 받으며 “그깟 강아지 한 마리 죽인 게 대수냐”고 억울해 합니다. ‘갑질’ 논란으로 지탄 받는 이들 역시 ‘내가 왜 이런 사소한 일로 수모를 겪어야 하나’ 억울해할 지 모릅니다. 상대방의 처지에 대해 공감한다는 것, 친구 사이에도 힘든데 갑을 관계에선 오죽할까요. ‘을’의 처지를 이해 못하는 이들이 대중의 분노라고 이해할 수 있을까 의문입니다. 분명한 건 이들이 공감 능력을 키우지 않는다면 ‘갑질’ 논란은 반복될 수 밖에 없다는 것, 그리고 존 윅의 복수극과 같은 극단의 형태는 아니더라도 그에 따른 비극도 필연적이라는 점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