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남민 기자] 고려 왕건이 후백제 견훤과의 전투에서 패하고 쫓길 때 대구 앞산의 어느 동굴로 숨어들었다. 이때 갑자기 거미가 동굴 입구에 거미줄을 가득 쳤다.

뒤쫓아 온 견훤이 동굴 입구를 살폈지만 거미줄이 쳐져 있으니 그냥 지나치게 된다. 덕분에 기진맥진 살아남아 동굴 밖으로 나온 왕건은 안일사 샘에서 목을 축이며 편안하고 안일하게 지내다 돌아가 결국은 승리했다는 이야기다. 왕건이 ‘안일하게 지냈다’ 해서 이곳을 안지랑이라고 부르게 됐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왕건이 ‘안일하게 지냈다’는 이야기 처럼 40~50년 전만 해도 안지랑은 여름철 무더위를 식히는 대구 최고의 안식처였다. 산림이 울창한 이곳에 가설 천막을 치고 여인들이 냉수를 뒤집어 쓰곤 했는데 그때 천막 틈 사이로 비쳐진 모습을 본 사람들의 이야기는 두고두고 화제가 됐다고 한다.

대구지역의 휴양지로 이름을 떨친 이곳에 당시 여인들이 많이 몰려들다 보니 잡음이 생기기도 했는데 이 때 ‘안지랑골서 물 맞고, 오다가 길에서 소나기 맞고, 집에 와서 남편한테 매 맞는다’는 말까지 생겨났다고 한다.

왕건의 이야기 처럼 믿기 어려운 전설이긴 하지만 안지랑은 잠시 쇠퇴하긴 해도 곧 부흥하는 기운을 가진 땅으로 회자된다.

바로 이 땅에서 시장(상권)의 부침도 거듭됐다.

지금은 문화체육관광부 지정 전국 5대 음식테마거리로 유명해진 대구 안지랑 곱창골목은 1979년 양념곱창가게 한 곳이 문을 연 게 출발점이 됐다. 그리고 월드컵 이후 2003년 양념곱창집이 급증하면서 지금의 상권을 형성했다.

그러나 그 이전 ‘전설 속 왕건의 아픔’ 만큼 쓰라린 상처가 있었다.

원래 대구 앞산 안지랑골 아래에 1972년 안지랑시장이 생겼다. 채소과일, 식육점, 방앗간, 철물점 등으로 한때 번창했지만 1990년대 들어서면서 점포수가 줄다가 급기야 1997년 IMF로 시장 내 점포는 완전 소멸됐다. IMF의 강풍이 모든 점포를 휩쓸고 지나간 것이다. 약 25년의 영화가 하루 아침에 증발했다.

그런데 IMF가 쓸고 지나간 황폐한 자리에 새로운 싹이 트기 시작했다. 이미 1979년 인근시장에서 양념곱창집을 운영하던 충북곱창할머니집이 씨앗을 발아, 번식하게 된 것이다.

IMF는 위기의 원인제공과 기회를 동시에 제공했다. 기존 상권을 정리해버린 IMF는 그 위에 서민들이 싼값에 먹을 수 있는 곱창집이 자생할 토양을 제공한 것이다.

그 결과, 1997년 IMF 한파 이후 10여점의 곱창집이 자연스레 골목을 따라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3년 이 사장님들이 ‘안지랑곱창번영회’를 설립했고 정부의 재래시장 활성화 정책과 맞물리면서 유명 음식거리로 발돋움해 전국적인 명소가 되었다.

이렇게 한 자리에서 흥망성쇠가 거듭됐다.

북쪽 대명로 안지랑 5거리에서 남쪽 룸비니유치원 건너편 구간으로 약 500~600m 골목에 50개 안팎의 곱창 전문식당이 성업 중이다.

이렇게 꽃을 피운 안지랑 곱창골목은 전국의 미식가들을 불러들인다. 평일 3000~4000명, 주말엔 두 배인 약 8000명이 몰려온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일체의 호객행위가 없다. 그래서 편하게 선택할 수 있다.

여기선 딱히 어느 집에 제일 맛있다고 말할 사람은 없다. 굳이 맛집을 고른다면 손님이 끊기지 않고 북적이는 집이 안정적일 것이다.

첫 입에 쫄깃쫄깃한 곱창이 곧바로 부드럽게 녹는 맛으로 변한다. 곱창 최대의 적인 냄새도 다 잡았다. 이곳만의 비법이 있다. 그러니 맛으로 즐기고, 영양으로 몸의 기운 북돋고, 미용으로 승화시켜주니 발길이 끊기질 않는다.

안지랑곱창은 공정한 경쟁을 통해서 여행객들에게 좋은 인상을 준다. 무엇보다도 재료의 철저한 위생관리를 위해 전문적으로 세척한 곱창 막창을 모든 가게에 공급한다. 무작정 경쟁을 하게되면 어느 한 집에서라도 곱창재료의 위생문제가 드러날 수 있고 그 순간 전체의 이미지가 무너지기 때문에 위생관리를 최우선으로 삼고 있다. 그래서 곱창을 전문업체에서 일괄적으로 세척해서 공급하고 있다. 이 때 곱창 자체의 냄새도 잡아서 나온다. 그렇게 공급을 하게 되니 가격도 같다.

손님에게 나오는 곱창은 초벌구이로 냄새를 완벽히 잡은 상태여서 그대로 먹어도 좋고 취향에 따라 연탄불 위에서 더 구워서 먹어도 좋다. 깔끔하게 준비해 내어온 노릿노릿한 곱창을 소스에 찍어서 먹는 그 맛 일품이다.

지금은 단순한 음식거리를 넘어 ‘젊음의 거리’로 승화되어 항상 밝은 기운이 넘친다. 상인회에서도 시민들에게 보답하기 위해 지역 중고생들에게 장학사업도 해 서로가 도움을 주는 관계가 됐다.

곱창은 다른 어느 살코기 보다 철분과 비타민이 풍부해 허약한 사람이나 환자들의 회복식, 보신요리에 좋다고 알려져 있다. 동의보감에서는 ‘정력과 기운을 돋우고 비장과 위를 튼튼히 해준다’고 한다. 또 ‘오장을 보호하고 어지럼증(혈압)을 다스리는 효능이 있는’ 식품으로 소개되고 있다.

곱창은 당뇨, 술중독, 몸의 독성해소, 장내해독, 살균, 이뇨, 피부미용, 피로회복, 노약자의 양기부족, 골다공증에 효능이 있으며 고단백 저콜레스테롤 식품으로 잘 알려져 있다.

곱창요리에 술이 빠질 수 없는 이유는 위벽보호와 알코올 분해, 소화촉진에 뛰어나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안지랑곱창골목은 현재 전국적인 맛기행지로 각광받고 있지만 안지랑골목의 변천사를 살펴보면 한 지역의 흥망성쇠 속에서 주민들의 피와 땀이 어떻게 꽃을 피우고 있는지를 느낄 수 있다는 점도 맛기행 만큼이나 소중한 의미를 느끼게 한 여행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곳 가게들은 간판도 분홍색으로 통일, 가게앞 천막도 통일해 일체감을 주고 있다. 야간 조명에 비치는 주황빛 천막의 풍경은 도시의 색다른 야경을 연출한다.

글ㆍ사진=남민 기자/