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작‘ 변호인’1000만 관객 눈앞…양우석 감독

盧전대통령 청문회때부터 자료수집 실화바탕돼도 1% 허구 섞이면 허구 분노·증오보다 성찰·반성 담아냈다

“아주 오래 전부터 제 머릿속에는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들의 삶을 통해 현대사를 바라보고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자면 시인 김수영을 통해 1960년대를, 기업인 이병철ㆍ정주영을 통해 1970년대를, 전 경제부총리 김재익을 통해 1980년대를 사유하는 것이죠. 90년대는 문화예술인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열 분 정도가 제 관심 속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중의 한 대상이 바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었죠.”

노 전 대통령의 80년대 인권변호사 시절에서 영감을 받은 영화 ‘변호인’으로 뜨거운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데뷔작으로 천만돌파”라는 한국 영화 사상 첫 기록을 목전에 두고 있는 양우석(46) 감독은 관객 846만명을 넘긴 9일에서야 언론과 첫 인터뷰에 나섰다.

46세로 늦어도 한참 늦은 데뷔를 한 양 감독. 서울 삼청동에서 만난 그는 ‘인문주의자’로서의 면모와 이야기꾼으로서의 ‘장인적 기질’이 또렷했다. 그는 “소설이든 만화든 영화든 오래 전부터 이야기에 대한 욕망이 컸다”며 “모든 이야기는 공부로부터 시작한다고 믿는다”고 했다. 88학번인 양 감독은 대학 재학 때부터 자신이 관심을 가진 인물과 역사, 사건에 대한 방대한 자료를 모아왔다. 그 중의 하나가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전기적 사실이다. 왜였을까?

변호인 양우석 감독 인터뷰.<br />이상섭 기자. babtong@heraldcorp.com 2014.01.09
변호인 양우석 감독 인터뷰.
이상섭 기자. babtong@heraldcorp.com 2014.01.09
변호인 양우석 감독 인터뷰.
이상섭 기자. babtong@heraldcorp.com 2014.01.09 변호인 양우석 감독 인터뷰. 이상섭 기자. babtong@heraldcorp.com 2014.01.09

“우리 국민 모두가 그랬던 것처럼 90년대 초반 5공 청문회부터 주목을 했죠. 당시에 노 전 대통령이 청문회 스타로 떠오르면서 언론에서 크게 조명됐는데, 저는 그로부터 ‘한국인이 가진 이야기의 원형’을 보았습니다. ‘보잘 것 없는 처지의 유생이 입신양명을 꿈꾸며 과거에 합격하고, 암행어사가 돼 탐관오리를 혼내준다’는 것이죠. 상고 출신으로 고시에 패스하고, 서슬퍼런 5공화국 치하에서 인권변호사를 했으며, 청문회 스타가 된 그는 현대판 암행어사이자 ‘교육을 통한 출세’라는 ‘코리안 드림’을 실현한 인물로 받아들여졌던 겁니다.”

이후 노 전 대통령의 정치적 행보를 보면서 양 감독은 영화 속에서 그려낸 대로 “부산지역 수임료 1위 변호사에서 인권변호사로의 극적인 변신”이 이루어졌던 80년대 초반이 가장 결정적인 시기라고 보았다. 양 감독은 고 노 전 대통령의 사후 10여년간은 고인의 삶이 영화 같은 대중적 매체로는 만들어지는 일은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하고 독자층이 제한된 웹툰으로 먼저 준비하고 있었으나 2012년 제작자를 만나고 송강호가 출연을 결정하면서 영화화가 전격 이루어졌다. 그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지만, 1%라도 허구가 섞여 있으면, 그 작품은 허구”라며 “ ‘변호인’은 분노와 증오가 목표가 아니라 이해와 성찰을 담아내려 한 영화”라고 몇 번이고 강조했다.

“문학, 역사, 철학을 아우르고 싶었다”는 양 감독은 고려대에서 철학 및 영문학을 전공했으며 대졸 후 영화프로듀서(MBC프로덕션), 이야기창작집단(올댓스토리), 애니메이션제작사(로커스) 등에서 활동해왔다. 웹툰 ‘스틸레인’의 극작가로도 유명하다.

이형석 기자/suk@heraldcorp.com

사진=이상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