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부실건설사 '꼬리자르기' 이후

尹 LIG 총수일가 기소…사재 출연 유도

태영건설 워크아웃 실패시 파장 엄청나

정부·채권단 총수일가 압박할 카드절실

LIG건설과 윤석열. 태영건설과 이복현 [홍길용의 화식열전]
2011년 11월15일 LIG그룹 사기 사건 수사결과를 발표하는 당시 윤석열 부장검사와 2024년 1월 4일 신년기자간담회에서 발언 중인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연합뉴스 사진]

2012년 9월 19일 검찰이 LIG그룹과 LIG건설 본사를 압수 수색한다. 수사팀은 윤석열 부장검사가 이끄는 서울 중앙지검특수 1부다. 이어10월에는 총수 일가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11월에는 구자원 회장을 비롯한 총수 3부자 기소까지 진행된다.

금융감독원이 LIG건설의 수백억원대 사기성 기업어음(CP) 발행 혐의를 포착해 검찰에 고발한 것이 2011년 8월이다. 윤 부장검사가 2012년 7월 중수부 수사 1과장에서 특수1부로 옮긴지 불과 두 달 만에 수사의 속도가 높아졌다. 고령을 이유로 검찰이 구속영장을 신청하지 않았던 구자원 회장은 재판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까지 됐다. 결국 LIG그룹은 사기 CP 피해자에 대한 배상에 나섰고 그룹의 핵심이자 업계 4위였던 LIG손해보험을 KB금융그룹에 매각한다. 오늘의 KB손해보험이다.

사태의 발단은 2011년 예고없이 이뤄진 LIG건설의 법정관리 신청이었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 부동산 시장이 뜨거워지자 다수의 중견그룹이 건설업에 뛰어들었다. 2008년 리만브라더스 사태로 전세계 경제가 침체됐고 국내에서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이 드러났다. 이때 저축은행과 함께 부실의 주범이 된 것이 중견건설사들이다.

당시만 해도 대기업 계열 건설사는 유사시 모기업이 지원할 것이란 믿음이 강했다. 하지만 막상 계열사가 부실해지자 대부분의 그룹들이 부실 건설사를 포기하며 법정관리를 신청한다. 대주주라도 유한책임을 진다는 명분이었지만 시장에서는 ‘꼬리 자르기’라는 비판이 일었다. LIG건설도 그 중 하나였다. LIG건설은 법정관리 신청 불과 열흘 전까지 부실을 숨긴 채 CP를 발행했고 결국 사기로 판명돼 총수 일가가 피해자 구재를 위해 LIG손해보험 지분 등 사재를 내놓게 된다.

최근 기업개선작업(workout)을 신청한 태영건설에 대해 ‘꼬리 자르기’ 논란이 재현될 조짐이다. 채권단은 물론 금융당국까지 태영건설이 내놓은 자구책을 혹평하면서다. 그런데 태영건설을 살리려는 의지는 대주주 보다 채권단이나 정부가 더 절실해 보인다. 어찌보면 그럴 수 밖에 없는 환경이다.

채권단이 워크아웃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법정관리다. 티와이홀딩스는 태영건설을 포기하는 대신 SBS를 비롯한 다른 알짜 계열사들을 지킬 수 있다. 자동적으로 ‘꼬리 자르기’가 된다. 반면 채권단과 협력업체는 상당한 손실이 불가피하다. 부동산 PF 부실에 대한 시장불안이 더욱 확산될 수도 있다. 총선이 석 달 앞이다. 여당에는 치명적인 악재다. 정부에서 부동산PF 문제 해결의 ‘총대’를 맨 이는 이복현 금감원장이다. 이번 태영건설 사태에도 전면에 나섰다.

이 원장은 4일 태영건설의 자구계획이 “남의 뼈를 깎는 방안”이라며 “태영건설이 시공·시행을 한꺼번에 맡아 1조원 넘는 이익을 얻었고 이중 상당부분이 총수일가 재산 증식에 기여했다”고 꼬집었다. 총수일가가 부동산 호황 때 태영건설로 큰 돈을 벌었지만 막대한 부실을 초래한 책임을 회피한다는 지적이다. 2020년 태영그룹의 지주회사 체제 전환 과정을 살피면 이 원장이 지적이 이해는 된다.

태영건설은 부동산 호황이던 2017~2019년간 연평균 매출액 3조6800억원, 영업이익 3880억원을 기록했다. 3년간 번 돈이 1조원이 넘는다. 그런데 2020년 지주체제로의 전환을 위해 인적분할을 하는데 사업회사인 태영건설이 자본(5431억원)의 3배 넘는 부채(1 조7356억원)을 떠안았다. 반면 총수 일가가 직접 지배할 지주사인 티와이홀딩스는 자본을 5081억원이나 챙기면서 부채는 114억원만 짊어졌다. 이 과정에서 에코비트와 태영인더스트리, 블루원 등 태영건설이 번 돈으로 일군 알짜 기업들도 티와이홀딩스 산하로 재편된다. 총수일가의 지배력은 38%에서 42%로 확대된다.

2012년 LIG에는 치명적 약점이 있었다. 과연 2024년 태영도 그럴까? 의심할 만한 대목은 있다. 2021년 태영인더스트리는 평택싸이로 지분 30%를 티와이홀딩스에 주당 4895원에 매각한다. 티와이홀딩스는 이후 세 차례의 유상감자(1주당 5000원)를 통해 평택싸이로에서 140억원을 가져간다. 당해 티와이홀딩스 영업수익(개별재무제표)의 상당부분을 차지할 정도의 규모다.

태영인더스트리는 올 1월 다시 평택싸이로 지분 37.5%를 600억원에 매입하는데 주당 가격이 2만2222원으로 2021년의 무려 4배다. 태영인더스트리의 평택싸이로 재매입은 대주주가 중앙탱크터미널(KKR 투자회사) 바뀐 후에 이뤄졌다. 이번 거래가 비싼 게 아닐 수는 있지만 3년 전 내부거래가 지나치게 낮은 가격에 이뤄졌을 가능성은 따져볼 필요가 있다. 티와이홀딩스의 이익은 회사를 직접 지배하는 총수일가의 이해와 직결된다.

다만 정부와 채권단이 높은 압박에도 불구하고 태영건설과 총수 일가가 기존 자구안을 얼마나 더 보강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태영건설의 우발채무가 최대 9조원(채권단 추산), 최소 2조5000억원(회사 측 주장) 이상이다. 알짜 계열사인 SBS 매각을 제외하면 기존 자구안 외에 단기간에 거액을 마련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에코비트가 상장만 하면 기업가치가 최대 3조원에 달한다는 평가가 있지만 이미 티와이홀딩스는 공동 대주주인 KKR로부터 지분을 담보로 4000억원을 빌려 태영건설에 투입한 상태다. KKR이 담보인정비율을 크게 낮춰줘야 의미 있는 규모의 자금조달이 가능하다. 총수 일가의 사재 활용 범위도 제한적이다. 티와이홀딩스 보유지분의 시가총액은 1000억원 남짓이다. 그룹 전체의 경영권이 걸려있는 지분이란 점에서 상징적 의미는 가질 수 있지만 액수가 너무 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