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 시선 의식하며 강제성 부여
출근 전, 퇴근 후 시간 이용해 본인 경쟁력 높여야
평생 직장 없는 시대, 불안에 대응하는 방법은 갓생살기
[헤럴드경제=이민경 기자] 직장 출퇴근 시간 전후 시간을 알뜰하게 사용하며 ‘갓생’ 살기에 나서는 2030 직장인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갓생은 신이라는 뜻의 갓(God)과 인생의 생(生)을 합쳐 신과 같은 삶이라는 뜻으로 자신만의 규칙적인 하루 습관을 만들어 실천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회사 출근만으로도 천근만근 무거워진 몸을 이끌고 갓생 살기를 이어가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다보니 스스로에게 강제성을 부여할 수 있는 수단으로 오픈카톡방 인증과 남들과 마주 앉아 공부하는 스터디카페 선호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14일 국세통계포털에 따르면 9월(최근 통계) 말 기준으로 전통적인 칸막이형 독서실 사업자 수가 전년 동월 대비 17.6% 감소한 반면, 스터디카페 등을 포함한 교습소・공부방 사업자는 10.2%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도 과천에 사는 30대 직장인 전 모씨는 대기업에 다니지만 퇴직 후 제2의 삶을 위해 스터디카페로 퇴근하는 생활을 1년째 이어오고 있다.
그는 “집으로 퇴근하면 침대에 눕고 싶고, TV를 보고 싶고 등등 온갖 유혹이 넘쳐난다”며 “독서실은 칸막이 안에 혼자 있으면 너무 졸려서 다른 사람들과 마주보고 앉는 스터디카페로 간다”고 말했다.
공인중개사와 감정평가사를 준비하고 있는 그는 “아직 정년까지 한참 남았지만 벌써부터 주변에는 퇴사하는 선후배들이 많다”며 “특히 환갑 넘은 아버지도 아직까지 정년 연장을 위해서 자격증을 계속 따시는 모습을 보고 자극을 받았다”고 말했다.
전자회사를 다니는 또다른 30대 직장인도 “퇴근 후에 김밥 두 줄을 사서 스터디카페를 가는 게 루틴”이라며 “요즘 스카에는 밥 먹는 방이 따로 있어서 여기서 빠르게 먹고 다시 공부 공간으로 가서 3시간 바짝 공부하고 집에 간다”고 밝혔다.
강서구 마곡동에서 직장을 다니는 20대 직장인 김 모씨는 출근하기 전인 오전 7시 필라테스 수업을 듣는다. 오픈채팅방에 얼굴을 가리고 운동복을 입은 사진을 올리는 ‘오운완’(오늘 운동 완료)을 인증한다.
김 씨는 “원래는 개인 SNS에 올렸는데, 오픈채팅방에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새벽기상, 오운완’ 챌린지를 이어가면서 더 자극을 받는다”고 말했다. 실제로 갓생을 키워드로 하는 오픈채팅방은 수백개가 넘게 운영되고 있다.
새벽시간에 운동을 하는 이유에 대해 그는 “퇴근 후에는 또다른 자기계발을 해야하기 때문”이라며 “주변 또래만 봐도 직장만 다니면 도태된다는 위기감을 다들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자기계발의 끝판왕으로 불리는 새벽 영어반도 만석이다. 영어학원들이 집결한 강남역 일대는 새벽부터 종종걸음하는 수강생들로 바쁘다. 새벽 시간 수업은 취업준비생보다 직장인 수강생 비율이 더 높다.
영등포구에 사는 회계사 박 모씨는 “오전 6시50분 영어 수업을 듣는다”며 “회사 내 업무에서 영어가 필요한 경우가 생겨서 대학생 때 이후로 놓아버린 영어공부를 다시 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씨는 “새벽반에 가면 다들 열심히 산다는 게 느껴진다”며 “나만 고생하는 건 아니구나 싶어서 위안이 된다”고 전했다.
이처럼 학원을 다니고 자격증을 따는 등 취업준비생 시절처럼 계속해서 자기계발에 나서는 직장인들 사례는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평생직장 개념이 사라진 현재, 취업 이후에도 노력을 게을리 할 수 없는 것이다.
무분별한 소비로 불안감을 달래기보다 무언가를 배우고 익히면서 대비한다는 점에서 일견 긍정적인 면이 있다. 하지만 청소년기에 이어 청년기 내내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것만이 미덕이 되면서 우리 사회가 더욱 불안감이 팽배해진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청년들은 과거 욜로(YOLO·현재 자신의 행복을 중시하고 소비하는 태도)가 유행했을 때도 현실을 비관적으로 봤지만, 지금은 그것보다도 한층 더 현실을 불안하고 비관적으로 인식한다”며 “‘이제는 노는 것도 안 되고,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인식이 변화가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당장 다니고 있는 직장에 불만족해서 이직을 준비하는 청년층과 언제든 직장에서 나와도 스스로 살 길을 찾기 위해 미리 준비를 하는 청년이 합쳐지면서 우리 사회에 커다란 갓생 흐름이 나타나게 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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